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칼럼] 비정상의 정상화, 허상의 일상화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 다음 두개의 지문을 읽고 차이점을 찾으시오.
(1) “대한민국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낡은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고자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했습니다. 법치주의가 확립되고, 국민의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위기는 진정될 수 있었습니다. 욕을 먹어도 좋다는 각오로, 오로지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 비정상적인 요인을 바로잡았습니다.”
(2) “경각에 놓여 있던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재도약을 위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시간이었다.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이권 카르텔과 기득권을 깨나가겠다’고 공언한 대통령의 말처럼, 개혁을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
이런 문항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출제된다면 킬러 문항이 될 게 분명하다. ‘~습니다’체가 ‘~이다’체로 바뀌었을 뿐 같은 필자가 쓴 글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없을 만큼 유사하다. 앞의 글은 2016년 발간된 <박근혜정부 3년 정책 모음집>에 실린 것이고 뒤의 글은 올해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이 낸 논평이다. 7년이라는 격차가 있지만, 그 맥락과 내용은 표절이라도 한 것처럼 닮은꼴이다. ‘욕을 먹어도 좋다는 각오로’ 혹은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밀어붙이겠다는 불굴의 의지도 차이가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어젠다였다. 10개 분야 80개 정상화 과제를 선정하고 각 부처 차관급으로 이루어진 ‘정상화추진협의회’도 만들었다. 앞에서 인용한 <3년 정책 모음집>은 박근혜 정부가 ‘전직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부패와 비리를 근절’한 점, ‘자유민주주의와 헌법 가치 수호’를 위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을 한 점을 정상화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후,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학생과 역사학계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고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은 대법원 판결로 취소되었으며 그 대통령은 뇌물과 직권남용죄로 징역 22년을 받았다.
역사의 블랙코미디로 끝난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즌2를 맞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바로 세우고 무너진 국가 시스템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민주노총 집회에 강력대응을 선포했다. 그 직후 열린 민주노총 집회에 경찰은 캡사이신 분사기 3780대를 들고나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내년 총선에서의 시대정신은 ‘완벽한 비정상의 정상화’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윤석열 정부 1년은 남북관계와 노사관계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기간이었다”고 평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티비에스>(TBS) 지원조례 폐지로 공영방송을 문 닫게 하는 게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언론 장악을 위한 <한국방송>(KBS)의 수신료 분리 징수도,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와 압박도 모두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파시즘의 논리다. 제이슨 스탠리 미국 예일대 철학과 교수는 <우리와 그들의 정치―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란 책에서, 파시스트 정치는 사람을 ‘우리’와 ‘그들’로 분리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를 합법적 시민이자 선량한 피해자로, ‘그들’을 게으르고 기생적인 무법자로 낙인찍어 분열 반목하게 하고 통치의 무기로 삼는다는 것이다.
“특정 집단들을 배제함으로써 시민들 사이의 공감 능력을 제한하고, 자유를 억압하며 집단투옥 및 추방, 극단적인 경우에는 대량학살까지 이어지는 비인도적 처우를 정당화하기에 이른다.”(16쪽)
2023년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자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와 이주민 같은 사회적 약자가 비정상적인 ‘그들’이다. 불법 하도급의 건설사 비리는 묻어둔 채 건설노조 조합원들을 ‘건폭’으로 낙인찍고 건설업계 혁신을 위해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만들자는 노조 쪽 제안을 일축한다. 장애인 시위를 엄단하고, 퀴어퍼레이드를 불허하고 그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에 분노해서 ‘그렇게 말하는 너희가 비정상이고 우리가 정상이다’라고 반격을 하는 건 또 다른 늪에 빠지는 길이다. 정상과 비정상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우리 각자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존엄한 개체들이다. 서로 다르다는 점이 차별과 배제와 혐오의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사람을, 사상을, 의견을 정상·비정상으로 분리하는 순간 우리 안의 파시즘은 자란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대정신이라면 이 시대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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