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안다니면 킬러문항 손도 못대… ‘공정 수능’으로 공교육 정상화[10문10답]
내신 전문·소수정예 집중관리…
초등 의대 입시반까지 성행 중
학령인구 줄어도 사교육비 최대
수능·모평 초고난도 문항 출제
사교육 의존 않고선 성적 못 내
尹 “공정한 수능돼야” 칼 빼들어
변별력 갖추되 교육과정내 출제
현장 교사 중심 수능 자문·점검
EBS활용 공교육강화·멘토링도
윤석열 대통령의 ‘공정 수능’ 지시를 계기로 ‘사교육 공화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려울 만큼 왜곡된 시험 제도와 내용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정부가 26일 사교육비 경감 대책 및 공정 수능 실시 방안 발표에 나선 것도 비정상적인 사교육 의존 관행을 끊겠다는 데 목적이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 공교육 범위 내에서 출제되면서 변별력까지 갖춘 문항들로 구성된 ‘공정 수능’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수능 제도를 바로 잡아 중·고교의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고 더 나아가서는 유·초등의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으로 흡수하겠다는 정부 계획을 짚어봤다.
1. 공정 수능 논란 왜 나왔나
‘공정 수능’ 논란을 촉발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6월 치러진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다. 윤 대통령이 올해 3월부터 교육부에 교과과정 밖에서 시험 문제가 출제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는데, ‘수능 전초전’인 6월 모의평가에서 해당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자 대통령이 칼을 뽑아 들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공정한 변별력은 모든 시험의 본질이므로 수능은 변별력을 갖추되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는 배제하라”고 공정 수능 실시를 주문했다. 윤 대통령이 교과과정 밖 문제를 직격한 것은 수능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풀기 어려운 수준으로 출제되면서 사교육 시장이 지나치게 팽창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사교육계와 수능 체제에 몸담은 전·현직 인사들 간 유착관계까지 의심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2. 사교육 얼마나 심각한가
실제로 사교육 시장은 왜곡된 시험 제도 속에서 갈수록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3월 발표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초·중·고생의 사교육비 지출 총액은 26조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전년 대비 10.8%(1인당은 11.8%) 늘었는데 이는 지난해 물가상승률(5.1%)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2007년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후 사교육비 지출 규모와 참여율(78.3%) 모두 신기록을 세우면서 정부 안팎에서는 비정상적인 사교육 의존 문화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경각심이 커졌다. 특히 내신·수능 전문, 소수정예 집중관리 등 사교육 시장이 날로 세분화·전문화되고 있으며, 초등 의대 입시반과 유아 영어학원이 성행하는 등 대상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3. 사교육 카르텔 논란 촉발한 킬러문항
공정 수능을 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정부가 지목한 것은 이른바 ‘킬러문항’이다. 킬러문항은 당초 수험생들과 입시업계에서 사용해 온 용어로, 통상 ‘한 자릿수대 정답률을 보이는 초고난도 문항’을 의미한다. 정부가 킬러문항의 정의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윤 대통령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할 문항에 대해 설명하면서 킬러문항의 의미를 시사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고 이 부총리는 “교수도 못 푸는 정도로 배배 꼬아서 낸 문항”을 말했다. 다만 킬러문항 자체가 사교육계에서 주로 사용된 용어고 뜻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4. 교육부가 공개한 킬러문항 사례는
교육부가 2024년 6월 모의평가와 2021·2022·2023학년도 수능 국·영·수 3개 과목에서 22개의 킬러문항 사례를 공개했다. 교육 현장에서 문제의 난도가 높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변별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6월 모의평가에서 가장 대표적인 킬러문항은 수학 공통과목 22번으로, 미분을 활용해 삼차함수의 그래프 개형을 파악하고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의 기울기를 구할 수 있는지 묻는 문항이었다. EBSi 집계 정답률은 2.9%였다. 정부는 다항함수의 도함수, 함수의 극대·극소, 함수의 그래프 등 3가지 이상의 수학적 개념이 결합돼 문제해결 과정이 복잡하고 상당히 고차원적인 접근방식을 요구한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인 공교육 학습만으로 이러한 풀이 방법을 생각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같은 모의평가 국어 14번 문제(정답률 36.4%) 또한 인지 과정이 몸 바깥으로 확장한다는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을 다룬 지문이 나왔다. 교육부는 낯선 현대 철학 분야의 전문 용어를 다수 사용해 지문 이해가 매우 어렵고, 문제의 선택지로 제시된 문장 역시 추상적이어서 지문과 답지의 개념 연결이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5. 수능시험 누가 어떻게 출제해왔나
1994년 시작돼 올해로 서른 살이 된 수능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으로 치러왔다. 수능 문제 출제진은 출제위원과 검토위원으로 나뉜다. 문제를 내는 출제위원은 대학교수와 고등학교 교사로 구성되며, 이들이 만든 문제의 난이도 검토는 주로 고등학교 교사로 구성된 검토위원이 맡는다. 출제위원과 검토위원 회의 등을 거쳐 문제의 오류와 난이도를 점검한다. 30년 역사 동안 2004년 수능 언어영역 17번 문제에서 처음으로 복수 정답 논란을 일으킨 후 9차례의 출제 오류가 일었다. 오류가 확인되면 평가원은 전문가 검토와 학회 자문 등을 거쳐 최종 정답을 확정하는데, 이에 불복하고 소송을 거치기도 한다.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을 두고 소송전까지 간 끝에 응시생 6515명 전원 정답 처리로 마무리됐다.
6. 공정한 수능 대책 어떻게 추진 되나
윤 대통령이 직접 기존 수능의 문제를 지적한 만큼 교육부는 변별력은 갖추면서 공교육 과정에서 다뤄야 하는 과제를 맡게 됐다. 교육부는 “수능 킬러문항 방지 및 출제 기법 고도화를 위해 출제 관리체계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일단 평가원 내에 교육과정 이해도가 높은 현장교사를 중심으로 ‘공정수능평가 자문위원회(가칭)’를 구성할 방침이다. 이들은 공교육과정에서 다루는 지문·풀이방법·어휘 등을 활용한 출제전략을 수립해 평가원에 자문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문제 출제 단계에서 현장 교사를 중심으로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가칭)’를 만들 계획이다. 이들은 평가원 외부의 추천을 받아 수능 문제의 난이도 등에 대한 의견을 제출한다. 정부는 또한 출제위원의 비밀유지의무 범위를 확대해 출제위원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이동해 소수 수험생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을 방지할 계획이다.
7. 사교육 카르텔 근절을 위한 대책은
교육부는 사교육 카르텔 근절 대책으로 ‘국민신고’를 강조했다. 정부는 사교육 근절 대책으로 이권 카르텔을 막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사교육 이권 카르텔로 인한 문제가 심각했고 현장에서 카르텔 근절 요구가 많았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를 설치해 2주간 집중신고기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한 ‘전문 모니터링’을 통해 사교육 부당 광고 등에 대한 외부 전문기관(한국인터넷광고재단) 연계 모니터링도 병행한다. 교육부는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협의회(공정거래위원회·경찰·교육청 등)도 구성해 사안에 따라 관계기관과 긴밀히 공조하며 엄정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8. 학교 공교육 강화는 어떻게
정부는 정규 교실 수업 혁신으로 사교육 경감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EBS를 활용해 학생 자기주도학습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학생·학부모가 수준에 맞는 문제나 강좌를 편리하게 추천받을 수 있도록 인공지능(AI) 기반 학습수준 분석시스템을 통해 지원한다. 또 EBS 학습콘텐츠도 확대, 중학생에게는 기존에 연 71만 원 수준의 유료 강좌였던 EBS 중학프리미엄을 무료로 제공한다. 고등학생에게는 수능 연계 교재 기반의 수준별 강좌를 2100여 편 제작해 보급할 예정이다. 교과 보충지도도 강화해 내년부터 e교사단을 구성, 공공학습관리시스템(LMS)인 EBS 온라인클래스를 활용한 소규모 온라인 멘토링도 추진한다. 현재 방과 후에 교원자격소지자 등이 지도하는 튜더링과 교원이 지도하는 방과 후 보충지도 규모 또한 더 늘린다. 아울러 초등돌봄을 위해 늘봄학교를 확대하고, 체육·예술 방과 후 과정을 확대해 예체능분야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한다. 체육·예술 접근성 확대를 위해 학교 신·개축 시 수영장 등 체육·예술시설도 2027년까지 200개 확대한다.
9. 유아 사교육 대응은
영유아 자녀를 둔 학부모 등이 고액의 영어학원을 보내 논란이 되고 있는 유아 사교육도 개선 대상이다. 우선 정부는 현재 사교육 실태조사에서 제외돼 있는 유아 사교육비 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에 영유아 사교육비 조사 기초연구를 진행한 뒤, 내년부터 통계청과 협업해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또 과도한 조기 사교육으로 인한 인지·사회정서·뇌발달 영향 등에 대한 연구도 올해 하반기부터 추진한다. 정책 연구 결과는 학부모 교육자료 개발 및 대국민 캠페인 등에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유아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만 5세 2학기 유·초 연계 이음학기 운영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음학교는 유아·학부모 대상 놀이중심 언어교육으로 초1 통합교과와 연계하는 제도다. 또 학부모가 자녀 특성에 맞는 맞춤형 유아교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2024년부터 테마형 유치원도 지정·운영한다. 영어·예체능 등 수요가 높은 방과 후 과정 운영도 확대 지원하기로 했다.
10. 사교육 경감 대책에 대한 시민 평가
시민단체와 교원단체들은 ‘공정 수능’이라는 명제에는 동의하지만, 정책 실행에 대해선 의문부호를 제기하며 정교한 정책을 주문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육부가 공정 수능 및 입시체제 구축, 방과 후 과정 지원 강화 등 유치원에서부터 고교까지 전반적인 사교육 경감 방안을 제시하고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힌 부분은 시의적절하다”며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혼란을 겪거나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고, 사교육 대책이 풍선효과는 없는지 촘촘히 살피고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평가했다.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과정 내 정상적인 수능을 출제하고 학교 교육 본질에 부합하는 수능 개선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면서도 “사교육 경감까지 가려면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학교 교육과정에 부합하는 수능체제로 개선하는 로드맵을 2028 대입제도 개선 방안에 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인지현·정철순 기자 loveofal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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