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주석중 교수 장남 울린 '라면 스프'..."당신 몸은 돌보지 않던 평소 모습 그대로"

남보라 2023. 6. 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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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맥 명의' 주석중 교수 아들 감사문]
연구실 곳곳에 라면 스프, 환자 위한 기도문
"식사시간조차 아까워 라면만 부숴 드셨나"
"아무리 위험해도 환자 죽게 둘 수 없다고 해"
사망 얼마 전 부인에 "소명 다해 행복하다"
2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주석중 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장례를 마치고 며칠 후 유품을 정리하러 연구실에 갔었습니다. 책상 서랍 여기 저기, 그리고 책상 아래 한켠에 놓여진 박스에 수도 없이 버려진 라면 스프가 널려 있었습니다. 제대로 식사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아니면 그 시간조차 아까워서 연구실 건너 의국에서 생라면을 가져와 면만 부숴 드시고 스프는 그렇게 버려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고 주석중 교수 장남 주현영

지난 16일 교통사고로 별세한 '대동맥 수술 명의' 고(故)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혈관흉부외과 교수의 장남 현영씨가 유족을 대표해서 조문객들에게 쓴 감사문의 일부다. 주 교수의 지인인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2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감사문을 올렸다.

현영씨는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찾았던 주 교수의 연구실에서 “방금 수술복으로 갈아 입고 나가신 것 같은 옷가지들과 책상 위 서류들과 몇 개의 메스와 걸려 있는 가운 등 금방이라도 돌아오실 것 같은데 다시 뵐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졌다”고 썼다. 또 무수히 많은 라면 스프를 발견하고는 “오로지 환자 보는 일과 연구에만 전심전력을 다하시고 당신 몸은 돌보지 않던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너무나 가슴아팠다”고 적었다.

유품 중에는 주 교수가 환자를 위해 만년필로 직접 쓴 기도문도 몇 개 있었다. 현영씨는 기도문 중 “제가 환자 치유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 하느님 손에 달렸다”는 구절을 전하며 “정성을 다해 수술하고 환자를 돌보지만 내 힘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니,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그렇게 적어두신 듯 하다”고 전했다.

주석중 교수 등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와 심장내과 교수들이 대동맥판막 스텐트 시술을 하고 있는 모습. 서울아산병원 제공

빈소에 왔던 한 부부 사연도 전했다. 그는 “아버지 빈소가 마련된 첫날 펑펑 울면서 찾아온 젊은 부부가 있었다”며 “갑작스런 대동맥 박리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으나 어려운 수술이라며 모두들 기피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집도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었노라며 너무나 안타까워 하시고 슬퍼하셨다”고 썼다. 이어 “아무리 위험한 수술이라도 '내가 저 환자를 수술하지 않으면 저 환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감당해야지 어떡하겠냐'고, '확률이나 데이터 같은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러셨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고 적었다.

현영씨는 주 교수가 사고 얼마 전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 뜬금없이 어머니에게 “나는 지금껏 원 없이 살았다. 수많은 환자들 수술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고, 하고 싶은 연구 하고, 쓰고 싶었던 논문 많이 썼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소명을 다한 듯하여 감사하고 행복하다” 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많은 분들께서 저희 아버지를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해 주셨다”며 “아버지 가시는 길 배웅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며 글을 맺었다.

주 교수는 지난 16일 새벽 3시까지 응급수술을 한 후 잠시 귀가했다가 자전거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를 수료한 후 1998년 아산병원 흉부외과 전임의로 근무를 시작한 주 교수는 30년간 환자 진료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초응급 수술인 대동맥 수술에 대비해 아산병원에서 10분 거리에서 살았다. 양손 수술을 잘하려고 일부러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고 이불에 바느질 연습을 한 일화도 유명하다.

19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주석중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주석중 교수 장남이 유족을 대표해서 쓴 감사문 >
저는 고 주석중 교수의 장남 주현영 입니다.
여러분께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저희와 함께해 주신 덕분에 아버지 장례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이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비통했지만, 정말 많은 분들께서 오셔서 아버지가 평소 어떤 분이셨는지 얘기해 주시고, 진심 어린 애도를 해 주셔서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며칠 후 유품을 정리하러 연구실에 갔었습니다. 방금 수술복으로 갈아 입고 나가신 것 같은 옷가지들과 책상 위 서류들과 몇 개의 메스와 걸려 있는 가운 등 금방이라도 돌아오실 것 같은데 다시 뵐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거기 쓰시던 책상 서랍 여기 저기, 그리고 책상 아래 한켠에 놓여진 박스에 수도 없이 버려진 라면 스프가 널려 있었습니다. 제대로 식사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아니면 그 시간조차 아까워서 연구실 건너 의국에서 생라면을 가져와 면만 부숴 드시고 스프는 그렇게 버려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오로지 환자 보는 일과 연구에만 전심전력을 다하시고 당신 몸은 돌보지 않던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너무나 가슴아팠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는 서류들 속에는, 평소 사용하시던 만년필로 직접 쓴 몇 개의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벽에 있는 작은 게시판에도 기도문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영문으로 쓴 그 기도문 한 구절은 이렇습니다.
“…but what can I do in the actual healing process? Absolutely nothing. It is all in God’s hands.”
정성을 다해 수술하고 환자를 돌보지만 내 힘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니,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그렇게 적어두신 듯 합니다.

아버지 빈소가 마련된 첫날 펑펑 울면서 찾아온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대동맥 박리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으나 어려운 수술이라며 모두들 기피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집도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었노라며 너무나 안타까워 하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아무리 위험한 수술이라도 '내가 저 환자를 수술하지 않으면 저 환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감당해야지 어떡하겠냐'고, '확률이나 데이터 같은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러셨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힘들고 긴장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심장 수술에 정성을 다해 도와 주신 많은 분들께 늘 고마워하셨습니다.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데 능한 분이 아니셔서 아버지의 진심이 전해지지 못했다면 이렇게나마 아버지의 뜻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 어머니께 뜬금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나는 지금껏 원 없이 살았다. 수많은 환자들 수술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고, 하고 싶은 연구 하고, 쓰고 싶었던 논문 많이 썼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소명을 다한 듯하여 감사하고 행복하다.” 마치 당신의 운명을 예감 아닌 예감이라도 하셨던 것일까요. 저희는 아버지의 자취가 너무나 그리울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저희 아버지를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해 주신 아버지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가슴에 새기고, 부족하지만 절반만이라도 아버지처럼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귀한 걸음 하셔서 아버지 가시는 길 배웅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유족을 대표하여 주현영 올림.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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