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칼럼] 정녕 이동관뿐인가

이기수 기자 2023. 6. 27.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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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열린 2018년 3월 22일 오후 이 전 대통령의 서울 논현동 자택으로 이동관 전 홍보수석비서관이 들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2015년 8월27일자 경향신문 1면엔 ‘하나고, 남학생 늘리려 입시 조작’이 단독 톱기사로 실렸다. 사회면 톱 제목엔 ‘하나고, MB정부 청와대 고위인사 아들 교내 폭력 은폐’가 달렸다. 서울시의회 하나고 행정사무조사에 참석한 이 학교 교사 전경원씨 증언과 인터뷰를 담은 것이다. 학폭 사건엔 피해자가 4~5명이란 진술서, 교사 2명이 학폭위 안 열리는 걸 문제 삼은 교직원회의, 이사장이 이 실세의 전화 받은 걸 실토한 게 적시됐다. 며칠 후, 언론계 선배 전화가 왔다. “여기 밥자리에 통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 있어 바꿔줄게.” 이 기사 데스크(부장)를 보던 때였다. “이동관입니다.” 사실관계와 입장을 되묻는 말이 사무적이고 딱딱했는지, 통화는 짧게 끝났다. “4년 전 일”이고, “학교에서 공식 대응할 거”라던 말이 기억난다. 이동관을 옥죄는 학폭 사건은 8년 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그 이동관의 방통위원장 내정설이 들린다. 설마 했다. 넉 달 전 아들 학폭으로 정순신(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태를 겪고, 보름 전 ‘정순신 방지법’이 국회 교육위를 통과했다. 정치도 인사도 지켜야 할 선과 염치가 있다. 그리 잘못했다 바뀌겠다 해놓고, 그새 깔아뭉개는 건가. 버티는 이동관도, 편드는 여당도, 귀 닫은 용산도 강심장이다.

대통령실은 이동관과 정순신이 다르다고 한다. 이동관 아들은 피해자 중 한 명과 화해했단 말일까. 정순신 아들은 전학해 학폭을 안 따지던 정시로 서울대 갔고, 이동관 아들은 학폭위 없이 전학해 수시로 고려대 간 차이일까. 법기술자가 소송으로 버틴 ‘정순신류’와 정권 실세가 학교 이사장과 접촉한 ‘이동관류’는 도긴개긴이다. 8년 전 국회 국정감사에서 입학사정관은 ‘학폭 기록이 남았으면 이동관 아들은 수시로 못 갔을’ 거라고 봤다. 달(학폭)을 가리키는데 손가락(공익제보자)을 공격하면 덮어지나. 정순신과 이동관은 아빠찬스로 법의 맹점을 뚫어 간 ‘권력형 학폭’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언론 통제 흑역사도 소환된다. ‘지방선거 앞 계도활동 강화’ ‘좌편향 진행·출연자 교체’ ‘KBS 무소신 간부 퇴출·보직변경’…. 이명박 정부 대통령기록물과 국정원 불법사찰 재판기록에 나오는 이동관 홍보수석실의 언론 장악 증표들이다. MB의 ‘대선 공보특보-청와대 대변인-홍보수석-언론특보’를 지낸 이동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미디어소통특위 위원장-특별고문-대외협력특보’를 밟고 있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이사 임명과 수신료 징수, 공공기관 소유 방송사(YTN) 지분 매각 결정권을 쥐고 있다. 대통령 특보가 방통위를 이끄는 것부터 소용돌이를 피할 길 없다. 5공 보도지침을 주도한 언론기술자를 빗대, 정의당은 ‘윤석열의 허문도’로 직공한다. 학폭이 도덕 잣대라면, 언론자유 침해는 보다 본질적인 결격 사유다. 이동관의 적은 그 자신, ‘어제의 이동관’이다.

‘정녕 조국뿐일까?’ 2019년 여름, 광화문·서초동으로 갈린 ‘조국대전’ 당시 경향신문 양권모 논설실장의 칼럼 제목이다. 도덕성 무너진 조국이 법무장관의 유일무이한 카드일지 묻는 글이다. 사려 깊은 보수 눈엔, 지금 이동관도 그런 처지일 게다. 이동관도 임명 전부터 ‘장외 청문회’가 끓고 대학에 대자보가 붙었다. 국민 3명 중 2명, 기자 80%가 그를 반대한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처럼, 그가 뱉은 말도 속속 부메랑이 될 게다. 그런데도 그로 굳어지고 있단다. “합리적·일반적·상식적인 사람이 (방통위로) 가면 어려울 수 있다”(이용호 의원)는 게 여권의 속내일 수 있다. 지금 이동관만 할 수 있다는 건 뭔가.

5월10일이다. 집권 2년차 첫날, 대통령은 한상혁 방통위원장 면직 절차를 개시하고 산업부 차관을 경질했다. 그로부터 일어난 격랑은 네 갈래다. 전 정부 고위인사 ‘솎아내기’, 두 자릿수까지 바꿔 기강 잡겠다는 ‘차관정치’, 대법관 비토설까지 흘러나온 ‘코드 인사’, 여기저기 줄 잇는 ‘낙하산’이다. 공직 파견 검사만 60명 넘는 검찰국가는 오늘도 확장 중이다. 공약한 책임장관제는 길을 잃고, 코드·낙하산 인사 않겠다고 정권 달라 한 말도 무색해졌다. 맘만 급해 되돌아가는 내로남불 인사, 그 정점에 이동관이 있다.

“종편 재승인에 관여했다”고 한상혁을 내치고, 그 자리에 공영방송 공적(公敵)이던 이동관을 앉히는 건 권력자의 독선이다. 다수가 한눈에 고개 젓는 인사는 오기·불통 정치다. 그 싸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동관을 보면 정순신과 허문도, 조국 갈등이 떠오른다. 정녕 그런 이동관을 밀어붙일 텐가. 일본 오염수와 이동관으로 뜨거울 7월이 다가섰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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