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 타고 역주행 '엘리멘탈', 갈라치기 난무하는 한국에 던진 화두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6. 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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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 인종의 용광로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피터 손 감독의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이 감독이 실제로 겪었을 이민자들의 삶을 원소들의 세계를 통해 풀어냈다. 흙, 물, 불, 바람의 4대 원소의 정령을 뜻하는 '엘리멘탈(elemental)'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는 서로 다른 원소들이 함께 거주해 살아가는 엘리멘트 시티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4대 원소에서도 중심이 되는 건 불과 물이다. 불의 원소인 앰버와 물의 원소인 웨이드가 서로 만나 조금씩 상대에게 끌리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다가 결국 그 선을 뛰어넘는 이야기다. 당연히 중심에 자리한 건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다. 앰버와 웨이드의 사랑이 근본적으로 다른 원소라는 태생의 한계를 넘어서서 이뤄질 것인가를 들여다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에 의해 불이 꺼질 수도 있고(죽을 수도 있고) 또 불에 의해 물은 수증기가 되어 사라질 수도 있는(역시 죽을 수도 있는) 앰버와 웨이드의 관계는 그 결합이 생사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랑의 서사 그 이상이 된다. 즉 본질적인 질문이 던져지는 것이다. 과연 태생이 달라 이질적인 존재들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이것은 피터 손 감독이 겪었을 이민자의 관점으로 보면 외부에서 들어온 이민자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엘리멘탈>은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것처럼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판타스틱한 아이디어와 아름다운 영상으로 구현해낸다. 불로 모래를 녹여 꽃이 들어있는 형상의 유리를 만드는 일이나, 물과 불이 합쳐져 불꽃을 구현해내는 신비로운 광경 같은 장면은 아이디어도 놀랍지만 그것을 구현해낸 영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물과 불은 서로 만나면 상대를 죽일 수도 있는 상극이지만, 이 둘이 힘을 합쳐 도시에 닥친 위기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광경은 그저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 때문에 배척하기보다는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물론 이건 앰버와 웨이드의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던 사랑이 이뤄지는 기적 같은 과정을 통해서도 그려지지만.

피터 손 감독이 한인2세기 때문에 <엘리멘탈>에는 한국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부모와 자식이 헤어질 때 상대를 향해 절을 하는 장면이다. 한국인들이라면 그 절이 어떤 의미인가를 보다 절절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또 감독은 실제로 앰버의 아버지인 아슈파라는 이름을 '아빠'에서 따왔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앰버와 웨이드가 서로 좋아하는 걸 알게 된 양가의 다른 반응 같은 서사들은 어딘지 우리네 가족드라마의 한 대목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이 가진 다양성에 대한 포용적인 관점은 미국 같은 이민사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전쟁을 겪고 남북으로 갈려 가난을 딛고 압축성장해오는 그 과정에서 다양성보다는 가족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경향을 띠었던 게 사실이다. 과거에 우리가 그토록 교과서를 통해 배워왔던 '단일민족' 서사 같은 것들이 사실상 이 시대에 나온 이데올로기일 뿐,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문제는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다양성 시대를 요구하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최근 몇 년 간 K콘텐츠가 글로벌한 위상을 갖게 된 건, 다양성 지향 때문이었다. 우리 것만이 아니라 해외의 것들을 가져와 잘 섞어내고 비벼내는 것이 K콘텐츠의 강점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파친코> 같은 글로벌 협업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피터 손 감독 같은 태생부터 다양성의 가치를 남다르게 경험한 이들이 힘을 내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러니 <엘리멘탈>이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다양성 서사가 우리네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더 남다른 의미를 준다. 최근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북 분단의 현실은 물론이고, 우리 안에도 비뚤어진 정치 현실에 의해 그토록 많은 '갈라치기'가 생겨나는 현실을 떠올려 보라. 그저 상극으로만 바라보던 물과 불이 협업해 어떤 아름다운 결과물을 내는가를 전하는 이 영화가 크디 큰 감흥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확인하게 될 테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엘리멘탈>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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