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연차 쓰려면 내 어깨를 주물러라"는 팀장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오피스가 갑갑하다고 느끼는 직장인 A 씨부터 섭섭하다고 느끼는 직장인 Z 씨까지 약 2,100만 명이 노동의 수고로움으로 밥벌이를 합니다. 일하다 보면 보상 없는 과로·강제노동·직장 내 괴롭힘·갑작스러운 해고 등 매섭고 모진 풍파에 시달립니다.
몇몇은 근로기준법이라는 우산을 들고 몸을 지키는데, 누군가는 우산 하나 들지 못합니다.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약 400만 명이 근로기준법이라는 우산 한 번 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약 1,700만 명의 직장인은 어찌어찌 근로기준법이라는 우산을 쥐어서 들고 있는데, 21세기 한반도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숨 막히는 일들이 계속 벌어집니다. 직장인 A 씨는 그래도 우산은 들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 직장인 A 씨를 갑갑하게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빌런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안마를 하라고 시킨 사람입니다. 듣고 보니 그 이유가 터무니없습니다.
직장인 A 씨는 치료사입니다. 출근해서 병원의 치료실 한편에 앉아 환자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길지는 않습니다. 병원 문을 열면 노련한 의사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은 환자가 하나둘씩 치료실로 올라옵니다. 처방은 내려져 있습니다. 사무적으로 치료만 하려 했던 직장인 A 씨는 알아차립니다. 환자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겁니다. 얼굴이 들어오고, 그 표정은 흐린 기운이 서려있기 일쑤입니다.
치료 시간 단 30분, 길지도 않지만 잠시라도 다정한 척을 해보려 “어쩌다 다쳤어요?”라고 묻습니다. 환자들은 여러 삶을 들려줍니다. 20여 년간 컴퓨터 입력 작업을 하다가 손목 관절이 아픈 회계직원과 태어나서 처음 축구를 하다가 발목을 다친 여성분 그리고 다이어트 댄스를 추다가 어깨가 뻣뻣해졌는데 그게 유튜브를 따라 한 거라며 얼마나 재밌는지 아냐고 말하는 분, 어르신 목욕을 돕다가 무릎을 다쳤다는데 요양보호사의 일이 간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까지.
여러 사람이 들고나는 치료실에서 떠나는 환자를 배웅하면 직장인 A 씨의 일은 끝납니다. 조금은 밝은 표정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보람도 있고, 의미도 있을 겁니다. 밥벌이이기도 하니 월급이 조금 더 오르면 좋겠지만, 당장 갑갑하다고 불만을 표하진 않습니다. 그보다 당장 숨이 막히게 갑갑하게 만드는 건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입니다.
직원은 100여 명, 사람이 모이면 최소한의 규칙이 만들어집니다. 직장에서는 취업규칙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사장이 정합니다. 아무래도 모두가 알아야 하니 이런 규칙은 서류에 적어둡니다. 그런데 적히지 않은 규칙도 있습니다. 누가 언제 정했는지 모르지만, 기분이 나빠지는 규칙, 나라면 만들지 않았을 것 같은 규칙, 목구멍에 스멀스멀 부아가 치밀어 오르게 하는 그런 규칙도 있습니다.
비뚤어진 연차 규칙
직장인 A 씨는 급하게 연차를 써야 할 일이 있어서 신청자가 없는 날로 연차를 쓰겠다고 팀장에게 말했습니다. 돌아온 답변이 “응 승인”이라는 긍정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 흐르듯 순리대로 갑니다. 연차 쓰는 일, 고속도로 나들목을 벗어나면서 우측 깜빡이 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팀장은 이걸 막습니다. 처음에는 “응 승인”, 그리고 같은 날 저녁에는 “내 기분 봐서 정할게”라고 하더니만 급기야 다음날에는 “내 어깨가 아프니 주무르라”고 합니다. 긍정에서 보류로, 보류에서 조건부 긍정으로 바뀝니다. 이제 교통사고입니다.
다음날 직장인 A 씨는 마지못해 마사지볼로 팀장의 어깨를 지그시 누릅니다.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곧 불쾌하다는 표시로 자리를 황급히 뜹니다. 그러나 이미 권력감에 도취한 팀장은 다시 불러서는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며 어깨를 다시 들이밉니다. A 씨는 모멸감을 겪느니 차라리 연차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상종도 하기 싫다는 제스처와 함께 말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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