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AI 판사가 징역형을 선고한다면
과거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기소되면 거의 예외 없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던 적이 있었다. 판사가 횡령·배임의 최소형인 징역 5년을 택한 뒤 ‘경제 기여 공로’라며 3년으로 깎고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다. 이른바 ‘붕어빵 판결’이다. 반면 학부모에게 촌지 460만원 받은 교사는 무죄, 160만원 받은 교사는 유죄가 선고된 적도 있다. ‘고무줄 판결’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법원에 양형위원회를 설치한 게 2007년이다. 이후 여러 범죄의 양형 기준이 나왔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문제는 여전하다. 3년 전엔 조국 전 법무장관 동생에게 교사 채용 대가로 뒷돈을 건넨 브로커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는데, 조 전 장관 동생이 1심에서 징역 1년만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돈 받은 사람이 돈 준 사람보다 처벌이 약했다. 진보 성향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가 내린 판결이었다.
▶대법원 양형위 산하 양형연구회가 26일 ‘AI(인공지능)와 양형’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들쭉날쭉 판결을 줄이기 위해 ‘AI 판사’에게 형량 결정을 맡겨도 되겠느냐는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미국 위스콘신주 대법원이 AI 기기 판단을 근거로 중형을 선고한 지방법원 판결이 타당하다고 인정한 게 6년 전이다. AI를 양형에 활용한 것을 합법화한 첫 판결이었다. 이 논의에서 우리는 늦은 편이다.
▶심포지엄에선 AI 판사가 보조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단독으로 판결을 맡기기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인간이 아닌 AI는 판결에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을 당사자가 받아들이기 어렵다. 피고인의 표정과 태도로 읽을 수 있는 비언어적인 부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예컨대 ‘개전의 정’ ‘정상 참작’ 같은 사유를 기계가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되면 이 문제도 언젠가는 해결될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결국 핵심은 AI 판결을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국내 병원들은 이미 수년 전에 IBM 인공지능 왓슨(Watson)으로 암 환자를 진료하기도 했다. 사람의 생명까지 AI에 맡기는데 판결을 못 맡길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알파고의 등장으로 충격을 받은 국내 바둑계도 AI와 공존을 택했다. 요즘 바둑TV 등에선 프로기사인 해설자가 AI가 제시하는 좋은 수는 무엇인지 함께 얘기한다. 머지않아 ‘AI 판결 수용’ 이슈도 우리 앞에 닥칠 것이다. 수용 여부는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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