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부족한데 의무연차 다 쓰라? 연차 내고 일하라는 건가"

강아영 기자 2023. 6. 2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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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인력에 수당 깎는 구실 된 연차촉진제… 언론사들 보완책 마련 중

‘대책 없는 연차촉진제 강행 반대한다.’ 지난 21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는 회사의 연차촉진제 시행 결정에 반발하며 이 같은 제목의 성명을 냈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높은 업무 강도 등으로 대휴는 물론 미보상 대휴조차 사용 못하는 구성원들이 많은”데 “어떻게 연차 촉진을 할 것인지, 제도 시행 이후에도 불가피하게 사용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회사의 불분명한 대책을 비판하는 성명이었다.

MBC본부 서울지부는 “올해 적자가 예상되는 데다 예년에 비해 연차 사용률도 크게 떨어져 연차촉진제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라며 “하지만 단순히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MBC는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직자들에 시행 방법을 교육한 뒤 내달부터 연차촉진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연차촉진제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조와 합의 없이도 시행할 수 있다.

언론계에선 MBC에 앞서 여러 언론사가 연차촉진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기자협회보가 MBC를 제외한 15개 종합일간지, 경제지, 방송사를 취재한 바에 따르면 절반가량인 7개 언론사가 현재 연차촉진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연차촉진제는 연차휴가 사용을 장려하고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본래 취지는 긍정적인 면이 크다. 다만 이를 시행했을 경우 회사는 사용하지 않은 휴가에 대해 보상할 의무가 사라져, 제대로 연차를 쓸 수 없는 환경이라면 연차수당을 깎는 좋은 구실이 되기도 했다.

MBC본부 서울지부가 이번 연차촉진제 시행에 반발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서울지부는 “취재, 제작 등의 부문에서는 예년에도 연차 휴가를 모두 사용할 상황이 안 돼 연차를 낸 채로 회사에 나와 근무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결국 구성원들이 휴가를 포기하고 일을 택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회사가 품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올해의 경우 현 시점까지 전 직원의 의무연차 사용률이 20%가 되지 않는데, 이 의무연차를 6개월 동안 모두 사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연차촉진제를 시행하고 있는 종합일간지 한 간부도 “인력 문제 때문에 기자들이 휴가계획서 제출을 잘 안 한다”며 “회사 입장에선 비용 때문에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제도가 원활히 진행되는 편은 아니다. 다만 예전보다는 연차를 많이 쓰는 추세라 업무에 큰 지장만 없다면 일정 수준의 연차는 소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 연차 소진율은 과거에 비해 점점 나아지는 추세다. 조선일보의 경우 지난 2009년 직원들이 사용한 휴가일수는 1인당 평균 5.7일로 의무휴가일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12년을 ‘연차휴가 100% 소진 원년의 해’로 선포한 후로 연차 소진율이 크게 늘었다. 사보에 따르면 지난해 편집국 의무휴가 사용률은 97%였는데, 올해 1분기도 19.3% 수준이었다. 한겨레신문 역시 지난해 직원 1인당 평균 의무휴가일수 18일 가운데 89% 수준인 16일이 사용됐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이 중요해지면서 연차휴가 제도도 지속적으로 정비되고 있다. 서울신문은 과거 연차수당이 아예 없고 연차촉진제도 시행하고 있었지만 지난 2017년 임·단협을 진행하며 연차촉진제를 폐지하고 최대 5일치까지 지급하는 연차수당을 부활시켰다. 또 올해부턴 매월 둘째 주 금요일을 ‘워라밸 데이’로 정하고 특수 근무 인원 외에는 연차를 소진할 수 있도록 부서장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김준 서울신문 노조위원장은 “연차 결재 간소화, 연차수당 확대 등도 고민하고 있다”며 “다만 워라밸 데이의 실효성에 대해선 부서마다 의견이 달라 올해 임·단협에서 다시 한 번 얘기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도 지난 2021년 말, 임·단협을 통해 과거 15일이던 의무휴가일수를 10일로 줄였다. 인력 문제로 연차휴가를 쓸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차라리 돈으로 보상하자는 취지에서다. 은정진 한국경제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1월부터 연차촉진제를 시행하며 의무연차 숫자도 10일로 줄였다”면서 “회사 입장에선 돈을 많이 지불해야 하니 연차휴가를 가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지난해의 경우 의무휴가 소진비율이 60%를 넘었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남아 있는 언론사 구조 상 휴가를 신청할 때 부서장 눈치를 보거나 원하는 날짜에 쉬지 못한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사에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향신문의 미사용 연차 누적제다. 경향신문은 지난 2018년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사용하지 못한 연차를 소멸시키지 않고 누적해, 5년 단위 또는 정년퇴직 시점에 최대 한 달까지 몰아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회사 입장에선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직원 입장에선 아깝게 사라지는 연차를 적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서울신문 역시 3년 치까지 연차를 누적하는 제도가 있다.

한편 조선일보는 의무휴가를 모두 사용한 직원에게 이듬해 10만원 상당의 복지 포인트를 추가 지급하고 있다. 또 지난 2018년, 10일 이상 연차휴가를 연속해 사용하는 ‘집중휴가제’를 도입해 운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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