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직장인 64%, 그 누구에게도 커밍아웃 못해
과거 미국계 회사에 다녔던 직장인 A씨는 친한 동료들에게 대부분 커밍아웃을 했다. 하지만 현재 다니는 한국회사에선 그러지 못하고 있다. A씨는 “미국계 회사 사규에 성소수자 차별금지가 명시돼 있어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다. 아직 한국에선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A씨처럼 직장에서 아무에게도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성소수자가 10명 중 6명 이상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퀴어노동권포럼’은 현재 직장생활 중인 성소수자 407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22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395명 중 64.1%가 직장 내 누구에게도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고 27일 밝혔다. 5명 이상의 동료에게 커밍아웃을 한 사람은 10.6%(42명)에 불과했다.
주관식 답변을 보면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이유는 “회식자리에서 대표가 성소수자는 차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인간적으로 따르던 분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싶어서 동성애 얘기를 살짝 꺼냈는데, 단번에 동성애자는 정신병자라고 말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등이었다.
커밍아웃을 하지 못해 가장 답답할 때가 언제인가를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응답자의 66.8%가 ‘일상에 대해 거짓말을 하거나 성소수자임을 숨기기 위해 꾸며야 할 때’, 64.3%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질문을 들을 때’, 52.7%가 ‘일상과 연애, 가족 상태 등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싶을 때’라고 답했다. 주관식 답변을 보면 “남자 좋아하는 척을 하고 여자친구와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삶의 반이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사가 결혼에 대한 훈계를 하거나 남자를 소개시켜준다고 할 때, ‘아주 멋지고 예쁜 여자친구가 있거든요!’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너무 답답했다”, “동료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할 때 성소수자가 아닌 척하면서 반박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성소수자 당사자라는 것을 알아도 저런 얘길 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
‘직장 내 커밍아웃을 하기 위한 조건’(복수응답)으로 48.4%가 ‘직장의 분위기가 소수자 친화적일 때’를 꼽았다. ‘동성 배우자와의 결혼식·신혼여행에 대한 축의금과 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을 때’(33.2%),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명시된 윤리강령이나 취업규칙이 있을 때’(30.1%), ‘동성배우자 등 나의 비혈연 동거가족이 동등한 가족구성원으로서 사내 복지·돌봄 휴가 등을 이용할 수 있을 때’(28.4%) 등이 뒤를 이었다.
성소수자 직장인들은 자유롭게 커밍아웃을 하고, 차별과 편견 없이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차별금지법·생활동반자법 제정 등 제도 개선을 많이 꼽았다.
여수진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노무사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어야 한다는 것은 매순간 긴장과 위축된 환경 속에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며 “성소수자들이 바라는 것은 일상과 연애, 가족관계가 직장에서도 평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시운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무사는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한 가족, 친구, 동료 등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성소수자 직원을 포용하고 인정할 수 있는 법·제도, 사내 제도 등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노동권익센터, 다움(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민주노총 성소수자조합원모임,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한국여성민우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지난 3월 퀴어노동권포럼을 구성하고, 직장 내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권리보호와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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