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다하겠다" 이낙연의 슬기로운 정치 복귀? [여의(汝矣)도록(圖錄)]
“못다 한 책임 다하겠다” 사실상 정계 복귀
사법리스크·혁신위 논란 등 이재명 리더십 손상
이낙연, 민주 ‘대안부재론’ 뚫을 수 있을지 관건
“왜 지금까지 (유학을) 가지 않았냐 하는 분들도 있다. 바로 가고 싶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지원을 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해 6월7일,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직전 자신을 배웅해주던 지지자 300여명에게 이같이 말했다. 대선 이후,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 ‘개딸’ 공격에도 지방선거까지 모두 치르고 유학을 떠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12대 5.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6·1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단 5곳을 사수하는데 그쳤다. 선거 패배 원인을 두고 이재명 대표 ‘방탄’ 논란과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꼽힌 가운데, 이낙연 전 대표도 이 대표 강성 지지자인 개딸로부터 화살을 맞았다. 이 전 대표가 제대로 돕질 않아서 대선과 지방선거도 졌다는 식이었다. 대선 당시, 이재명 캠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지방선거에서도 전국을 다니며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이 전 대표를 향한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의 멸칭으로 쓰인 ‘수박’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이 전 대표 지지자들도 ‘수박’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전 대표는 그런 지지자들에게 “경멸과 증오, 저주를 정의와 선함으로 이겨 달라”고 격려한 셈이다. 당 상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지선 패배 이후 당 상황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는 “동지들이 양심과 지성으로 잘 해결해가리라 믿는다”라고 짧게 답했다.
이재명 체제 민주당은 해가 바뀌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일대오만 강조하던 지도부에 피로감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 당규상 5월에 치러야 할 원내대표 선거가 연초부터 언급됐다. 박광온∙전해철∙홍익표 의원 등 구체적인 원내대표 후보군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수면 아래에 있던 이재명 체제에 대한 피로감은 2월27일을 기점으로 폭발한다. 이날 국회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표결했다. 민주당은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사정은 달랐다.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 찬성표가 절반을 넘지 못해 부결됐지만 민주당 내에서 30여표가량 이탈표가 발생했다.
5월 원내대표 선거. 의원들은 친문계이자 이낙연 전 대표 체제에서 사무총장을 지낸 박광온 원내대표를 결선 없이 선출한다. 친이재명계 일변도 당지도부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투표라는 해석이 나왔다. 박광온 원내지도부가 개최한 첫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은 당을 혁신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혁신의 방향과 혁신기구의 권한부터 합의가 되질 않았다. 돈 봉투 해법과 관련, 친명계에서는 “대의원제 폐지” 요구를 하며 이 대표 권한은 침해하지 않는 혁신기구가 들어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비명계는 “이재명 지도부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양측의 보이지 않는 샅바 싸움은 의외의 지점에서 결론이 났다. 5월 어린이날, 한 언론 보도가 민주당을 들쑤셨다. 7인회 멤버이자, ‘이재명 키즈’로 불린 김남국 의원이 임기 도중 상당한 액수의 가상자산을 거래한 흔적이 있단 보도였다. ‘청빈한 젊은 정치인’을 표방해온 김 의원이, 그것도 상임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코인을 거래했단 기록까지 나왔다. ‘이모 논란’을 빚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코인을 거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민심 이반이 가시화됐다.
지난 5일 이재명 대표는 혁신기구에 전권을 넘기겠다고 밝히며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을 혁신기구 책임자로 내정했다고 갑작스럽게 발표한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9시간 만에 물러났다. 천안함 피격 사건을 ‘자폭’이라고 주장하고, 미 CIA가 대선에 개입했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글이 문제가 됐다. 당장 인사검증이 미비했다는 비판과 동시에 당내에서는 “친위 쿠데타를 도모하다가 실패한 것 아니냐”, “혁신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돈 봉투 논란을 타개하기 위해, 혁신기구 설치까지 한다고 했지만 무소속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결국 부결됐다. 윤석열정부 들어 국회에 전달된 노웅래·이재명·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전부 부결되면서 ‘방탄민주당’이라는 오명도 뒤집어썼다.
24일. 이낙연 전 대표가 예고한 대로 1년여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잘 닦아 반들거리지만 오래 신어 주름이 있는 검은 구두, 청록색 넥타이 차림은 출국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와 쓰는 말은 달라졌다. 그는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며 “제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정계 복귀 선언이다.
이 전 대표의 별명은 ‘엄중 낙연’이었다. 어떤 현안을 물어보더라도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는 식으로 답하는 등 ‘고구마 화법’을 쓰는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날은 이 전 대표가 국무총리 시절, 현재 여당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공격을 받아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이 전 대표는 지지자들을 향해 “다시는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윤석열정부에도 “모든 국정을 재정립해주길 바란다. 대외관계를 바로잡아주길 바란다”라고 간명하게 비판했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을 향해서도 메시지를 냈다. 일본에는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를 중지하고 대안을 찾아달라”고, 미국과 중국에는 “대한민국을 더 존중해야 옳다”고, 러시아에는 “침략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낙연계 이병훈 의원은 “당내 현안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간 다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전 대표는 당분간 외교·안보 강연과 정책 개발 등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상 다시 대권 행보에 나선만큼, 이 전 대표도 적잖이 소환될 전망이다. 특히 이 전 대표는 자신의 강점으로 ‘외교 경험이 많다’는 점을 꼽아온 바 있다. 이 전 대표는 5선 국회의원·재선 전남지사·국무총리·집권여당 당대표를 역임했다. 문재인정부 국무총리 시절에는 30개국을 다니며 직접 외교 현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쓴 ‘대한민국 생존전략’에는 미국에서 공부한 국제관계와 자신의 경험이 담겼다. 이와 함께 ‘연성강국 신외교’를 국가비전으로 내세웠다. 국방력 등 하드파워가 아니라 문화가 힘이 되는 ‘소프트 파워’ 강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한·미·일과 북·중·러라는 대결구도에 갇히지 않은 유연한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도 담았다. 이 전 대표는 책에서 “평화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세계 다섯 번째 나라, G5로 도약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여야 공히 ‘외교 논란’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 전 대표는 자신의 비교우위로 ‘외교’를 들고나온 셈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그동안 ‘대안부재론’ 주장이 나왔다. 이재명 대표를 대체할 인물이 민주당 내에 없는 만큼, 비명계는 구심점을 찾지 못할 것일 만큼, 당내 분란을 일으키기보다는 이재명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전 대표 귀국 당시, 이 전 대표 지지자 1500여명은 레드카펫을 깔듯 ‘인간 띠’를 둘러 이 대표를 맞았다. 인간 띠는 입국장부터 공항 출구 밖 도로까지 이어졌다.
한때 40%에 육박하던 이 전 대표 대선 후보 지지율은 이제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이 전 대표가 대안부재론을 뚫어낼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 대표 외에 지지층 동원이 가능한 정치인은 현재까지 이 전 대표뿐이다.
김현우 기자 with@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덕수 탄핵 때 ‘씨익’ 웃은 이재명…“소름 끼쳐, 해명하라” 與 반발
- "경찰차 막아라!" “대통령 지켜라”… 영장 발부 후 아수라장 된 尹 관저 앞 [밀착취재]
- 선우은숙 “녹취 듣고 혼절”…‘처형 추행’ 유영재 징역 5년 구형
- “아내가 술 먹인 뒤 야한 짓…부부관계 힘들다” 알코올중독 남편 폭로
- 이세영, 얼굴·가슴 성형수술로 달라진 분위기 “회사에서 예쁘다고...”
- “남친이 술 취해 자는 내 가슴 찍어…원래는 좋은 사람“ 용서해줘도 될까
- 황정음, 이혼 고통에 수면제 복용 "연예계 생활 20년만 처음, 미치겠더라"
- 은지원, 뼈만 남은 고지용 근황에 충격 "병 걸린 거냐…말라서 걱정"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