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박원순 다큐 ‘첫 변론’
서지현 검사의 고발 후 각계각층에서 일어난 ‘미투(Me Too)’ 운동은 성폭력이 이 세상 폭력의 밑바닥임을 확인케 했다. 작은 권력이라도 있는 곳이면 어디든 성폭력이 침투해 있었다는 게 속속 드러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를 보면, 그중에서도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해자 관계가 가장 많은 곳이 직장이었다. 2020년엔 30.1%, 2022년엔 22%를 점했다. 상담소는 “직장은 우월한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대표적인 단위”라고 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권력형 성범죄의 골격을 형성한다는 사실도 미투 운동에서 속속 조명됐다.
그러나 강력한 반동도 뒤따랐다. 유죄 판결을 받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괴롭히고, 가해 사실을 왜곡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3주기를 앞두고 오는 8월 개봉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도 성폭력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김대현 감독은 지난 5월 제작발표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을 오해하고 있다. 잘못 알려진 부분을 (영화로) 적극 변론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은 박 전 시장이 사망해 피해 사실을 보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그의 성희롱을 인정했다. <첫 변론>이 2차 가해를 조장한다고 비판받는 까닭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46개 단체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가해자이고 피해자의 노동환경을 지옥으로 만든 사람을 변호하는 건 명백한 2차 가해”라며 <첫 변론> 개봉 취소를 촉구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전대미문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2차 피해를 갱신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모든 백래시는 강력하게 몰아친다. 권력을 내려놓지 않기 위한 몸부림엔 자기 합리화가 필요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려면 성찰보다 악을 행사하는 편이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 관계자들이 2차 가해 비판을 “1차 가해 논의 자체를 막는 페미·미투 계엄령”이라고 한 데도 이런 심리가 담겨 있다. 국가 인권기관과 법원, 상식의 영역에서 박 전 시장 변론은 이미 끝났다. <첫 변론>은 피해 여성과 인간답게 일하는 환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여성들에 대한 2차 가해이다. 또 죽음으로 자신의 양심을 대신한 박 전 시장에 대한 모욕이다.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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