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세상읽기]
[세상읽기]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요즘 ‘디리스킹’이 유행이다. 지난 3월30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처음 꺼낸 뒤 5월20일 주요 7개국(G7) 공동선언에도 ‘디커플링 아니고 디리스킹’ 표현이 등장했고 미국도 이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자 국내 대다수 언론과 전문가들이 이를 서방의 대중전략 전환 신호로 읽었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납작해 보인다. 필자는 서방이 전환하려는 것은 대중전략 기조가 아니라 이를 정확히 담는 개념이라고 본다. 오늘날 세계 경제질서 전환을 입체적·동태적으로 진단해야 적실한 처방전을 제시할 수 있다.
두 개념의 사전적 의미를 살피면 디커플링은 탈동조를, 디리스킹은 탈위험(위험완화)을 뜻한다. 이를 서방의 대중 경제관계에 투사하면 전자는 탈중국, 후자는 중국 관련 탈위험이다. 그런데 이를 일방향으로의 전환으로만 읽는 것은 평면적이고 정태적인 접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용어의 차이보다 양자 간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다.
첫째, 디커플링 앞에 수식어 ‘선별적’이 붙으면 양자 간 유의미한 차이는 사라진다. 미·중 양국은 안보 면에선 대립하되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첨단 핵심 품목에서만 ‘선별적 디커플링’을 추구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위시한 미 정부 고위관료들은 일관되게 이 점을 강조해왔다. 주요 7개국 공동선언도 대중 규제 목적을 경제적 회복력과 경제안보로 제한한다. 중국 쪽이 기존 디커플링과 뭐가 다르냐며 폄하한 이유다. 단 아직 디리스킹 평가 기준은 모호하다. 미 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서 소위 ‘우려 대상 기관’은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나, 미-중 간 얽히고설킨 공급망으로 인해 그 기준은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둘째, 디리스킹은 디커플링의 보완재로도 존재한다. 미·중은 양국 무역을 베트남 등 동남아나 중국 생산으로 전환해 양국 간 고관세 무역의 위험을 낮추려 한다. 한국도 미국의 대중 규제 리스크를 피하고자 2022년 대중국 수출은 줄이되 현지 생산을 늘렸다. 반면 고비용 디커플링을 회피하는 불편한 진실도 보인다. 미국, 프랑스 등 서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에도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에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 재처리를 의존하고 있다. 지난 5년간 프랑스는 중국의 2위 무기 수입국이다.
셋째, 양자는 상호 대체재도 된다. 미국은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대상을 14나노 이하에서 10나노 이하로, 네덜란드 반도체장비기업 에이에스엠엘(ASML)의 노광장비 대중 수출 금지 품목을 첨단 극자외선(EUV)용에서 심자외선(DUV)용으로 더욱 옥좼다. 이에 서방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이 작정하고 디리스킹에서 디커플링으로 전환할까 우려한다. 반대로,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의 비현실적인 디커플링 요구에 우방이 반발하자, 배터리 중간재 중 ‘구성소재’를 부품이 아닌 핵심 광물로 분류하는 등 디리스킹으로 선회했다.
왜 이런 복잡한 상호작용이 나타날까? 고도의 상호의존성을 지닌 오늘날 디커플링은 한계가 자명한데, 이런 생경한 시대에 적응하려니 모두가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지금의 세계 경제질서를 디커플링보다 ‘보호주의 진영화’로 파악하고 ‘신뢰가치사슬’(TVC) 개념을 제시한다. 애초 양쪽 진영 모두 이중용도·횡단기술 분야 일부 품목에 국한해 선별적으로 신뢰가치사슬을 만들려 한다. 그러므로 글로벌가치사슬(GVC)은 엄존하는 가운데 일부가 혼선 속에 재편될 뿐이다. 실제 미국의 대중 수출은 2022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물론 앞으로는 디커플링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디커플링 분야는 에너지, 방산, 금융 등으로 퍼졌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우라늄 재처리 기술 개발에 7억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다. 프랑스도 대중 무기 수출을 마냥 지속하기 힘들 것이다. 더 길게는 미-중 역학관계 여하에 따라 디리스킹의 공간도 유동적으로 변할 것이다.
따라서 행여 대중 관계의 장애물이 낮아졌다는 오판은 금물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긴 호흡으로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간 상호작용에 대한 입체적이고 동태적인 이해가 긴요하다. 그래야 우리의 전략적 운신의 폭도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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