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반복적인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는[김유진의 워싱턴리포트]

김유진 기자 2023. 6. 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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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인베스팅 인 아메리카’ 첫 일정으로 초고속 인터넷 구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정제되지 않은 언사로 종종 구설에 오른다. 가장 최근에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첫 방중이 끝나자마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독재자로 지칭,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올해 1월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보호주의 입법에 대한 비판을 두고 비속어를 써서 “아무 상관없다(to hell with that)”고 해 동맹국의 정당한 우려를 폄하했다는 논란을 자초했다.

나라 이름 등 고유명사를 틀리거나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말을 내뱉는 일도 잦은 편이다. 바이든 스스로도 과거 “나는 실언 제조기”(gaffe machine)라고 인정했다. 회의 도중 두 달 전 직접 애도성명까지 냈던 숨진 공화당 의원을 애타게 찾는 모습은 재선에 도전한 바이든의 약점으로 꼽히는 ‘역대 최고령’ 기록을 유권자들에게 새삼 각인시켰다.

이런 바이든이지만 역점을 둔 국정 분야의 정책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조금 다르다. 실제보다 성과를 부풀리거나 낯뜨거운 자화자찬을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최소한 대통령의 입으로 전달되는 국정 방향이나 주요 정책 기조는 대체로 일관성을 띤다. 회의 석상이나 현장 방문 시 대개 이미 도입·시행한 조치나 구체적인 계획에 기반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가 취임 후 줄곧 부르짖는 미국 제조업 부활 정책이 일례다. 미국 어느 주에 가든 바이든의 발언은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는 IRA·인프라법·반도체지원법의 일자리 기여도, 미국 기업과 한국 등 해외 기업들의 투자 실적을 수치로 나열한다. 대규모 연방 자금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 모든 것이 바이든 정부의 국정 어젠다에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설명한다. 미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이 투자한 뉴욕주, 대만 반도체업체 TSMC 공장 소재지 애리조나, 인프라법 지원을 받아 다리를 짓고 있는 켄터키, 노조 행사가 열린 필라델피아 등 어디가 됐든 바이든은 판에 박힌 발언을 한다.

대통령의 정책 메시지 반복은 지루하거나 혹은 지겹게 들릴 수 있다. 기자 입장에서 보면 뉴스가치도 갈수록 떨어진다.

그럼에도 핵심 정책에 대한 바이든의 발언이 예측가능하다는 점은 국정 수행 지지도와는 별개로 안정감을 주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대통령의 말이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의식의 흐름 기법대로 말하고, 관료들은 느닷없이 나온 말 한 마디에 정책 기조를 맞추느라 애를 먹고, 참모들은 여론의 비판을 수습한답시고 대통령을 최고 전문가로 추켜세우고, 그 과정에서 애꿎은 국민만 혼란을 겪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은가.

바이든이 한국을 남미로 잘못 불렀다 정정한 지난 4월 메릴랜드주에서의 연설의 한 대목에서 잠시 눈길이 멈췄다. IRA 발표 전에 바이든은 노조를 찾아가 기후 대응이 일자리를 잠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고, GM 등 자동차 기업을 백악관으로 불러 전기차 전환 필요성을 설득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한 IRA는 지지할 수 없지만, 잠재적 반대자들에게 정책 방향에 대해 이해를 구하려는 정치 지도자의 모습은 지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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