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빠말고, 그냥 아빠면 충분합니다” 조영진 교수의 ‘아빠 반성문’ [신간]
세상에 엄마 이야기는 많지만 아빠 이야기는 드물다. 어머니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반사적으로 따뜻함이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떠올리는 것과는 달리, 아버지에 대해서는 뭔가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서울장신대 조영진 교수는 상담심리학자이자 특히 ‘아빠’의 마음에 주목하고 수많은 ‘아빠’들을 만나온 ‘아빠 마음 전문가’다.
신간 ‘아빠 반성문’은 조영진 교수가 세상 모든 아빠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빠’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열심히 애써왔던, 그런데 그 애씀이 오히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결과를 마주하고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 많은 아빠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려 너무 힘주지 마세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좋은 아빠가 아니라 ‘그냥 아빠’입니다. 당신 자체로서 아이 옆에 있어주면 됩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책 제목이 ‘아빠 반성문’인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첫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아빠들은 양 극단의 감정을 동시에 경험한다. ‘아빠가 되었다’는 최고의 기쁨과 ‘갑자기 아빠가 되어버렸다’는 극한의 두려움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아빠들의 선택은 대부분 비슷하다. ‘이 아이에게 최고로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아빠의 비극이 시작된다.
이 책에는 가족, 특히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려다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내고야 만 여러 아빠들이 등장한다.
‘다 너를 위해서’라며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사랑과 관심이 완전한 통제로 나타나 아이의 사생활과 자유를 억압하는 아빠, 떼쓰는 버릇을 고친답시고 다섯 살 난 아이와 기 싸움을 벌여 이기려 드는 아빠,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아이와 아내에게 덧씌워 가족을 미워하게 된 아빠, 나약한 모습을 숨기고자 오히려 화를 내다가 아이의 두려움을 산 아빠, 아이가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만 같아 매섭게 훈육하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아빠 등등.
조영진 교수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특별히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아빠들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눈물의 자리를 찾아 들어간 것이다. 이는 그 자리가 그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무의식의 여정이다. 조영진 교수는 그 이야기 속에서 내담자의 진실을 포착해낸다. 무의식 내면에 억압된 기억, 여전히 아프도록 영혼의 상처로 남은 트라우마, 자아가 위기를 느끼고 상황에 대한 이해를 왜곡시킨 방어기제 등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아픔이 되고 있는지 알아내고 내담자가 이를 극복하도록 돕는다.
저자가 아빠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으로 다가가는 지름길은 ‘아빠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을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는 그저 아이임을 인정하고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나름의 방법을 이해했을 때, 아빠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좋은 아빠’ 가면을 벗어던지고 아이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곁에서 마음을 함께 나누는 ‘그냥 아빠’가 되어줄 수 있다. 책임감과 사명감 대신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할 때, 관계의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빠에는 저자인 조영진 교수도 포함된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 그래서 아빠가 어떤 존재인지 보고 배우지 못해 ‘아빠’라는 새로운 역할이 더 벅차고 부담스러웠다는 고백, 상담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내담자와 상담하는 것이 직업이면서 아빠로서는 늘 실수투성이라는 진솔한 반성 등이 여러 아빠들의 이야기와 얽혀 ‘지금 한국의 아빠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들게 한다.
저자의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와 솔직한 진정성, 아빠, 엄마, 아이를 넘어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돋보이는 심리학적 분석은 독자에게 감동과 함께 나와 가족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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