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여성 징병 ②모병제 ③복무기간 연장 ④민간군사기업… 병역자원 확보 대책은
인구절벽시대, 병력 부족에
'발등에 불' 떨어진 軍...
대안 마련 위해 용역 착수
편집자주
1970년 100만 명에 달했던 한 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 년. 기성세대 반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 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여성 징집, 군 복무기간 확대, 대체복무 폐지 등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
지난달 11일 자정 무렵, 국방부가 출입기자단에 문자 메시지로 다급하게 공지한 내용이다. 이날 오후 병무청과 국회의원실이 주최한 ‘인구절벽시대의 병역제도 발전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내놓은 병역자원 부족 해결방안이 정부 방침으로 비치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2018년 기준 상비군 병력 60만 명 가운데 65%(39만1,000명)를 차지했던 현역병은 2032년부터 18만 명 이하로 감소한다. 인공지능(AI), 유무인 복합체계를 군에 도입한다지만 전쟁은 결국 사람이 한다. 더구나 한반도는 산악지대가 많아 보병이 많이 필요하다.
적정 병력을 확보해야 하는 군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선뜻 대책을 내놓기도 어렵다. 병역에 민감한 국민정서와 가공할 파급력 때문이다. 해법이 자칫 사회적 혼란과 갈등만 유발할 수 있다. 국방부가 노심초사하며 여론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국방부가 최근 인구절벽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2040년대 군 병력 수급 규모를 예측하고 안정적 병역자원 확보를 위한 방안을 검토하는 이 연구에는 여성 병력 확대와 대체복무 폐지 등의 대안도 담겼다. 다만 군 관계자는 “미래 대비를 위해 어떤 옵션들이 가능할지 학자와 전문가 의견을 듣는 차원이지 정책 방향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여성 징병제, 가능한 모델일까
우선 거론되는 건 '여성 징병제'다. 병역에 남녀를 구분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대선 출마 당시 저서에서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으로 15만~20만 명 수준의 정예 강군을 유지하되, 남녀 불문 40~100일 기초군사훈련을 받아 예비군으로 양성하자"고 주장했다.
과감한 공론화였지만, 정작 군에서조차 반응이 시큰둥했다. 100일짜리 군사훈련은 군 체험이나 마찬가지이고, 여성 전용 내무반 설치 등 예산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외려 20대 남성들의 환심을 사려다 젠더 갈등만 부추긴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럼 '여성 모병제'는 어떨까. 현재 간부에 국한된 여성 군인을 병사로도 복무하도록 문호를 넓히자는 것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6일 “제도가 없어 지원하지 못할 뿐 , 병사로 복무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현역병 복무를 원하는 여성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남녀 평등 차원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모병제, 병력 예측 못 하는 치명적 단점
남성까지 포괄해 현재 징병제를 아예 '모병제'로 바꾸자는 주장은 단골 대책으로 거론돼 왔다. 지난해 대선 당시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시작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각각 '변형된' 형태의 모병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징집병 규모를 절반 이상 줄이고 전문 부사관을 늘리는 것이 골자다. 징병제 완전 폐지는 아니지만 전면 모병제로 가는 중간 단계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남북 대치 상황에서 모병제는 도박에 가깝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막대한 예산 투입과 별개로 안정적 병력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기식 병무청장은 지난달 15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모병제는 입대 인원과 전역 인원을 예측할 수 없다”며 “모병제를 시행했던 많은 국가들이 징병제로 환원하는 점을 되짚어 봐야 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에... 징병제 부활 국가 늘어
실제 모병제로 전환했던 상당수 국가들이 최근 징병제 부활을 선언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만은 2018년 말 1년이던 의무복무를 ‘4개월짜리 군사훈련’으로 대체하며 징병제 폐지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군사훈련만 받는 대만군을 ‘무른 딸기’에 빗대 ‘딸기 병사’라 부를 정도로 전투력은 바닥을 쳤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 현실화로 중국의 대만 침공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징병제 부활 여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에 대만 당국은 지난해 말 '군 복무 연장안'을 확정해 2024년부터 의무복무 기간을 현행 4개월에서 다시 12개월로 늘리기로 했다.
러시아에 인접한 라트비아는 2007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며 모병제로 전환했지만 올 4월 징병제를 재도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독일 내에서도 징병제 부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 초 취임한 신임 독일 국방부 장관이 “2011년 징병제를 폐지한 것은 실수”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면서다. 2009년 “옛소련의 잔재”라는 이유로 징병제를 없앤 폴란드에서도 최근 국민 절반 이상(54%)이 징병제 부활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안보 위협이 고조되면서 일찌감치 징병제로 유턴한 국가들도 있다. 2010년 모병제로 전환했던 스웨덴이 7년 만에 징병제로 돌아섰고, 리투아니아도 2015년 징병제로 복귀했다.
복무기간 연장… 표 의식한 정치권이 과연?
최근 대안으로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복무기간 연장이다. 현재 병사 복무기간은 육군·해병대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 21개월이다. 조관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박사는 포럼에서 “현 제도 유지 시 2035년 이후엔 매년 2만 명 수준의 병력 축소가 불가피하다”며 “복무기간을 현 18개월에서 21개월 또는 24개월 등으로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현실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한때 3년이 넘었던 육군 복무기간을 18개월까지 줄였는데, 이를 다시 늘린다는 건 정치적 자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이 ‘복무기간 연장’ 공약을 낼 리 만무한 실정이다.
민간인도 국방 뛰어들어야 할 시대 온다
병력 감소가 피할 수 없는 미래라면 필수 인력만을 군인으로 채우고 민간 인력을 채용하는 해외 사례를 검토할 수도 있다. 동맹 미국이 그렇다. 미군은 상비병력 대비 절반 정도 규모의 민간인력을 공무원과 군무원, 민간업체 위탁 등을 통해 확보하고 있다.
우리도 획득 부분에서는 방위사업청을 위시로 하는 공무원 등을 채용하고, 정비 분야에서는 군무원을 채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지만 미군의 민간 인력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부대 경비 인력과 병력·장비 수송에까지 민간 인력을 배치한다.
심지어 전투에서도 민간군사기업(PMC)를 활용하는 곳이 미군이다. PMC는 전쟁과 밀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업체로 △정비·보급·수송·기술지원 등 '후방지원' △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군사지원' △전략·운용·조직상의 자문 및 병력 훈련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군사자문' △직접적인 전투행위 대행 △야전부대의 지휘·통제 등 실전과 관련된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군사공급의 전 단계를 망라해 사실상 용병과 다름없는 조직이다. "군인이 부족하다면 민간인을 쓰면 된다"는 것이 미국식 합리주의다.
우리 국방부도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PMC에 문호를 개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국회 국방위와 국방부, 방위사업청이 주최한 '국방혁신을 위한 민간군사기업 활용 방안 세미나'에서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인구 감소로 인한 가용 병력 자원의 감소 현상은 현재 수준의 군 인력 규모를 유지하기도 사실상 어렵게 만드는 국가안보의 중대한 도전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병력 감축이 필연적인 현재 상황에서 군이 전투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비전투 분야는 민간 아웃소싱을 확대하는 방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2030세대 60% "여성 병력 확대해야"
그러면 인구절벽 시대의 당사자인 우리 청년층은 이 같은 각종 대책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 5월 25일~6월 1일 전국 1991~1994년생과 2001~2004년생 남녀 각각 5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 오차는 ±4.38%)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인구 감소로 인한 병력 부족의 대안으로 “여성 부사관·장교 등 여성 간부 확대는 물론 여성 징집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61.2%(복수응답 가능)로 가장 많았다.
복무기간 연장(인센티브 제공)이 48.7%로 뒤를 이었고, 모병제 전환은 47.8%였다. '여성 병력 확대'에는 1991~1994년생 여성의 54.9%, 2001~2004년생 여성의 44.8%가 찬성했다. 다만 남성의 경우 70% 이상이 여성 병력 확대에 찬성해 성별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컸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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