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018년 바그너 맹폭 때, 러 “우리軍 아니다”... 반란 부른 갈등史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2023. 6. 27. 11: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용병 집단 ‘바그너’ 수장(首長) 프리고진과 러시아 군수뇌부 구원(舊怨)의 발단

러시아 용병 집단 바그너 그룹을 이끄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왜 푸틴에 반기(叛旗)를 들었을까. 근본적인 배경에는 프리고진과 러시아 국방부 수뇌부 간 심한 알력이 있었다.

반란을 촉발한 것은 6월10일 “모든 의용군은 7월1일까지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맺으라”는 러시아 국방부의 지시였다. 러시아에는 정부의 후원을 받아 중동과 아프리카의 독재 국가들에서 정권을 수호하며 금과 같은 천연자원 이권(利權)을 챙기는 사병(私兵) 집단이 10개가량 존재하지만, 이번 지시의 주(主)표적은 수만 명의 병력을 지닌 바그너였다. 그리고 수일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지시를 승인했다.

이 지시에 따르면, 프리고진부터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맺어야 하며, 바그너는 러시아 국방부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

민간 용병 집단 바그너를 이끄는 프리고진(가운데)과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오른쪽)이 벌인 오랜 다툼에서, 푸틴은 쇼이구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달 20일 바그너 그룹은 “224일 간의 전투” 끝에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를 점령했다. 5만 명의 바그너 병력 중 2만 명이 죽었다. 이 참혹한 전투를 치르며, 프리고진은 러시아 군 수뇌부가 필요한 무기를 공급하지 않아 “거대한 시체 더미를 쌓았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이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발레리 제라시모프 군 참모총장의 무능과 부패, 푸틴 대통령에 대한 잘못된 조언 등 공격 수위를 계속 높였다. 그런데 푸틴이 이 결정적인 순간에 군 수뇌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어 지난 24일 러시아 공군이 바그너 병력을 공격하자, 바그너는 6대 이상의 헬기와 IL-22 공중지휘기를 격추시키고 러시아 남부의 군사 거점인 로스토프나도누를 장악하며 반란에 나섰다.

그러나 프리고진과 러시아군 수뇌부 간 알력은 최소 201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군 수뇌부는 높은 임금으로 러시아군의 엘리트 장교와 병사를 빼 가서 전과(戰果)를 올리는 프리고진의 바그너 그룹이 ‘눈엣가시’였다. 프리고진은 자신들의 공을 러시아 국방부가 가로챈다고 계속 헐뜯었다.

이런 두 집단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사건은 2018년 바그너 그룹이 미군에 전멸당하다시피 할 때, 러시아 국방부가 “우리 병력이 아니다”고 미국에 통보한 것이었다.

◇“우리가 통제하는 병력 아니다” 러시아 통보에, 미군 마음 놓고 공격

2018년 2월7일 오후 미 특수작전사령부 소속 델타포스와 레인저 부대원 30명이 지키는 시리아 동부 데이르 알주르 시에 있는 코노코(Conoco) 미 석유ㆍ가스회사의 천연가스 정제시설에 시리아의 친(親)정부 병력 500여 명이 접근했다.

당시 시리아는 7년째 내전 중이었다. 2013년부터는 시리아에서 시작한 이슬람 테러집단 IS가 이라크 영토까지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미국은 2014년부터 반(反)정부 쿠르드족 민병대 세력과 연합해 이들이 장악한 지역에서 IS와 싸우고 있었고, 러시아도 1년 뒤 러시아군과 바그너 그룹과 같은 민간 군사계약자(PMC) 병력을 배치해 아사드 정권을 도와 IS 및 반정부군과 싸웠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다른 쪽을 지원했기 때문에, 현지 사령부 간에 ‘핫라인’을 설치해 직접적인 충돌 가능성을 피하려고 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코노코 가스 정제시설을 공격한 시리아 친정부 병력의 상당수는 바그너였다. 바그너는 “코노코 가스 시설을 점령해 달라”는 아사드 대통령의 요청을 받았다.

오후 8시30분 수 대의 T-72 탱크를 비롯한 27대의 장갑차량에 분승한 시리아 정부군과 바그너 병력이 코노코 시설 1.6㎞ 앞까지 접근했다. 가스 시설을 지키는 미 특수부대원은 30명. 약 20분 떨어진 곳에 미 특수작전사령부의 또 다른 부대인 그린베레와 미 해병대원들이 드론으로 주변을 살피며 지원하고 있었다.

밤11시30분쯤 이들 지원병력 15명이 대(對)전차 미사일과 기관포로 무장한 트럭 5대에 타고 헤드라이트를 끈 채 적외선 이미지 카메라로 코노코 초소로 접근을 시도했지만, 반정부 세력의 맹렬한 포격 속에서 계속 좌절됐다.

이때쯤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에 있는 미 공군 작전부대에는 출격 대기 명령이 떨어졌다. 교전 첫15분 동안 워싱턴의 미 국방부 수뇌부는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현지 사령부 간 통화를 통해 러시아 병력의 정체를 물으며 ‘공격 중지’를 요청했다. 미군은 통신 감청을 통해, 공격하는 병력의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의 대답은 “우리 병력이 아니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였다.

◇”바그너가 맹폭 당할 때, 러시아 전투기는 보이지도 않았다”

두 달 뒤 의회 증언에서, 제임스 매티스 당시 미 국방장관은 “조지프 F 던포드 합참의장에게 ‘그렇다면 그 병력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후 F-22와 F-15E 전투기, B-52 폭격기, AH-64 아파치 헬기 등이 3시간가량 바그너와 친정부 병력을 강타했다.

4시간에 걸친 전투에서, 공격 측 병력의 300명가량이 살해됐다. 바그너 용병도 100여 명 살해됐다. 기적적으로, 미군 40여 명은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당시 이 상황을 쓴 바그너 소속 뉴스통신사 RIA-FAN의 러시아 기자 키릴 로마노프스키는 “바그너 전사들은 러시아 공군기와 지대공(地對空)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줄 알았지만, 공격을 시작했을 때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온통 미군 전투기였다”고 썼다.

◇2016년 시리아서 막대한 희생 끝에 승리…공(功)은 군이 독차지

바그너 그룹은 2016년에도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을 도와, 팔미라 시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집단인 IS(이슬라믹 스테이트)과 싸웠다. 프리고진은 팔미라 전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술에 취한 시리아 주둔 러시아군 사령관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 옆에 앉아 있었다. 바그너의 희생이 엄청나자, 프리고진은 드보르니코프에게 “최소 100개의 포탄이라도 달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로마노프스키에 따르면, 드보르니코프 사령관은 전화통을 붙잡고 모스크바에 자기 공 세우기에 바빴다. 최근 프리고진은 “시를 탈환한 것은 우리였는데, 당시 러시아 국방부가 이 승리를 기념해 제작한 메달은 국방부 본부의 비서까지 받았지만, 우리 전사들은 받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