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타자가 1회부터 보내기 번트…김태형 해설이 웃는다
[OSEN=백종인 객원기자] 징글징글한 상대다. 만날 때마다 고생이다. 위즈와의 한판이다.
웬일로 초반 분위기가 좋다. 1회 선두 타자 고승민이 안타로 출발한다. 선발 배제성이 비틀한다. 다음 타자(전준우)에게 볼 2개가 연속 빠진다. 카운트 2-0에서 3구째다. 어정쩡한 슬라이더가 존을 통과한다. 배트가 매섭게 응징한다. 강한 타구가 3ㆍ유간으로 빠진다. (6월 20일 수원, 롯데-KT 경기)
무사 1, 2루. 황금 기회가 중심 타선에 걸렸다. 팀 내 최강 안치홍이 타석에 자리 잡는다. 마법사 배터리는 긴장 상태다. 초구 직구가 높다. 놔뒀으면 볼이다. 그런데 안치홍이 배트를 내린다. 그리고 3루 쪽으로 번트를 굴린다. 라인을 살짝 벗어나는 파울이다. 그러자 웃음소리가 들린다. SBS Sports 중계팀의 김태형 해설위원과 정우영 캐스터다.
튼동 “제가 해설할 때, 1회 노아웃 1, 2루에서 안치홍 선수가 번트를 대는 걸 벌써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보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 웃음이 터진다. “헛헛헛.” 캐스터도 합을 맞춘다. “흣흣흣.”
뭐 즐겁거나, 재미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굳이 해석을 보태자면 이런 느낌이다. 뭔가 한마디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너무 정색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그러니까 분위기 무마용이다. 다시 해설이 이어진다.
튼동 “조금 아까워요. 선취점이 분명히 중요하고, 분위기가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한편으로는 빅이닝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거든요. 왜냐하면 지금 타자들이 타이밍을 잡아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안치홍 선수 정도 되면, 뒤에 타자들이 안타 하나면 빅이닝이 나올 수 있거든요.”
그러면서 얼른 물을 탄다. 너무 한쪽으로 몰면 안 되겠다. 그런 균형 감각이 발휘된다.
튼동 “어떻게 보면 롯데 입장에서는 선취점을 냈을 때 승률이 거의 한 80%까지 된다고 그래요. 그러기 때문에 선취점을 상당히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우영 “서튼 감독, 올시즌 번트 많이 댑니다.”
튼동 “지금 2위죠. (잠시 뜸 들인 후) 한국 야구에 어느 정도….”
캐스터와 해설자가 다시 한번 터진다. “헛헛헛” “흣흣흣”.
기세가 꺾였다. 부산 갈매기의 저공비행이 길어진다. 최근 19게임에서 4승밖에 못 올렸다. 5할 승률도 턱걸이다. 한때 1, 2위를 다투더니 4위로 내려왔다. 이젠 그 자리마저 위협받는다. 3게임 차 이내에 5팀이 몰렸다. 두산, 키움, KT, KIA가 호시탐탐 중이다.
이탈자가 늘었다. 에이스 나균안이 부상으로 빠졌다. 밥상을 차리던 안권수도 마찬가지다. 내야의 노진혁과 정훈도 정상이 아니다. 전체적인 전력이 흔들린다. 라인업 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숫자로 드러난다. 6월 팀 ERA(5.18)와 팀 OPS(0.652)가 모두 꼴찌다.
그러다 보니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운영이 조심스럽고, 공격적인 대처가 쉽지 않다. 앞서 제시한 상황이 단적인 예다. 김태형 해설 위원이 지적한 부분 말이다. 아시다시피 이후 전개는 비극이었다.
안치홍의 초구 번트 시도는 파울이었다. 그리고 2~4구째도 계속 배트를 내린다. 여차하면 보내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연속 볼 판정으로 카운트가 3-1이 된다. 그제서야 강공으로 작전이 바뀐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파울에 이어 몸쪽 슬라이더에 서서 당했다. 루킹 삼진이다.
분위기가 바뀐다. 배제성이 살아났다. 다음 잭 렉스까지 연속 KO다. 2사 후. 한동희는 공 1개로 처리된다. 슬라이더에 당해 유격수 땅볼이다. 3, 4, 5번이 완벽히 막힌 것이다. 기선을 잡을 기회를 놓쳤다. 승기는 반대로 넘어간다. 게임은 결국 5-2로 마무리됐다. KT전 스윕패의 서막이었다.
한참 팀이 좋을 때였다. 상승세가 이어지던 5월의 얘기다. 래리 서튼의 세밀한 야구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허점을 파고드는 번트, 주루 플레이 같은 것들에 찬사가 쏟아졌다. 덕분에 이대호의 빈자리도 크게 티 나지 않았다.
희생타가 가장 많은 팀은 LG다. 26일까지 44개(게임당 0.62개)를 성공시켰다. 그 다음이 롯데다. 37개(게임당 0.55개)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지나칠 경우가 많다. 상식을 벗어난다. 납득이나 동의가 어려운 대목이다.
3번 타자는 라인업의 핵심이다. 정확성과 파워가 모두 갖춰진 곳이다. 팀에서 가장 믿는 타자에게 주는 자리다. 그런 점에서 안치홍은 적임자다. 타율(0.287) 안타(66개) 타점(32개) 출루율(0.362) OPS(0.723) 모두 팀 내에서 1, 2위를 다툰다(규정타석).
그런 타자에게 보내기 번트는 어울리지 않는다. 가장 잘 치는 타자라고 3번에 놨다. 마침 그 앞에 주자가 나갔다. 그런데 기회를 지레 포기한다. 그를 희생시켜 아웃 1개를 버린다. 그것도 1회 초부터. 이건 논리적으로도, 이치에도 한참 어긋나는 전략이다.
물론 병살타(8개)가 많다는 점이 걸린다. 하지만 득점권 타율(0.339)이 팀 내에서 가장 높다. 그걸로 충분히 감당하고, 상쇄된다. 상대 투수(배제성)에 대한 성적도 좋다. 지난해 12타수 5안타(0.417)로 뛰어났다. 홈런 2개가 포함됐다. OPS는 1.462나 된다. 올해도 그 타석 전까지 9타수 3안타(0.333)로 괜찮았다.
이건 전혀 어울리는 코드가 아니다. 그들의 키워드는 ‘기세’다. 상대를 움츠러들게 하는, 투지가 활활 타오르는. 열정적인 팬과 끈적하게 호응하는. 맹렬한 전투력과 압도적인 분위기가 발군이었다. 그게 기적 같은 상승세를 이끈 돌풍이고, 힘이다.
1회부터 아웃 1개를 헌납하는 것. 그것도 가장 강한 타자를 희생시킨다는 것. 도무지 힘 빠지는 구상이다. 그런 야구는 결코 강할 수 없다. 그런 걸 겁낼 상대는 없다. 기세는 계산기에 나타난 숫자가 아니다.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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