[김화진칼럼]유럽의 현대차 20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합스부르크제국의 일부였는데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무너진 1918년부터 체코슬로바키아로 존속했다. 약 70년이 경과한 1993년에 두 나라로 분리되었다. 사실 분리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는데 분리되었다. '벨벳 이혼'으로 불린다. 그래서 역사상 모든 국가 분단이나 분리 독립에 수반되었던 혼란, 분쟁 없이 두 국가가 탄생했다. 크기는 한국의 80% 정도인 체코가 약간 더 크고 인구는 체코가 약 1천만, 슬로바키아가 약 6백만이다. EU 멤버들이고 민족, 언어, 문화 다 유사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공장들이 양쪽에 다 있다. 두 시설은 각각 체코의 오스트라바(현대차, 모비스)와 슬로바키아의 질리나(기아, 모비스)에 있는데 국경을 사이에 두고 약 90km, 1시간 반 거리다. 체코에서는 2006년, 슬로바키아에서는 2004년에 출범했으니 이제 거의 20년이 된다. 슬로바키아 공장이 준공된 다음 날 체코 공장이 착공되었었다. 20여 개 국내 협력사들이 동반 진출했다. 여기서 한국, 미국, 중국을 제외한 약 80개국으로 수출이 이루어진다.
나라가 둘로 나누어질 당시 체코지역에는 산업시설이 많았지만 슬로바키아지역은 농업 위주였다. 그래서 슬로바키아 정책으로 제조업, 특히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기아와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재규어랜드로버가 들어왔고 볼보가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자동차는 슬로바키아 산업생산의 44%, 수출의 40%를 담당하고 약 13만을 고용한다. 그런데 2023년 4월 기준 현대기아가 판매 1위다. 코로나와 반도체 위기 때 다들 어려움을 겪었는데 현대-기아만 예외적으로 타격을 받지 않았다.
기아와 모비스의 슬로바키아 공장이 있는 질리나는 인구가 8만이 조금 넘는다. 농업지역이어서 초기에 인력 확보가 관건이었는데 교육을 통해 산업인력으로 전환되는 점진적 과정을 거쳤다. 질리나는 슬로바키아 내에서 유럽 전역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현대의 진출에 뛸 듯이 기뻐한 슬로바키아 정부가 공장까지 철도 노선을 새로 건설해 주었다.
질리나 기아 공장은 축구장 240개 면적의 대규모 첨단 공장이다. 현재 연 34만 대까지 생산한다. 20년 전에 건설된 시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고 하이텍이다. 당시 어떤 느낌을 주었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지금도 바닥재에 흠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을 들였고 공장 건물 내 중앙부에 대규모 직원 휴게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건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배려다. 건설비용이 늘어났겠지만 임직원 건강을 배려한 자연광 채광 장치도 잊지 않은 세심함이 인상적이다.
2010년 당시 IT를 적용한 컨트롤 시스템은 아직 생소한 개념이었다. 지금은 기본인 '클린 팩토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콧대 높던 폭스바겐이 상호주의에 의거해서 시설을 보고 싶다는 제안도 해 왔다. 건설 당시 고비용으로 '오버'아닌가 하는 우려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물론 기우였고 미래 ESG 시대에 일찌감치 대처한 셈이다.
슬로바키아의 기아 캠퍼스는 정의선 당시 사장의 브레인차일드다. 지금도 비엔나 공항에서 고속도로로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고속도로가 없던 당시 한국으로부터의 교통편, 현지 숙박시설과 레스토랑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질리나를 두 달에 한 번 꼴로 찾으면서 절치부심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 나라 밖에, 그것도 유럽에 후일 55초마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출범시킨 플랜은 한 가지 말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바로 '선견지명'이다. 작년에 글로벌 3위에 오른 현대차그룹은 현재 EU에서도 토요타에 앞서 4위를 달리고 있다.
글로벌 기업에게 해외 사업장과 생산시설은 필수다. 그런데 당연히 국내보다 몇 배 어렵다. 특히 유럽처럼 정치와 규제가 다양하고 복층적일 뿐 아니라 부단히 변화하는 곳은 더 어렵다. 유럽의 환경과 지정학도 한 차원 더 높은 대응을 요구한다. 그 모든 것을 반영하고 예측하면서 투자하고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 터줏대감 경쟁자들도 버티고 있다. 현대차는 그곳에 찬란하게 서 있다. 유럽의 현대차는 글로벌 경영과 리더십 교과서를 넘어서는 비범한 성공사례다. 이제 친환경과 전동화에서도 유럽의 스탠다드를 선도해 나아가기 바란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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