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이상민‧문경은 등이 드래프트에 참여했다면?

김종수 2023. 6. 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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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돌아보기⑮] 외전 / 1990~93학번까지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는 1998년부터 시작됐다. 3월 9일 힐튼 호텔 컨벤션 센터에서 처음 열렸으며 첫 대상자는 94학번부터였다. SK가 초대 1순위의 행운을 가져간 가운데 당시 최대어였던 현주엽을 지명한바 있다. 그외 윤영필, 김택훈, 변청운 순으로 첫 로터리픽이 완성됐다. 현주엽과 함께 고려대 전성시대를 이끈 신기성은 7순위라는 예상외 낮은 픽에 지명됐지만 절치부심 좋은 활약을 펼친 끝에 신인왕의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렇듯 신인드래프트는 해당 선수들이 프로에 오기 전부터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큰 요소이기도 하거니와 이후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에도 서로간 커리어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몇 년 차이로 신인드래프트를 겪지않은 이전 학번들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다.


1990년대 폭발적 농구붐의 중심에 섰던 90~93학번이 특히 그렇다. 실력적으로나 개성적으로나 눈에 띄는 선수들이 많았고 그만큼 인기도 높았다. 슈터, 공수겸장 포워드, 정통 포인트가드, 센터 등 포지션별로 역대급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워낙 농구계에 영향력이 컸던 선수들인만큼 ‘이들이 드래프트에 참가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주제로 종종 가상 논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황금세대답게 해당 학번에서 탑급으로 명성을 떨쳤던 선수들은 상당수 프로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농구대잔치때부터 이름값이 높았고 국가대표로서도 적지않은 공헌도를 보여줬다. 드래프트가 열렸다고 가정했을때 1순위는 어느정도 정해졌다고 보는게 맞을 듯 싶다. 프로 이전부터 충분히 검증받은 거물급 선수들이 버티고있기 때문이다. 2~3순위 같은 경우 유력 후보군은 존재하지만 1순위처럼 압도적이지는 않는지라 이런저런 상황에 따라 변수도 가능해보인다.

◆ 90~93학번 고교시절, 전국 랭킹 1, 2위
1989년: 문경은(광신상고-연세대), 김재훈(용산고-연세대)
1990년: 이상민(홍대부고-연세대), 김영만(마산고-중앙대)
1991년: 전희철(경복고-고려대), 김병철(용산고-고려대)
1992년: 서장훈(휘문고-연세대), 양희승(광주고-고려대), 박훈근(중앙고-고려대)
 


당시 학번 최고 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독수리 천하를 이끌었던 최희암(68‧177cm) 전 연세대 감독은 “문경은, 이상민, 전희철, 서장훈은 정말 엄청난 변수가 생기지 않는한 1순위 고정이라고 보는게 맞다. 각 학번 별로 좋은 선수들이 다수 있지만 이들을 넘어설 선수는 없다. 다만 2순위부터는 팀 사정이나 개인별 취향도 들어갈 여지가 있을 듯 싶다”고 말했다.


이에 누구보다도 해당 학번에 대해 잘 알고있는 최감독에게 가상 드래프트 1~3순위 지명자 및 이후 상위 지명자 후보 예상을 부탁해봤다. 기준은 철저하게 당시 기대치다. 프로에서 선수간 위상이 역전된 경우도 있지만 드래프트 당시에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최희암 전 연세대 감독의 90~93학번 예상지명
90학번: 문경은-김승기-조성원-(홍사붕, 조동기, 김재훈)
91학번: 이상민-김영만-양경민or장창곤-(안병익, 최명도)
92학번: 전희철-김병철-우지원-(김훈, 정진영, 조성훈)
93학번: 서장훈-양희승-추승균-(박재헌, 손규완)

최 전감독의 예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1순위에 언급된 선수들은 하나같이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2~3순위 후보군도 만만치않지만 당시 기준으로 문경은, 이상민, 전희철, 서장훈 등을 거를 팀은 없어보인다. 하나같이 프로무대서도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펼쳐줬다. 92학번 전희철 정도가 상대적으로 2순위 후보 김병철보다 커리어(프로 기준)에서 조금 밀리는 느낌이지만 아주 큰 차이까지는 아니다.


90학번같은 경우 문경은과 조성원은 누가 우위랄 것도 없이 박빙으로 평가받는다. 전성기 시절 고점만 놓고보면 조성원이 더 나은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문경은은 상대적으로 저점이 더 높았고 오랜시간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부분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93학번중에서는 꾸준함을 앞세운 추승균이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어지간한 학번같았으면 최고의 전설로 남을 수도 있었겠지만 하필 앞에서 버티고있는 인물이 서장훈이다. 다른 학번에 비해 양적인 면에서는 다소 밀린다는 평가도 있지만 서장훈, 추승균이라는 기록의 사나이를 둘이나 배출한 것으로 이미 꽉찬 느낌을 주고 있다. 

 

 


문경은‧조성원의 ‘역대급 슈터’를 배출한 90학번

90학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람보슈터’, ‘돌고래 슈터’ 등으로 불리던 문경은(52‧190cm) KBL 경기본부장과 ‘몽골리안’, ‘캥커루 슈터’, ‘4쿼터의 사나이’로 통하던 조성원(52180cm) 전 LG감독이다. 둘은 별명이 많다. 그만큼 잘했기 때문이다. 선수생활 내내 뚜렷한 닉네임하나 없는 선수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기량적으로나 캐릭터적인 면에서 언론과 팬들의 시선을 제대로 끌었던 이유가 컸다.


문경은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내 동년배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프로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시즌 3점슛왕을 무려 6차례나(공동수상 2회 포함) 수상했다. 그외 3회 이상 1위를 차지한 선수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슈터로서의 문경은의 위엄이 느껴진다. 엄청 빠르거나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진을 휘젓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안정적으로 외곽슛을 넣어줄 수 있는 정통파 슈터였다.


거기에 젊은 시절에는 종종 덩크슛을 성공시키며 상대 예봉을 꺾을만큼 탄력 또한 좋았다. ​ 캐치 앤 슈터 이미지가 강하지만 은근히 다재다능한 플레이도 자주 보여줬다. 연세대 시절 포함 상당수 팀에서 그에게 외곽에서 받아먹는 역할에 집중하도록 요구해서 그렇지 전자랜드 등에서 뛸 때처럼 자유롭게 풀어놓게되면 전천후로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수비수의 움직임을 읽고 미리 자리를 잡는 능력이 뛰어나 미들라인에서의 움직임이 좋았는데 직접 풀업 점프슛을 쏘거나 외국인선수와의 2대2 플레이를 통해 공격을 이끌었다. 어쩌면 상당수 지도자들은 문경은의 능력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잘했지만 그 이상도 보여줄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문경은은 자신이 속한 90학번 가상 드래프트에 대해 “(조)성원이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레전드고 (김)승기 또한 잘나가던 가드중 한명이었지만 지명 당시 기준으로 가정을 하고 예상을 해본다면 (김)재훈이나 (조)동기중 한명이 2순위로 뽑히지 않았을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골밑에서 활약할 수 있는 즉시전력감 빅맨의 가치는 높다고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 문경은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610경기 출전 평균 15.3득점, 2.1리바운드, 2.2어시스트, 0.8스틸

◆ 문경은 챔피언결정전 통산기록 ☞ 통산 5경기 출전 평균 18.2득점, 2.4리바운드, 5.6어시스트, 0.6스틸 , 0.2블록슛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4년 3월 7일 원주 TG삼보전 = 66득점 / 3점슛 성공 ☞ 2004년 3월 7일 원주 TG삼보전 = 22개 / 어시스트 ☞ 2004년 2월 18일 안양 SBS전 = 9개 / 리바운드 ☞ 2001년 11월 27일 여수 코리아텐더전 = 8개 / 블록슛 ☞ 2003년 3월 2일 대구 동양전 = 3개 / 스틸 ☞ 2006년 11월 22일 창원 LG전 = 5개​

조성원은 문경은의 동년배중 유일하게 라이벌, 호적수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사실 이는 프로에 진출한 이후의 변화다. 대학시절까지만해도 조성원은 문경은과 비교조차 되지못했다. 실력이 덜 무르익은 탓도 있지만 이름값에서의 차이가 컸다. 문경은같은 경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찍부터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반면 조성원은 기량적인 면에서 복병으로 인정해주는 이들도 더러있었지만 대중적인 인지도가 너무 낮았다.


여기에 대해 명지대 시절 후배 조성훈(49‧185cm)은 “(조)성원이형같은 경우, 본래 잘했다. 워낙 빠르고 운동신경이 좋은데다 정교한 3점슛까지 갖추고있어 누가봐도 완성형 슈터였다. 다만 당시 팀 전력이 약해서 눈에 띄지 못했다. 성원이형같은 단신 슈터는 어떤 멤버와 함께 뛰냐에 따라 부침이 있을 수 있는데 형이 한창 기량이 오르던 시점의 명지대는 뒤를 받쳐주기에 이래저래 부족함이 많았다”는 말로 실력에 비해 잘 알려지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조성원은 KBL 역대 슈터중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한다. KCC 소속으로서 한팀에서 3개의 우승반지를 거머쥐었으며 그 과정에서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차지했다. 어디 그뿐인가. LG로 잠시 둥지를 옮겨서는 공격 농구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정규시즌 MVP에도 등극했다. 역대 슈터를 통틀어도 정규시즌, 챔피언결정전 MVP를 모두 차지한 슈터는 조성원이 유일하다. 각각 다른팀 소속으로 시즌 베스트5에 선정된바있으며 시즌 3점슛 왕도 두차례 가져갔다.

◆ 조성원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32경기 출전 평균 14.8득점, 1.5리바운드, 2.2어시스트, 1.2스틸

◆ 조성원 챔피언결정전 통산기록 ☞ 통산 36경기 출전 평균 15.5득점, 1.5리바운드, 1.8어시스트, 1.3스틸 , 0.1블록슛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1년 1월 9일 원주 삼보전 = 48득점 / 3점슛 성공 ☞ 2001년 1월 8일 대구 동양전 = 10개 / 어시스트 ☞ 2000년 12월 17일 부산 기아전 = 10개 / 리바운드 ☞ 2005년 1월 2일 인천 전자랜드전 = 8개 / 블록슛 ☞ 2003년 2월 6일 여수 코리아텐더전 = 2개 / 스틸 ☞ 2001년 1월 13일 인천 신세기전 = 6개

최희암 감독이 2순위 후보로 평가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승기(51 182cm) 데이원 감독 또한 대학 시절의 평가는 매우 좋았다. '터보가드'라는 별명처럼 신장대비 파워가 매우 좋은 선수였는데 전포지션 통틀어 최고 장사인 파워포워드 현주엽과 힘에서 해볼만한 수준이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플레이가 섬세하지는 않았지만 선이 굵고 과감했으며 리더십까지 갖추고있어 당시 연고대의 대항마로 꼽히던 중앙대의 캡틴 역할을 했다. 프로에서도 수준급 식스맨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치기는 했지만 대학 때까지의 명성만 본다면 아쉬운 부분도 많다. 홍사붕과 조동기는 김승기와 중앙대 돌풍을 합작한바있으며 봉하민(동국대), 위성우(단국대) 등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있던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프로무대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김도완(연세대) WKBL 부천 하나원큐 감독 또한 90 학번 출신이다.
 


최고 스타 이상민에 공수겸장 김영만, 양경민까지..., 91학번

91학번도 쟁쟁하다. 최강 연세대를 이끈 야전사령관 '컴퓨터 가드' 이상민(51‧183cm)을 필두로 중앙대 공수겸장 쌍포 '당랑슈터' 김영만(51‧193cm)과 '양갱' 양경민(51‧193cm) 그리고 김성헌(연세대) 안병익(중앙대) 이지승, 전수훈(고려대) 최명도, 장창곤(경희대) 등이 있다. 토종 빅맨 포지션이 아쉬울뿐 외국인선수만 잘뽑으면 충분히 우승에 도전할만한 라인업이다.


이상민 현 KCC코치는 역대 최고 포인트가드를 언급할 때 여지없이 소환되는 이름중 하나다. 넓은 시야, 빼어난 패싱능력, 높은 BQ를 바탕으로한 경기운영은 물론 기동성, 운동능력, 개인기를 앞세워 필요할 때는 득점리더 역할도 가능한 선수였다. 때문에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팀에 공헌했다. ‘이상민이 있으면 팀 색깔이 달라진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않는 이유였다.


연세대 시절 분업농구의 중심에는 서장훈과 동시에 이상민이 있었다. 외국인선수급 존재감을 가지고있는 서장훈이 골밑을 완전히 장악하고, 더불어 보조리딩 도움없이 혼자서 오롯이 야전사령관 역할을 소화해내는 이상민이 있었기에 문경은, 우지원, 김훈의 3인슈터 체제가 돌아갈 수 있었다는 평가다.


KCC 시절 조성원을 누구보다도 잘 활용했던 배경에도 이상민의 역할이 크다. 조성원은 빠른발과 정확한 외곽슛이 돋보이는 최고의 슈터중 한명이었지만 작은 신장으로인해 수비시 미스매치의 어려움을 적지않게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상당 부분 해결해준게 이상민이었다. 공격시에는 정확한 패스로 기회를 봐줬고 수비시에는 바꿔막기를 통해 메워줬다.


이상민도 큰 키는 아니었지만 수비에 일가견이 있어 자신보다 큰 상대도 곧잘 막아내곤 했다. 삼성으로 이적해서는 다양한 색깔의 가드진이 각각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게 맞춰준 것을 비롯 특유의 리더십을 통해 ‘가드왕국’의 중심을 잡아줬다. 안정감넘치는 최고의 정통파 포인트가드이면서도 두루두루 못하는게 없는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 이상민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581경기 출전 평균 9.8득점, 3.4리바운드, 6.2어시스트, 1.5스틸

◆ 이상민 챔피언결정전 통산기록 ☞ 통산 43경기 출전 평균 10.7득점, 4.5리바운드, 5어시스트, 1.4스틸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7년 10월 28일 창원 LG전 = 35득점 / 3점슛 성공 ☞ 2007년 10월 28일 창원 LG전 = 6개 / 어시스트 ☞ 2003년 12월 7일 인천 전자랜드전 = 20개 / 리바운드 ☞ 1998년 2월 11일 원주 나래전 = 14개 / 블록슛 ☞ 1999년 1월 17일 창원 LG전 = 4개 / 스틸 ☞ 1997년 11월 19일 인천 대우증권전 = 7개

김영만과 양경민은 당시 중앙대 돌풍의 중심에 있었다. 연세대, 고려대의 전력과 기세가 워낙 대단했던지라 상대적으로 가린감도 있지만 당대 최강의 팀으로 불리던 기아자동차를 농구대잔치 플레이오프에서 탈락시키는 등 최고의 다크호스로 위용을 떨쳤다. 여기에는 김영만-양경민의 공수겸장 콤비가 중심에 있었다.


‘중앙대에는 여의주를 물고있는 두명의 용이 있는데 그게 바로 김영만과 양경민이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는데 이를 입증하듯 공수에서 둘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둘이 같이 터질 경우 호화 멤버의 연세대, 고려대 또한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중요한 순간 발목을 잡힌 바 있다.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잘잡힌 포워드라는 점에서는 궤를 함께 했지만 둘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김영만은 내외곽을 오가며 전천후로 득점을 올리는 스타일이었다. 특히 일대일을 통한 미드레인지 점퍼는 알고도 막기 힘든 전가의 보도로 불렸다. 수비 또한 자신이 막기로 마음먹으면 그야말로 온몸에 자물쇠를 채운 듯 꽁꽁 묶어버렸다.


김영만이 에이스 유형이었다면 양경민은 한팀의 조각으로서 최고라 할 수 있었다. 1~3번까지 수비가능한 전천후 디펜더이면서 어느 정도 볼운반까지도 가능했다. 공격옵션이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정확한 슛을 가진 3점 슈터였다. 공수양면의 밸런스가 아주 좋은 3&D자원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지금도 그 정도로 좋은 수비력을 갖춘 슈터는 찾아보기 힘든게 사실이다.

◆ 김영만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51경기 출전 평균 13.6득점, 2.3리바운드, 1.7어시스트, 0.8스틸

◆ 김영만 챔피언결정전 통산기록 ☞ 통산 17경기 출전 평균 19.9득점, 2.7리바운드, 1.6어시스트, 0.9스틸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1997년 3월 29일 원주 나래전 = 49득점 / 3점슛 성공 ☞ 1997년 3월 29일 원주 나래전 = 7개 / 어시스트 ☞ 2000년 1월 27일 청주 SK전 = 9개 / 리바운드 ☞ 1998년 1월 31일 광주 나산전 = 10개 / 블록슛 ☞ 2004년 11월 13일 서울 SK전 = 2개 / 스틸 ☞ 1998년 1월 18일 경남 LG전 = 5개 


고려대 ‘철’듀오와 최고 인기남 우지원으로 대표되는 92학번

92학번은 전희철, 김병철, 박준영, 김승민(고려대), 김희선(중양대), 우지원, 김훈, 석주일(연세대) 조성훈, 정재헌(명지대) 정진영(건국대), 이흥섭(한양대) 등 당시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선수들이 대학별로 잘 분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최대어로는 단연 전희철(50‧198cm) 현 SK감독이 첫손에 꼽힐 것이다.


그리고 고교 시절부터 넘버 2로 불리던 김병철(50‧185cm) 전 고양 오리온스 코치가 뒤를 이었다. 둘다 각각 ‘에어본’과 ‘플라잉 피터팬’이라는 멋드러진 별명으로 불렸다. 당시 연세대와 고려대의 라이벌 구도는 무척 팽팽했다. 연세대같은 경우 다수의 꽃미남 스타들로 인해 여학생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반면 고려대는 전희철, 김병철 등 상대적으로 남성적인(?) 외모의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던지라 남학생들의 지지가 상당했다. 때문에 양팀이 격돌하게되면 남녀 팬들이 나뉘어져 응원하는 양상까지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다.


92학번 상위 지명 예상자 후보 조성훈에게도 4개 학번 드래프트 순위에 대해 질문해봤다. 여기에 대해 조성훈은 “워낙 대단했던 선수들인지라 감히 제가 평가하기는 조심스럽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 것이라면 일단 저 역시 최희암 감독님의 예상픽과 크게 다르지않다. 어차피 1순위는 누구에게 물어도 비슷할 듯 싶다. 다만 2순위같은 경우 90학번 2순위에 (홍)사붕이형, 92학번 2순위는 (김)병철이, (우)지원이가 경합을 하지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 “사붕이형은 게임조립을 잘하고 경기의 흐름을 잘 파악하는 정말 좋은 가드다. 동시대에 화려한 가드가 많아 가려진 부분도 있지만 제가 지도자라면 꼭 데려오고싶은 선수중 한명이다. 이른바 알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병철이같은 경우 대학시절 내내 전희철과 동년배 탑을 다투던 선수다. 개인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지원이보다 높게치는 이들이 많을 듯 싶다. 하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큰 정도는 아닌데다 지원이의 엄청난 인기와 상품성이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연세대 베스트 5의 일원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던 ‘스마일 슈터’ 김훈(50‧190cm) 역시 “90학번에서 93학번까지 돌아보면 문경은, 이상민, 전희철, 서장훈이 단연 1순위겠고 2순위 후보로는 김재훈, 김영만, 김병철, 양희승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최근에는 농구 트랜드가 많이 바뀐 상태인지라 2순위가 바뀐다고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듯 싶다”고 말했다.
 


◆ 전희철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72경기 출전 평균 11.9득점, 4리바운드, 2어시스트, 0.6스틸

◆ 전희철 챔피언결정전 통산기록 ☞ 통산 7경기 출전 평균 11.1득점, 3.1리바운드, 2.1어시스트, 0.3스틸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1997년 11월 19일 청주 SK전 = 40득점 / 3점슛 성공 ☞ 2000년 1월 18일 청주 SK전 = 9개 / 어시스트 ☞ 2003년 12월 25일 청주 SK전 = 9개 / 리바운드 ☞ 2000년 1월 15일 창원 LG전 = 17개 / 블록슛 ☞ 2004년 11월 2일 서울삼성전 = 4개 / 스틸 ☞ 1997년 2월 23일 인천 대우증권전 = 6개

기록의 사나이 서장훈과 추승균의 93학번

93학번 선수로는 박재헌, 박훈근, 양희승, 박규현(고려대) 추승균, 이상영(한양대) 손규완(경희대) 김태진, 윤제한(명지대) 서장훈, 신석(연세대) 등이 있다. 빅맨, 가드, 슈터에 걸쳐서 다양한 선수들이 포진해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KBL을 대표하는 기록의 사나이 ‘국보급 센터’ 서장훈(49‧207cm)과 ‘소리없이 강한 남자’ 추승균(49‧190cm)이다.


둘다 롱런, 우승 등 개인기록과 팀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며 역사에 남을 레전드로 이름을 남긴 상태다. 서장훈은 외국인선수와 매치업이 가능한 탈토종급 빅맨으로 명성을 떨쳤다. 추승균은 커리어내내 KCC한팀에서만 뛰며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커리어를 마무리지었다.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생활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서장훈같은 경우 고등학교 시절부터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않았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다소 늦게 농구를 시작했지만 좋은 신체조건과 탁월한 재능이 합쳐져 빠른 성장세를 이루었으며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90~93학번 전 선수를 통틀어서 드래프트할 경우 유력한 통합 1순위 후보다.
 

 

◆ 서장훈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688경기 출전 평균 19.2득점, 7.6리바운드, 1.6어시스트, 0.5스틸 , 0.7블록슛

◆ 서장훈 챔피언결정전 통산기록 ☞ 통산 17경기 출전 평균 16.5득점, 7.5리바운드, 1.5어시스트, 0.4스틸 , 1.3블록슛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1999년 2월 7일 인천 대우전 = 44득점 / 3점슛 성공 ☞ 2009년 3월 8일 대구 오리온스전 = 5개 / 어시스트 ☞ 2009년 1월 25일 서울 SK전 = 7개 / 리바운드 ☞ 2002년 10월 27일 전주 KCC전 = 19개 / 블록슛 ☞ 2001년 2월 18일 창원 LG전 = 6개 / 스틸 ☞ 2006년 12월 24일 대구 오리온스전 = 4개​

2순위같은 경우 당시 기준으로는 양희승이 더 유력하다. 고려대 시절 베스트5의 한명으로 활약했으며 장신 슈터로서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다만 프로에서는 잦은 부상으로인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불운에 울고 말았다. 반면 추승균은 약체 한양대에서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지만 많은 출장 경험을 쌓으며 최고의 공수겸장 포워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 추승균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738경기 출전 평균 13.6득점, 2.3리바운드, 2.8어시스트, 0.7스틸

◆ 추승균 챔피언결정전 통산기록 ☞ 통산 47경기 출전 평균 11.5득점, 2.5리바운드, 2.1어시스트, 0.8스틸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6년 10월 21일 서울 SK전 = 38득점 / 3점슛 성공 ☞ 2001년 11월 14일 울산 모비스전 = 6개 / 어시스트 ☞ 2009년 3월 14일 부산 KTF전 = 12개 / 리바운드 ☞ 2006년 11월 10일 인천 전자랜드전 = 8개 / 블록슛 ☞ 2011년 10월 15일 고양 오리온스전 = 2개 / 스틸 ☞ 2011년 1월 14일 서울 삼성전 = 4개​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농구카툰 크블매니아(최감자 그림/케이비리포트 제작),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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