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무 위의 군대’, 믿음과 의심 사이 그 어딘가에서

2023. 6. 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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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엠피앤컴퍼니

손석구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연극 ‘나무 위의 군대’의 기자 간담회가 27일 16시,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개최됐다. 이날 연출을 맡은 민새롬, 상관 역할의 김용준과 이도엽, 신병 역할의 손석구, 여자 역할을 맡은 최희서가 참석했다.

‘나무 위의 군대’는 참혹한 역사 속 실화를 바탕으로 전쟁의 무익함을 전한다. 1945년 4월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 오키나와에서 일본의 패전도 모른 채 1947년 3월까지 약 2년 동안의 시간 동안 가쥬마루 나무 위에 숨어 살아남은 두 병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6월 20일부터 8월 5일까지 공연될 예정이었지만 예매 오픈과 동시에 전석이 매진되는 성원에 힘입어 8월 8일부터 12일까지 일주일 연장 공연을 확정하기도.

거대한 나무로 이루어진 세트 위, 상관과 신병의 대사와 행동으로 연극은 진행되며 나무의 정령이기도 한 여자 최희서의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들은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연극에 임하며 느꼈던 배우들의 생각을 지금부터 들어보자.

# 질의응답

Q. 각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가 있다면

민새롬: 나라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이 있는 두 인물이 필요했다. 이도엽은 그 믿음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여리고 섬세하게 표현해 인상적이었다. 같은 상관 역의 김용준은 커다란 뚝배기 느낌이었다. 정서의 결이 다른 점이 흥미로웠다. 손석구는 추락과 신뢰가 깨지는 것에 대한 통증을 섬세하게 표현해 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희서는 주제를 탑재한 인물이다. 해석력이 굉장히 뛰어난 배우라고 생각했다. 작품에 대한 혜안이나 통찰력이 있다. 그런 면에서 모두 좋은 캐스팅이라 생각한다.

Q. 매체 연기를 주로 하는 배우들도 있는데, 한정된 공간에서 해야 하는 연극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민새롬: 매체 연기와 무대 연기의 차이에 대해 느끼는 것이 다들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야기를 다루는 예술이기에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매체 연기를 많이 해봤던 손석구, 최희서 배우를 만나면서 무대 연기에서 접근하지 않는 세세한 시각이 무대 연기에 익숙한 연출에게 굉장히 새롭고 촘촘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공간이 제약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손석구와 최희서는 제약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는 공간을 어떻게 하면 더욱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좋았다.

Q. 손석구는 예전에 자이툰 부대에 있었다고. 그 경험이 어떻게 도움이 됐나

손석구: 그 경험이 도움 된 건 없다(웃음). 난 자이툰 부대에 전시 상황에 갔지만, 시대와 배경이 워낙 다르지 않나. 내가 맡고 있는 신병이라는 역할은 사실은 군인 정신이 없는 순수한 청년에 가깝다. 개인적인 군대 경험이 들어올 자리는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사진제공: 엠피앤컴퍼니

Q. 정말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 작품을 접했는지 

손석구: ‘60일, 지정생존자’라는 드라마를 찍었을 때 (이) 도엽이 형과 같이 있는 장면이 많았다. 그때 형이 하던 연극을 많이 보러 갔었다. 그때 형한테 ‘나도 연극하고 싶다’고 몇 번 말했다. 그게 벌써 4-5년 전이다. 전에도 계속 연극에 도전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됐다. 그 이후 이 작품의 대본을 받게 돼 너무 재밌고, 현시대에 잘 맞는 작품이라 생각해 도전하게 됐다. 

Q. 손석구와 최희서는 둘 다 연극을 오랜만에 한다. 그런데 또 둘이 같이 하는데 소감이 어떤가 

최희서: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웃음). 벌써 9년 전에 대학로 외곽 소극장에서 한 작품을 같이 했었다.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각자 100만 원씩 통장에서 꺼내서 대관료를 내고, 5일 정도밖에 공연을 못 했다. 돈이 없었다(웃음). 하지만 열심히 재밌게 했다. 그 이후 각자의 길로 바빴다.

가끔 만나서 ‘또 연극하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손석구가 이번 역할을 하게 되면서 ‘여자’ 역할이 있어서 나를 소개해줬다. 대본을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나도 함께 하게 됐다. 이번에 LG아트센터라는 어마어마한 공연장에서 연극하게 돼 매일 연습 오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컸다.

Q. 최희서는 신비로운 존재인 ‘여자’ 역할로 나온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한 노력이 있다면 

최희서: ‘여자’라는 역할은 시작과 끝을 아우른다. 쉽게 보면 해설자지만 나무의 혼령과 같은 역할도 하고 있다. 내레이션도 그렇지만 무대 위에 어떻게 서있을지도 고민됐다. 내가 여러 움직임과 제스처를 활용했는데, 나무의 혼령이다 보니 초월적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가야 할지 고민했다. 

Q. 원작인 일본 공연에선 ‘여자’가 유카타를 입고 나온다. 우리나라 버전에선 좀 더 신비롭게 나오는데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민새롬: 일본 공연에선 오키나와의 민요를 직접 부르는 가수의 비중이 컸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레이션과 스피치 위주로 갔으면 좋겠다고 최희서와 상의했다. ‘여자’는 스토리텔러일 수도 있지만 전쟁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일 수 있다. 배우 입장에서 여러 감각을 활용해 인물을 구축했다.

Q. 마지막 동그란 원형 장치가 의미하는 것은 

민새롬: ‘여자’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렇지만 이야기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기보다는 장치로 관객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고, 너무 정글 같은 세트보다는 다른 요소도 추가하고 싶었다. 

Q. 손석구는 2014년에 연극 이후 9년 만이다. 그때와 비교해서 연극을 다시 해보니 느낌이 어떤가 

손석구: 사실 매체 연기, 연극 연기 그렇게 차이를 안 두려고 했다. 내가 ‘범죄도시 2’를 찍지 않았나. ‘나무 위의 군대’와 ‘범죄도시 2’가 내게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그냥 스토리가 다를 뿐 똑같다고 생각한다. 난 원래 연극배우만 하려고 하다가, 매체 연기를 하게 된 케이스다. 연극을 하면서 내가 매체 연기를 하다가 다시 연극으로 왔을 때, 내 스타일의 연기가 연극에서도 되는지 궁금했다. 내가 연극을 위해 연기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면 내가 연극을 하는 이유 중 하나를 배신하는 거다.

연기 스타일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뭐가 다른 지도 뭐가 달라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열심히 연기하고,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연기하는 ‘신병’의 캐릭터가 그동안 연기했던 역할과 많이 다르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순수하고 연령도 되게 낮다. 그래서 ‘나처럼 때 묻은 사람이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많이 했었다.

Q. 매체 연기를 오래 한 사람들이 연극을 했을 때 몸을 쓰는 게 어색한 경우가 많은데 손석구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연습으로 극복한 건지 매체 연기를 할 때도 온몸으로 연기한다고 생각하며 했었나 

손석구: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처음엔 어색하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연습할 때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원래 손발을 안 쓰면 대사를 잘 못 외우는 것도 있다(웃음). 

사진제공: 엠피앤컴퍼니

Q. 최희서는 극의 분위기를 여러 가지 요인으로 환기한다. 다소 웃긴 대사도 있는데 이게 몰입을 조금 깨는 느낌도 있다고 느끼지 않나 

최희서: 웃긴 대사는 원작에서 각색 없이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다. 그래서 일본 관객들도 웃었을 것이다(웃음). 사실 첫 공연을 했을 땐 너무 관객들의 웃음이 커서 놀랐다. 많은 분들이 유쾌하게 봐주신 거 같다. 우리가 원작의 토속성을 배제한 이유는, 원문 자체에도 ‘오키나와’, ‘일본’이라는 말이 안 나온다. ‘이 섬’, ‘본토’라는 말만 나온다.

그렇기에 2023년 서울에서 이 공연을 올려도 많은 분들에게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공연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을 상기시키는 기모노나 유카타는 입지 않겠다고 말했고, 시대와 국가를 알 수 없는 옷을 입었다. 웃다가 나가면서도 살짝 씁쓸해지는 연극이 되고 싶다. 조금 무게감이 있었으면 하는 공연이니, 무게감이 없었다면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다.

김용준: 관객의 반응과 만나 연기가 더 심화되고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새로 발견된 지점이 연극의 매력이다. 

Q. 상관이 나무에서 내려가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김용준: 그걸 4개월 고민했다. 정말 어렵더라. 간단하게는 신병한테 거짓말한 것 때문이다. 내려오는 순간 상관과 신병의 관계가 깨진다. 반대로 생각하면 모든 게 깨지면 내려올 수 있는데 그게 힘들었던 것 같다. 

Q. 상관과 신병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관객들이 함께 심각해지기도, 웃기도 한다. 두 캐릭터 간의 대립이 도드라질 수 있게 표현한 부분은 

이도엽: 용준이 형, 석구와 많은 부분을 이야기했다. 내가 91학번인데 꽤 오래전이지 않나. 그때 졸업 공연 연습했던 것처럼 온갖 것을 다 쏟아붓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석구 말을 잘 들었고,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Q. 두 병사가 계속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극이 진행된다. 상관을 맡은 배우는 두 사람, 신병은 손석구 혼자 연기한다. 특별한 이유는 

손석구: 도엽이 형님이 체력이 많이 소진됐다(웃음). 

이도엽: 정말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석구를 만나 작품 이야기를 할 때 내가 공황 장애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일주일 내내 혼자 공연하는 건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내 의견을 받아들여줘서 두 명으로 가게 되었다. 지금은 다행히 괜찮아졌다.

사진제공: 엠피앤컴퍼니

Q. 상관을 맡은 두 배우가 서로 결이 다르다고. 손석구는 다른 결이지만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를 상대로 연기해야 하는데 차이가 있다면 

손석구: 정말 다르다. 다른 캐릭터라고 보면 될 정도다. 나는 거기에 맞춰서 한다. 음식도 궁합이 있는 것처럼 다 다르다. 그리고 날마다 컨디션도 다르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뭘 어떻게 다르게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다르게는 하고 있다(웃음). 근데 정말 너무 다르면 얘기를 하면서 좁힐 때도 있다.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기에 생소하면서도 재밌었다. 

이도엽: 처음엔 석구가 너무 달라서 힘들다고 하더라. 근데 내가 할 때와 용준이 형님이 할 때를 모두 해보더니 ‘이제 알겠다. 즐기겠다’고 하더라. 연극의 맛을 안 것 같다. 

Q. 관객들에게 배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면, ‘상관’ 역할이 꼰대로만 보일 것 같은데 

민새롬: 오키나와는 아직도 일본으로부터 응답받아야 하는 부분이 많다. 그렇지만 모든 관객들이 이런 모든 부분을 공부하고 연극을 보러 올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해를 하고 온다면 더욱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매일 전투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아도 재밌다고 생각한다. 보편적으로 우리 삶의 고통들을 목도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

Q. 2년 동안 나무 위에서 갈등도 빚고 대립되는 상관과 신병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신병과 상관, 서로 답답한 것이 있다면 

김용준: 날 믿고 있는 게 제일 답답했다. 누가 날 안 믿어주면 그 사람에 대해 분노가 느껴지고 답답하지 않나. 근데 믿고 있으면 압박감과 부담이 생긴다. 이 작품이 그런 순간들이 많다. 신병이 상관을 엄청 믿기에 거짓말을 더 하게 되고 더 불안하고, 신병을 미워했다. 덧붙여 손석구와 연극을 하게 된 소감을 말하고 싶다. 처음엔 손석구를 보면서 TV 보는 느낌이라 되게 신기했다. 같이 연습하다 보니 너무 솔직하고 사람이 괜찮더라. 그래서 좋더라. 

손석구: 관객분들이 ‘이거 내 얘기다’하면서 이 부분을 봤으면 했다. 전쟁 이야기를 배제하고 공감됐던 게 상관과 신병의 관계는 내가 아빠와 가졌던 관계다. 지금도 아빠가 좋고 그를 믿지만, 어릴 때 아빠가 정해 놓은 규칙이 이해는 안 되지만 맞다고 따른다. 근데 그 생활을 직장 상사와 나무 위에서 2년 동안 한다면 살의까지도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누군가는 직장 상사, 혹은 다른 사람과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믿는다는 믿음이 크다면 그걸 따르다. 이런 관계는 가족, 학교, 직장 어디에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싸움은 토해내면 되지만 신념에 관한 것이기에 싸울 수도 없는 거다. 그러면서 병드는 부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주제를 내가 여태껏 본 작품에서 다루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이게 굉장히 재밌었다. 내가 상관에게 가졌던 답답함이 ‘믿는데 이해는 가지 않는 것’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나무 위의 두 군인의 심리를 묘사한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현재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 U+ 스테이지’에서 절찬리에 공연 중이다.

임재호 기자 mirage0613@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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