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사 출신의 140쪽 검토보고서에 발칵 뒤집힌 감사원

이슬기 2023. 6. 2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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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가능한 의미는 법률해석의 한계이며 문언 해석이 법률해석의 기본임"

얼마 전 전현희 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를 두고 감사원 내부에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감사원의 최고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 조은석 위원(주심)이 감사원 사무처를 작심하고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조 감사위원은 당시 감사원 내부망에 비판 글을 올리기 전에, 감사원 사무처가 제출한 감사결과보고서에 대한 140쪽 자리 검토보고서를 썼습니다.

KBS가 국회를 통해 조은석 위원의 검토보고서를 입수했는데, 첫 문장은 '법의 해석'을 다루는 법학통론의 한 구절을 옮겨다 놓은 듯한 위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연관 기사] [단독] ‘전현희 사건’ 주심의 작심 비판…“헌법기관서 있을 수 없는 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98454

이 보고서는 전현희 권익위원장 감사의 사안별 쟁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수십 년간 누적된 감사원의 관례와 관행 가운데 상당수가 법에 어긋난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감사원장이 심의에 관여하면 안 됐다" vs "고발만 하면 제척? 말도 안 돼"

먼저 조은석 감사위원은 전현희 위원장의 감사 내용을 심의할 때, 최재해 감사원장이 관여하면 안 됐다고 주장합니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혐의로 전현희 위원장에게서 고발을 당했는데, 감사원법 제15조에는
'자기가 관계있는 사항'은 심의에 관여할 수 없다고 돼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원 사무처는 반박합니다.

감사원 운영규칙에 따라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 해당할 경우에만 제외되는 것이란 겁니다. 고발을 당하긴 했지만, 이해 관계는 없다는 주장입니다.

조 감사위원의 재반박이 이어집니다.

모법(母法)인 감사원법에는 '자기와 관계가 있는 사항'이라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범위를 감사원 규칙에 위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감사원 운영 규칙보다 상위인 모법을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자기와 관계만 있으면 제척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조은석 위원의 의견입니다.

특별조사국 주도로 이뤄지는 상시적인 직무감찰에 대해서는 별도 '의결' 없이 감사를 해왔다는 감사원 사무처의 주장에 대해서도 조 위원은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조 위원은 2010년부터 과거의 사례를 전수 분석해보니 상시 직무감찰이라는 식으로 감사위원회 의결을 받아왔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2022년에만 상시 공직 감찰에 대한 감사위원회 의결이 누락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감사원 사무처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격한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이런 논리라면 피감대상이 감사 담당자나 책임자를 고발만 해도 모두 '제척사유'가 되기 때문에, 정상적인 감사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게 사무처의 주장입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 사무처 관계자는 "감사원 운영규칙은 감사원법의 위임을 받아 제정된 것으로 법적으로 유효하다"면서 "조 감사위원 주장에 따르면 피감대상과 우호적 관계가 있는 감사위원도 제척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법 조항의 해석이라는 측면에서는 조은석 감사위원의 주장이 앞선 듯 보이고, 현실적인 감사 업무 보장이라는 측면에선 감사원 사무처의 반박이 일리가 있어 보이는 상황입니다.


■조은석 위원 "감사위원회 의결 안 거치면 '형사처분' 받을 수도"

조은석 위원은 감사위원회의 의결이 왜 중요한지, 또 이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자세히 적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요지만 추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 감사위원회의 의결 과정이 없는 감사원 감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의 성립이 가능하다.

② 감사위원회 의결 없는 감사를 옹호한 감사원 보도자료 역시 '허위공문서'라는 형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감사위원이 같은 감사원 내부 식구를 겨냥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말까지 한 겁니다.

그러나 감사원 사무처는 모든 감사 사안이 감사위원회 의결을 받아야 하는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감사원 사무처는 '주요 감사계획'에 대해 감사위원회 의결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연간감사계획'을 가리킨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연초에 한 번 위원회가 '연간 감사계획'을 의결하고, 하반기 들어 '수정 계획'을 한 번 더 의결할 경우 사무처는 그때그때 감사 사안 별로 의결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대해 조 감사위원은 감사원법 제12조 제1항 제1호를 들어 재반박합니다.

감사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은 '주요 감사계획'이 아니라 '주요 감사계획에 관한 사항'이다, 즉 '주요 감사계획' + '관한 사항' 모두를 감사위원회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 감사위원은 연간감사 계획은 1년 동안 이뤄지는 개별 감사계획의 집합체이고, 이에 따라 개별 감사계획을 추가하는 건 이 연간 감사계획을 변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주요 감사계획이 아닌 예외 사안의 경우 감사원장의 직권으로 감사에 착수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 위원은 감사원법에 위임 규정이 없는 사항이어서 효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규칙보다 하위 규정인 훈령과 예규는 "더욱 효력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감사원 사무처가 감사원법의 위임이 없거나 위임 범위를 벗어난 '훈령과 예규'를 근거로 감사를 시행한 사례가 있다는 것은 감사원법을 반복해서 위반한 것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위법의 반복'이 감사위원회 의결 없이 감사를 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도 강조했습니다.

감사원 사무처는 이러한 조 위원의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감사계획이 변경될 때마다, 혹은 추가될 때마다 합의제 기구인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받아야 한다면 손발을 묶고 일을 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정상적인 업무를 위해선 감사위원회가 큰 틀의 연간 감사계획을 의결하고, 감사원은 사안 별로 규칙, 훈령, 예규에 따라 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감사원 사무처 말대로 사회적 요구나 당시 상황에 따라 긴급하게 감사에 들어갈 필요가 있는 사안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감사원이 최근 들어 긴급하게 감사에 착수한 사안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것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일부 감사위원들은 지난해 서해 해경 피격 사건 감사 때부터 감사에 착수하기 위해선 '감사위원회 의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는데, 1년 가까이 이어져 온 문제가 결국 이번 '전현희 위원장 감사'를 두고 다시 불거진 셈입니다.

■ '검사 출신' 감사위원과 '공무원 출신' 감사원장

역대 감사원장은 '판사' 출신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이회창, 김황식, 황찬현, 최재형 전 원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꼭 판사 출신이 아니더라도 이시윤, 양건 전 원장처럼 변호사, 법대 교수 등 법조인이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최재해 현 감사원장은 법조인이 아닙니다. 행시 출신으로 공직생활 대부분을 감사원에서 보냈고 감사위원까지 역임한 이른바 '정통 감사원 출신' 첫 감사원장입니다. 감사원의 감사 업무수행과 관행, 관례에 대해서는 최재해 원장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감사원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서울고검장까지 지낸 '정통 법조인' 출신의 감사위원이 '정통 감사관'인 최재해 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을 감사원법으로 압박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습니다.

최근 사태를 바라보는 감사원 내부의 시선은 복잡해 보입니다.

일선에서 감사업무를 수행하는 감사관들은 "법대로"를 외치는 조 감사위원의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 합니다.

감사원 관계자는 조 감사위원의 보고서는 "감사원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형식논리에 불과하다"면서 "감사원 내부의 소수의견일 뿐"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조 감사위원의 돌발행동을 바라보는 감사원 사무처 내부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파적 편향 때문에 조은석 위원이 감사원을 흔들고 있다는 일부 주장도 많은 동의를 얻고 있지는 않은 듯 합니다.

참고로, 감사원장을 비롯한 감사위원 7명 모두는 지난 정부에서 임명됐습니다.

조은석 감사위원이 작성한 140쪽짜리 검토보고서는 '감사원법의 원론적인 해석'이냐, '현실을 도외시한 내부총질'이냐를 놓고 감사원 안팎의 논쟁을 더 키울 것으로 보이는데요.

향후 감사원의 운영과 감사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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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wakeu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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