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몰랐지만 전쟁고통 알기에 기꺼이 참전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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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벨기에가 독일제국에 당했듯 전쟁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레이몽 베르(90·사진) 벨기에 한국전쟁 참전협회장은 26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참전 결정 후 "한국인들의 위에 있거나 그들을 점령하러 가는 게 아니라, 도우러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철저히 교육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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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때마다 늘어나는 한강다리
너무 많아져 세는 것 포기했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벨기에가 독일제국에 당했듯 전쟁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레이몽 베르(90·사진) 벨기에 한국전쟁 참전협회장은 26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참전 결정 후 “한국인들의 위에 있거나 그들을 점령하러 가는 게 아니라, 도우러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철저히 교육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주변 열강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의 역사를 경험한 유사점 때문인지 벨기에 참전부대에는 늘 각별한 ‘주의사항’이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이 파병된 (벨기에) 군목과 함께 병사들이 먹지 않는 전투식량을 수시로 걷곤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만 19세에 한국전 참전을 자원해 1952년 11월 부산에 도착한 베르 협회장은 같은 해 2월 26일 통합부대로 편성된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 소속으로 ‘철의 삼각지대’인 강원 김화 잣골에 배치됐다.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는 이 곳에서 4월 21일까지 55일 연속 이어진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전공을 세웠다. 베르 협회장은 “미군 대령이 우리 부대를 방문해 철수를 권유했지만 우리 지휘관이 ‘벨기에군은 한국인들을 도우러 온 것이지 휴식이나 하러 온 게 아니다’고 거부했다”며 “그 얘기에 병사들은 모두 뿌듯하고 자랑스러움을 느꼈고, 그런 분위기 덕분에 55일간이나 잣골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여러 차례 방한한 베르 협회장은 “전방을 떠나 서울로 향했을 때 한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딱 하나 있었다”며 “근데 한국에 다시 갈 때마다 6차선 대교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너무 많아 세는 것을 포기했다”며 웃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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