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82년 만에 신기원 열리나, 아라에스 '꿈의 타율' 4할 도전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는 1941년 테드 윌리엄스다. 22세 시즌에 타율 0.406를 기록하면서 데뷔 첫 타격왕을 차지했다. 윌리엄스는 통산 5번의 타격왕에 올랐지만, 4할 타율을 넘어선 건 1941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4할 타자는 메이저리그에서 종적을 감췄다. 홈런과 도루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단일 시즌 130도루(1982년 리키 헨더슨) 73홈런(2001년 배리 본즈) 40홈런 40도루(1988년 호세 칸세코, 1996년 배리 본즈, 1998년 알렉스 로드리게스, 2006년 알폰소 소리아노) 같은 기록들이 탄생했지만, 4할 타율을 달성한 선수는 등장하지 않았다. 4할 타자는 듣기만 했을 뿐, 본 적이 없는 존재가 됐다.
오아시스를 찾으려는 선수들은 있었다. 1980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조지 브렛은 9월 20일까지 시즌 타율이 0.400이었다(정확히는 .39950). 시즌 막판까지 4할 타율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면서 마침내 윌리엄스의 후계자가 나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브렛은 다음 7경기에서 27타수 4안타(0.148)에 그쳐 시즌 타율이 0.384로 떨어졌다. 마지막 6경기 동안 19타수 10안타(0.526)를 몰아쳤지만, 끝내 시즌 타율 4할은 회복하지 못했다(시즌 타율 .390).
브렛의 뒤를 이어 오아시스를 쫓은 선수는 1994년 토니 그윈이었다. 그윈은 7월 중순까지 타율이 0.382였는데, 시즌 후반이 될수록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7월 10일 이후 29경기에서 115타수 49안타로, 이 기간 타율이 0.426에 달했다. 8월 12일 시즌 타율이 0.394였던 그윈은, 선수 파업으로 시즌이 중단되면서 더 이상 도전을 이어가지 못했다.
1980년 브렛과 1994년 그윈이 좌절하면서 강력한 후보는 나오지 않았다. 1999년 래리 워커의 타율 0.379가 가장 근접한 기록이었다. 4할을 노리는 타자는 매년 나왔지만, 그 기간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눈앞에 오아시스는 환상 속 신기루로 변했다.
4할 타율은 이대로 불멸의 기록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올해 잊혀져 가는 4할 타율을 다시 소환한 선수가 나타났다. 마이애미 말린스의 루이스 아라에스다.
2019년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데뷔한 아라에스는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데뷔 첫 25경기 타율이 .0.405였다. 타석 수가 늘고 상대 투수의 분석이 시작되면서 타격감은 주춤했다. 하지만 아라에스는 시즌 타율을 0.334로 마치면서 남다른 정확성을 각인시켰다.
지난해 아라에스는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에 올랐다(0.316). 그러나 타격왕 못지 않게 의미 있는 기록은 144경기 출장이었다. 아라에스는 고질적인 무릎과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지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시즌을 앞두고는 넬슨 크루스와 함께 훈련하면서 내구성이 좋아졌다. 크루스는 아라에스에게 식단 관리를 조언하면서 하체를 강화하는 법을 도와줬다. 덕분에 아라에스는 건강한 시즌을 보낼 수 있었고, 하체가 견고해지면서 타격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아라에스는 지난 겨울에도 크루스의 집을 방문했다. 크루스는 아라에스에게 "이제는 근력을 키워야 할 때"라고 알려줬다. 근육을 만드는 건 살을 빼는 것보다 더 힘들었지만, 아라에스는 크루스의 혹독한 훈련을 믿고 따랐다. 크루스는 "타격 원리, 타격 기술은 이미 뛰어난 선수였다"고 말하며, "그러면 아라에스에게 필요한 건 뛰어난 타격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내 몸을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겨울 동안 체격이 달라진 아라에스는 시즌 동안 뛰게 될 팀도 달라졌다. 미네소타가 선발 투수 파블로 로페스를 받아오면서 아라에스를 마이애미에 보냈다. 아메리칸리그에서 내셔널리그로 이동했지만, 바뀐 팀이 마이애미라는 점은 아라에스에게 행운이었다. 마이애미는 히스패닉 선수들이 선호하는 팀이다.
개막전에서 멀티히트를 친 아라에스는 세 번째 경기에서 4안타를 때려냈다. 4월 12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는 마이애미 최초의 히트 포 더 사이클도 선보였다. 아라에스는 5월말에 타율이 0.371까지 내려왔는데, 6월 4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전에서 시즌 첫 5안타 경기를 완성하며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6월 4일부터 6월 20일까지 14경기 구간에서 5안타 경기만 세 차례나 만들었다. 그러면서 시즌 타율 4할에 복귀했다.
아라에스의 위엄은 세부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아라에스는 타석에서 헛스윙률이 유일하게 한 자릿 수인 타자다. LA 다저스 제임스 아웃맨의 헛스윙률이 40.1%에 달하는 반면, 아라에스의 헛스윙률은 7.1%밖에 되지 않는다.
2023 규정 타자 최저 헛스윙률 (%)
12.9 - 알렉스 버두고
11.4 - 스티븐 콴
10.7 - 니코 호너
7.1 - 루이스 아라에스
투수들은 타격감이 절정에 있는 아라에스를 피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 밖으로 공을 던진다. 하지만 아라에스는 이 공들도 걷어내서 안타를 때려낸다. 스트라이크 존 콘택트 비중뿐만 아니라 아웃존 콘택트 비중도 독보적으로 높은 타자가 바로 아라에스다.
스트라이크 존 콘택트 비중 (%)
94.5 - 루이스 아라에스
94.2 - 니코 호너
93.7 - 알렉스 버두고
아웃 존 콘택트 비중 (%)
88.3 - 루이스 아라에스
77.8 - 마일스 스트로
77.1 - 니코 호너
올해 메이저리그는 리그 평균 타율이 0.248다. 극심한 투고타저였던 지난해 0.243보다 높아졌지만, 여전히 투고타저에 가까운 기록이다. 규정 타석을 채운 155타자들 중 3할 타율을 넘긴 타자는 8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와중에 아라에스는 현재 타율 0.399로 꿈의 타율 4할에 도전하고 있다. 심지어 현지에서는 아라에스의 4할 타율 성공 가능성을 대단히 높게 측정하고 있다.
2023 시즌 타율 순위
0.399 - 루이스 아라에스
0.328 -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0.319 - 오스틴 헤이스
아라에스의 또 다른 무기는 멘탈이다. 현재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집중된 환경에도 압박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는 아웃이 돼도 웃으면서 덕아웃으로 돌아간다. 아라에스는 인터뷰를 통해 "매일 안타를 치기 위해 노력한다. 나에게 5타석이 주어지면 나는 5안타를 칠 것이다"고 말했다. 안타를 향한 집념을 엿볼 수 있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명맥이 끊겼던 4할 타자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타격의 신기원을 열고 있는 아라에스가 테드 윌리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오아시스가 신기루로 변하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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