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무 위의 군대' 손석구 "영화·드라마 때와 연기 똑같죠"
"상관과 신병, 믿고 따르지만 이해할 수는 없는 아빠와의 관계에 대입"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똑같아요. 제가 찍은 '범죄도시2'와 '나무 위의 군대'가 뭐가 다르냐고 하면 이야기가 다른 거지 그건 영화고, 이건 연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하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무명 시절 동료와 사비 100만원씩을 털어 극장을 대관해 연극 공연을 올렸다는 손석구가 지난 20일 개막한 연극 '나무 위의 군대'로 다시 연극 무대에 돌아왔다. 2014년 대학로 연극 '사랑이 불탄다' 이후 9년 만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비롯해 한동안 TV,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영화 등 매체 연기만 해온 탓에 손석구가 연극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원래 폐막일이었던 8월 5일까지 좌석이 모두 팔리면서 8월 8일부터 12일까지 공연 기간을 연장하기까지 했다.
27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나무 위의 군대' 기자간담회에서도 손석구에게 그간 해왔던 매체 연기와 무대 연기가 어떤 점이 다른지를 묻는 말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손석구는 "다른 점이 없다. 똑같다"고 답했다.
그는 "관객들을 카메라라고 생각하면 (보통의 카메라 앵글보다)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니 의식적으로 몸을 적극적으로 쓰려고 한 것 같다"며 "처음에는 어색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제가 원래 손발을 안 쓰면 대사를 못 외우는 편이어서 (몸 전체가 보이는 연기가)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30대 초반 마지막으로 연극을 하고 영화, 드라마로 옮겨가게 됐다. 다시 연극을 하면서 내가 하는 연기 스타일이 연극에서도 되는지 보고 싶었다"고 연극 무대에 돌아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나무 위의 군대'는 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일본이 패전한 사실을 모르는 채 약 2년간 나무 위에 숨어서 살아남은 두 병사의 실화를 다룬 연극이다. 극의 흐름을 설명해주는 해설자 역할로 '여자'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큰 골격은 '상관'과 '신병'의 2인극이다.
손석구는 신병을 단독으로, 상관은 이도엽, 김용준이 맡았다. 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로 지원을 나온 상관이 전쟁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라면, 신병은 자신이 나고 자란 섬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 자원한 아직 소년티를 다 벗지 못한 인물이다.
손석구는 "신병은 군인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군인의 마인드나 군인 정신이 탑재돼 있지 않은 순수한 청년에 가깝다"며 "지금까지 해온 역할과는 괴리가 있었다. 정서적으로 맑고, 순수한 사람이라 나처럼 때 묻은 사람이 순수한 사람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상관과 신병은 나무 위에서 2년간 생존을 위해 서로 의지하기도 하지만, 상대를 향한 살의를 품을 만큼 충돌하기도 한다. 상관은 나무 위에 올라간 것은 도망이 아닌 잠복 작전이라고 우기고, 신병은 상관을 믿고 따르면서도 왜 싸우지 않는지, 왜 나무에서 내려가지 않는지 답답해한다.
손석구는 "전쟁 이야기를 빼고, 상관과 신병 관계에 무엇이 남는가 생각했을 때 엄청나게 공감이 갔다"며 "저와 아빠의 관계를 생각했다. 아빠는 무조건 옳다. 밤 10시에는 자야 하고, TV 소리는 7 이상으로 키우면 안 된다. 이해는 안 되지만 믿고 따르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 힘든 걸 나무에 갇혀 2년 동안 하니 살의까지 생기는 거죠. 누구나 가정, 학교, 직장에서 이런 일들을 겪는다고 생각해요. 계급이 있고 서로의 능력치가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 충돌이 오는데 믿음으로 인해 썩어들어가는 거죠. 저 사람 말을 믿고 따르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음에도 (그 사람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이런 이야기에 대한 공감대가 모두 있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상관 역의 김용준은 "신병이 절 믿고 있다는 게 제일 답답했다"며 "누가 나를 믿으면 그 압박과 부담감 때문에 계속 불안하고, 초조하다. 신병이 나를 꽉 믿고 있으니 더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되고, 더 미워하게 되고 죽이고 싶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상관과 신병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로가 될 바에야 죽음을 강요했던 당시 일본의 국가론, 원래는 독립 국가였던 오키나와가 일본 오키나와현으로 병합된 뒤 받았던 차별 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민새롬 연출은 이런 구체적인 배경을 모르더라도 공감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새롬 연출은 "우리는 매일 삶의 구석구석에서 믿음에 대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전쟁의 비극은 살육에도 있지만, 아군인 우리가 뼛속까지 얼마나 다른 믿음을 가졌는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도 참상"이라며 "우리 삶의 고통을 목도하고, 이런 부분을 계속 말하는 게 평화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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