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지나갈 위기 아니다”… 건설업계에 퍼진 ‘비관론’
“지금의 회복세는 추워지기 전 찾아오는 일시적인 인디안 썸머로 보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번 침체가 단기간에 끝날거같진 않다. 건설업계의 중·장기 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박철한 연구위원)
미국 금리인상 사이클이 교착상태에 접어들고 수도권 일부 지역에는 상승거래가 등장하면서 지난해부터 급속히 얼어붙었던 건설·부동산 경기가 하반기부터 반등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건설·부동산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건설·부동산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건설·부동산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비관론’을 쏟아냈다.
고금리·고물가·경기침체라는 대외경제 상황이 하반기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섣부른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역대급 호황’을 보낸 뒤 찾아온 ‘예견된 침체’인만큼 건설사들의 적극적인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혼재되는 지표들
이날 세미나에서 하반기 주택부동산 경기전망치를 발표한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상반기에는 여러 수치들이 혼재되어 나타났기 때문에 시장을 어떤식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오른다’와 ‘내린다’ 양쪽으로 해석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우선 2021년 11월부터 정부의 규제완화가 있었던 지난 1월까지 24.8%의 급격한 하락을 보였던 수도권 아파트 실거래가격 지수는 2월부터 3달간 4.8% 반등했다.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은 ‘역대 최저’였던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증가했다가 4월 전월 대비 8.3% 다시 감소했다.
그러나 김 부연구위원은 ‘최근 상승은 규제완화에 따른 일시적인 기저효과’라는 쪽에 무게를 뒀다. 매매량이 증가했다고 해도 과거 평균에 비하면 60~70% 수준이라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고 보긴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상승세는 서울·수도권 일부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수도권 민간주택 초기 분양율은 77.3%를 기록했지만, 5대 광역시와 세종시는 44.1%, 기타 지방은 29.5%를 기록했다. 지방 아파트 10곳 중 7곳은 준공 전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건산연은 하반기 주택가격 하락폭이 상반기보다 둔화할 순 있지만, 하락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5월까지 4.1% 하락세를 기록한 뒤, 하반기 추가로 0.7%가 더 하락해 연간 4.8% 낙폭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셋값 역시 상반기 6.0% 하락에 이어 하반기 2.0%가 추가로 내려 연간 8.0%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매수세 축소와 월세가격 상승으로 전세 임차수요가 커지면서 하락폭은 상반기보다 축소될 것”이라면서도 “입주물량 영향으로 상승전환까지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관론의 근거는
전문가들이 하반기 주택경기 침체를 전망한 가장 큰 이유는,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코로나19 기간 동안 주택시장으로 흘러왔던 유동자금이 대부분 회수됐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는 추가투자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김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추가 인상의 여력이 있다고 보는 전문가 의견도 만만치 않다”며 “1년 정기예금 수신금리에 못미치는 부동산 투자 수익률과 구매력 약화도 주택가격 상승의 제약 요인”이라고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연준의 금리 인상이 끝났다고 바로 회복 국면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5% 대로 높아진 금리가 유지되는 ‘금리고원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며 “이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 심화로 이어지는 만큼, 섣부른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전세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도 주택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지난해 3월부터 지난 5월까지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격은 21.5% 하락했는데, 이러한 하락폭이 유지될 경우 올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추가 반환해야 할 보증금 차액은 24조2000억원(한국은행)에 달한다.
다만 역전세 위험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세가격 20% 하락시 금융자산과 대출을 합쳐 보증금을 돌려줄수 있는 가구는 19만3000가구로,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8만8000가구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6월 기준 특례보금자리론 잔액은 14조7000억원인데, 이는 전세보증금반환 목적으로도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역전세를 대비한 금융지원책도 이미 마련된 상태다.
한제선 우리은행 주택기금부 연구위원은 “최근 임대인이 감액한 보증금만큼을 임차인에게 월세로 지급하는 ‘역월세’ 흐름도 나타나고 있는 만큼, 기존 임차인 퇴거 후 새 임차인을 들여 ‘역전세’가 현실화되는 가구는 이보다 적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설경기도 침체
건산연은 하반기 건설경기 역시 ‘침체’ 쪽에 무게를 뒀다. 박철한 건산연 연구위원은 올해 국내 건설수주가 전년 대비 12.9% 감소한 200조1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건설투자는 전년 대비 0.7% 증가한 259조5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올해 1분기 건설경기 흐름을 보면 선행지표인 수주는 침체한 반면, 동행지표인 건설투자와 기성은 양호했다”며 “지금은 건설사들이 신규 공사보다는 진행 중인 공사 마감에 집중하고 있지만 하반기 완공공사가 증가하면 민간 건축투자도 전반적으로 둔화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의 건설경기 위축은 2년6개월간 공사비가 30% 이상 급등한 반면, 주택가격은 하락하며 수익성을 맞추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태섭 신동아건설 이사는 “민간 공사비는 1년 사이 10% 이상 오른 반면, 예산은 3~4년전에 맞춰져있다보니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건설사 내부의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태훈 국토교통부 건설정책과 기술서기관은 “건설경기 활성화 방안을 범정부적으로 고민 중”이라면서도 “건설업계의 과감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건설사들이 건설경기침체를 이유로 정부 지원으로 ‘브릿지론’을 연장하며 착공을 미루고 있는데,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를 무기한 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분양 할인판매와 해외공사 수주 등을 통한 수익 다변화로 적극적인 자구노력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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