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재 과시한 푸틴 “반란 초부터 유혈사태 피하려 모든 조치”

TV 연설 통해 ‘바그너 그룹 반란 사태 대응’ 적극 해명
“적들이 동족상잔 내전 원했다” 우크라와 서방에 화살도

군·정보기관·사법당국 수장들과 회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국방안보 기관장 회의에 참석한 정보기관, 국방부, 사법당국 수장들과 만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 반란 사태 후 이틀간의 침묵을 깨고 “사태 시작부터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최측근의 반란을 막지 못하는 등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관측이 쏟아지자 강경 발언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본격적인 사태 수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26일(현지시간) 스푸트니크통신 등 러시아 언론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밤 TV 연설에서 지난 24일 반란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반란 사태 후 푸틴 대통령이 이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약 5분간 연설에서 화난 표정으로 “러시아에 대한 협박이나 러시아에 혼란을 초래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서 “사태 시작부터 나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해 대규모 유혈 충돌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실수를 저지른 자들에게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 등에는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바그너 용병들이 모스크바를 향해 일사천리로 진격하면서 정권 장악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사태 초기부터 자신이 상황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정부의 소극적 대응은 유혈 사태를 최소화하라는 자신의 명령 때문이었다고 해명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반란 사태에서 국민의 단합을 확인했다며 “러시아인의 인내와 연대, 애국심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란 사태 초기부터 상황이 관리됐고 러시아 국민이 단합했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바그너 그룹이 반란의 출발점으로 삼은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시민들은 지난 24일 프리고진 등 바그너 용병들과 셀카를 찍고 박수를 치는 등 환호했다. 바그너 용병들이 진격할 동안 정부 각료나 안보 관련 기구 수장들 중 프리고진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정부 전복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 이들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 군 지휘부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바그너 그룹 지휘자들과 병사들 대부분은 애국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에 반해 형제들과 싸우도록 이용당했다”면서 “국방부와 계약하거나 집에 가거나 아니면 벨라루스로 가도 된다”고 말했다. 반면 프리고진에 대해선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으나 “반란을 조직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은 조국과 동포를 배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반란 사태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돌렸다. 그는 “키이우의 네오나치들과 서방 후원자들, 그리고 모든 종류의 국가 반역자들 등 러시아의 적들이 원했던 것은 바로 동족상잔이었다”면서 “그들은 러시아 군인들이 서로 죽이고, 군인과 민간인이 죽고, 결국 러시아가 패배하고, 우리 사회가 분열되어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질식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 후 곧바로 주요 국방안보 기관장 회의를 소집해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프리고진과 지속적인 갈등을 일으켜 반란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데다 반란 당시 모습을 비치지 않아 경질설이 불거진 쇼이구 국방장관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푸틴 대통령은 군의 동요를 막고 자신과 러시아군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그를 신임하기로 한 듯하다.

푸틴 대통령은 27일에도 군부대·국가근위대·보안군을 향해 특별 연설을 했다. 이 자리도 쇼이구 장관이 함께했다. 그는 연설에서 “러시아군과 법 집행 기관이 명확하고 일관되게 행동해 내전을 막았다. 국민과 군대는 반란군의 편이 아니었다”면서 이들을 치하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