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섭 최 정, 간과된 아픔의 히스토리' 파국으로 끝난 빈볼 해설 파문, 오재원을 위한 변명[SC시선]

정현석 2023. 6. 2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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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 오재원 해설위원. 고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3.26/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양창섭 빈볼' 확신 해설로 논란을 빚은 오재원 SPOTV 해설위원(38)이 끝내 마이크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오재원 위원은 26일 오후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더 이상은 SPOTV 측에 부담이 될 것 같아 직접 계약 해지를 요청했고 결정이 됐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야구 해설을 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며 해설위원 사임 사실을 밝혔다.

해설위원 시절 수차례 논란 과정에서 억울했던 부분들에 대한 대응도 암시했다. 그는 "이제 모든 비하인드를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온 것 같아 저한테는 이제야 모든 것이 재시작이네요"라며 "조회수를 위해 없는 또는 지어낸 또는 만들어낸 모든 분들께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씀드리구요.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몇 년 혹은 몇 달 그리고 덩달아 악플을 보내신 분들도 조금만 기다려 주시구요"라며 향후 법적 대응 등을 암시했다.

오재원 해설위원이 자신의 SNS에 올린 SPOTV 해설위원 사임의 변. 출처=오재원 SNS
삼성 양창섭(왼쪽) 오재원 해설위원. 스포츠조선DB

▶'확신'에 상처받은 해설위원, '확신'으로 상처를 주다

세부적으로는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사태는 오재원 위원 스스로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프로야구 공식 중계 방송에서 '해석'의 영역에 대한 확신 발언은 위험하고, 적절치 못했다.

기존 틀에 박힌 해설과 차별화 된 신선하고 색다른 차원의 해설에 대한 지향을 감안해도 자칫 억울한 선수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잠시 간과했다.

오재원 위원은 현역 시절 박찬호 해설위원의 오해 해설로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하며 박 위원을 비난한 바 있다.

자신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를 대변하는 해설을 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절대 빈볼을 던지지 않았다"며 억울해 하는 삼성 양창섭의 빈볼을 확신하며 비난을 했다. 해설 때문에 억울했던 당사자가 해설로 억울한 선수를 만들었다. 이 부분은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SSG 랜더스 경기. 4회말 무사 최정에게 솔로포를 허용한 양창섭.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6.1/

▶최 정에 대한 양창섭의 트라우마, 몸쪽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오재원 위원의 확신. 그럴 수 있었다. 다만, 양창섭과 SSG 최 정 간 히스토리를 미처 파악하지 못해 나온 확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양창섭은 지난 1일 같은 장소이자 홈런이 잘 나오는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전에 선발등판, 뭇매를 맞았다. 4이닝 동안 무려 4홈런 포함, 10안타로 11실점을 했다. 그 중 2개의 홈런을 최 정에게 연타석으로 맞았다.

0-5로 뒤진 3회 바깥쪽 낮은 코스에 슬라이더를 던지다 중월 솔로홈런을 허용했다. 0-10으로 뒤진 4회에도 선두타자로 나선 최 정에게 가운데 낮은 슬라이더를 던지다 좌월 솔로홈런을 허용했다. 시즌 9,10호 연타석 홈런이자 역대 4번째 1400타점. 역대 최초 18시즌 연속 두자리 수 홈런이란 각종 기록이 전광판을 화려하게 수 놓았다. 양창섭에게는 잊을 수 없었던 긴 하루였다.

이날 경기를 끝으로 말소됐던 양창섭은 16일 콜업 후 3번째 경기였던 24일 인천 SSG전에 마운드에 올랐다.

아픈 기억이 생생한 바로 그 장소. 7-13으로 크게 뒤진 7회 마운드에 오르자 마자 맞닥뜨린 상대는 공교롭게도 최 정이었다.

가뜩이나 이날 앞선 타석을 포함, 3경기에서 4홈런을 몰아치며 절정의 홈런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던 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일한 약점인 몸쪽 높은 코스를 보고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 과정에서 공이 유니폼에 스쳤고, 큰 점수 차에 최 정이 잠시 오해의 시선을 던졌지만 이내 1루로 나갔다. 양창섭은 모자를 벗어 정중히 사과했다.

지난 2015년 4월3일 부산에서 열린 롯데-두산전에 앞서 강민호가 오재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스포츠조선DB 2015.04.03.

▶파문의 걷잡을 수 없는 확산, 초동대처가 가능했다

아웃을 잡지 못해 자존심과 속이 상했을 양창섭을 향해 오재원 위원은 사구 직후 "이건 대놓고 때린 것이다. 저는 이런 상황을 가장 싫어한다"며 "지고 있는 상황에, 이건 사과할 필요도 없다. 던지자마자, 전부터 이상했다. 제가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대놓고 때린 것이다. 최 정이 모를 리가 없다"고 고의적 빈볼을 확신했다.

너무나도 억울했던 양창섭이 SNS에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인간도 역시 입으로 걸린다'는 탈무드의 문구를 인용한 게시물을 올리며 간접적으로 항의 표시를 했다. 오재원 위원은 지지 않고 자신의 SNS에 '어리석은 사람은 들은 것을 이야기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본 것을 이야기한다'는 탈무드의 문구를 게재하며 반박에 나섰다.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삼성 임시주장이자 오재원과 가까운 사이인 강민호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

25일 인천 SSG전에 앞서 이날 중계를 맡은 오재원과 양창섭의 만남을 주선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였는지 만남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왼쪽)양창섭의 SNS 글, (오른쪽) 오재원 해설의 SNS 글.
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롯데와 삼성의 경기. 박진만 감독. 대구=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6.9/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나도 틀릴 수 있다

빈볼 논란이 확산되면서 양 팀 사령탑도 전날 상황에 대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다.

삼성 박진만 감독은 "투수는 상대 타자의 약점을 파고 드는 것이고, 타자는 상대 투수의 약점을 파고 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최 정 선수가 몸쪽 공이 약하다는 분석에 따라 투구했을 뿐이다. 그런 얘기(고의적 빈볼이란 오재원 해설위원의 주장) 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승현 선수가 앞선 최 정 타석에서 변화구가 가운데로 몰려 홈런을 맞았다. 홈런을 맞으려고 던지는 투수가 있나. 논란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고 빈볼 가능성을 부인했다.

최 정의 소속팀 SSG 김원형 감독도 "(최) 정이는 (투수를 한번 쳐다보는)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빈볼이 맞다 아니다를 얘기하기 전에 요즘은 그렇게 안한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점수 차가 나고 상대 잘 치는 타자에게도 정상적으로 플레이 한다. 우리 때와는 다르다"고 빈볼 가능성을 일축했다.

3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SSG 랜더스 경기. 김원형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5.31/

시대는 체감보다 빠르게 변한다. 프로야구 판도 다르지 않다.

과거 군사 정권으로부터 파생된 강압적 문화 속에 폭력이 사랑의 체벌로 둔갑하던 시절. 오재원 위원이 야구를 배우던 학창 시절은 그런 폭력의 시대였다. 경기 상황에 따라 상대 핵심 타자에게 수시로 빈볼이 날아들기도 했다. 오 위원은 현역 시절 이런 분풀이성 빈볼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저건 옳지 않다'고 평소 생각했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니 순간 그런 격한 해설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 위원과 양창섭이 살았던 시대의 차이를 감안하면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 위원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시대는 크게 바뀌었다.

학교에서 선후배의 기합이 학교폭력으로 엄벌을 받는 시대. 사생결단, 전쟁 같던 그라운드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전투적으로 야구를 배운 외국인 투수도 사구를 맞힌 뒤 모자를 벗어 사과하는 것이 작금의 KBO리그다.

오재원 위원은 자신의 현역 시절 기억 속에 양창섭의 사구를 당연히 빈볼이라 확신했을 수 있다. 누구나 착각할 수 있다. 특히 그런 시절을 산 사람들은 경험 속에 체화된 인식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도 쉽지 않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아쉬운 건 수습 과정이었다. 강민호의 중재 하에 빠르게 양창섭을 직접 만나 공개적으로 오해를 풀고 훌훌 털고 갔으면 어땠을까. 양창섭은 "결코 빈볼이 아니었다"고 펄펄 뛰면서도 "게시물을 올린 건 내 잘못"이라며 이를 서둘러 삭제했다.

어쩌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이 눈덩이 처럼 커지면서 결국 파국을 맞고 말았다. 새로운 트렌드를 추구하던 젊고 유망한 해설자를 잃었다.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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