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절대 물려줘서는 안되는 것... 욕망과 상처, 나머지 하나는?
【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이미 어른인데 자꾸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낼 땐 나를 상처준 엄마 아빠 얼굴이 생각나고, 아이가 놀이터에서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 때면 인간관계에 유난히 자신없고 소극적이던 내 모습을 닮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같이 놀자고 해봐. 용기 내서 다가가 봐"라고 아이 등을 떠밀지만 애는 "무서워"라며 몸을 사린다. 왜 이런 것까지 닮아서 사람 속을 썩이나. 가끔은 "난 좋은 부모 될 자격이 없어. 내가 이래서 애 안낳겠다고 했잖아!"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한다. 아이에게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은데, 내가 가진 것 중 무엇을 주고, 무엇을 감춰야할지 그건 또 어떻게 하는 건지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어서, 또래보다 키가 좀 작은 것 같아서, 잠을 너무 안 자려고 해서, 투정이 심해서, 이런 것들에 대한 육아솔루션 콘텐츠는 많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불안과 슬픔, 또 그것이 아이에게 옮아갈까 걱정하는 마음을 짚어주는 콘텐츠는 없었다. 개개인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일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베이비뉴스는 6월 부모4.0 맘스클래스 강의로 이남옥(레지나) 교수를 초빙해 '출생부터 독립까지 아이에게 물려줘야 할 5가지 유산'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가족상담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이남옥(레지나)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아이에게 주는 감정 유산」,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 등을 집필했다. 우리 아이가 나와 다르게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들이라면 꼭 다시보기로 시청할 것. 방송은 오후 2시부터 베이비뉴스와 공무원연금공단 유튜브 채널에서 동시송출됐으며 용인시 아이조아용 설렘박스 지원대상자들도 함께했다. 아래는 이남옥(레지나) 교수의 강의 내용을 정리했다.
◇ 아이에게 줘야 할 감정 유산 '아름다운 탄생신화'와 '정서적 연결-독립의 공존'
사연1. 임신 8개월 차 예비맘입니다. 임신 초기에는 마냥 설레고 기뻤지만, 출산일이 다가오니까 아이를 바르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아요.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고 엄마가 집을 나간 일도 있었어요. 화내는 아빠 우는 엄마 보는 게 싫어서 하루빨리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엄마아빠는 제게 상처입니다. 부모의 불행이 제게도 되물림될까봐 두렵습니다.
사연에 대해 이남옥(레지나) 교수는 "트라우마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의 상처를 잘 들여다 보고 서서히 분리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내면의 상처를 잘 표현하고 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좌절하지 말고 상담을 통해 빠져나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새 가정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갖고 있는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지론.
이남옥(레지나) 교수는 아이에게 물려줘야 할 감정유산 4가지와 절대 줘선 안 되는 1가지를 설명했다.
첫 번째로 '탄생신화'다. 아이의 탄생 자체를 축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라는 것이다. 소재는 많다. 태몽이 대표적이고, 아이가 태어난 계절, 그날의 날씨 등 좋은 요소를 가미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면 아이는 자기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게 된다.
두 번째는 아이의 좌절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 아이가 겪는 좌절과 실패를 함께 견디되 해결책을 찾을 때 개입해선 안 된다. 이때 필요한 건 실패한 아이의 옆에 가만히 함께 있어주는 것. 그리고 위로의 말 한 마디면 아이는 스스로 자신이 일어설 길을 찾는다. 절대 아이 앞에 앞서나가지 말고 반발짝 뒤에 서있어야 한다고 이남옥 교수는 강조한다.
부모와 자녀는 정서적 연결과 독립이라는 상충된 개념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 미지의 세상을 헤쳐나갈 때 그래도 내 뒤에 부모가 든든히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헤쳐나갈 힘이 생긴다. 다만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인정하는 길이어야 그 인생에 힘이 생긴다. 인생을 살다 보면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너무나도 많다. 정서적으로 독립된 자녀들은 내가 한 결정을 사랑하고, 그 결정이 가진 장점을 믿는다.
한편 절대 줘선 안 되는 건 나의 욕망, 나의 상처, 나의 콤플렉스다. 아이와 부모는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이므로 아이에게서 나를 보면 안 된다. 이남옥(레지나) 교수는 "상처와 콤플렉스는 부모가 알아서 해결하라. 자녀에게 위로받고 극복하려는 생각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 아이 앞에서 "애 키우느라 힘들지"는 무례한 인사
- 임신 9개월, 곧 출산이다. 이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보고 싶고, 아이를 기다리며 행복하고 기쁜 마음이 중요하다. 이때의 좋은 마음을 아이가 태어난 이후 끊임없이 들려줘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드니까 아이 키우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유 너무 고생많아' '너무 힘들겠다'를 인사처럼 말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인사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런 말 대신 '아유 아이가 너무 이쁘지' '이렇게 예쁜 아이를 키우다니 넌 축복받은 사람이야' 같이 긍정적으로 말해줘야 엄마도 엄마의 삶을 즐길수 있다. 아이 키우느라 힘들지는 아이에게 실례되는 말이다."
- 시험관으로 아이를 어렵게 가졌는데 탄생신화로 들려줘도 될까?
"너를 만들려고 엄마아빠가 너무 힘들었어, 정말 고생했어, 넌 어렵게 태어난 아이란 말은 하지말 것. 탄생 신화의 중요한 요소가 세 가지 있는데 하나는 아이를 존중하는 스토리, 두 번째는 부모도 존중받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유용성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아름다워야 하지 고생담이어선 안 된다."
- 남편이 아이를 혼낼 때 과거 저를 엄하게 혼내시던 아빠 모습이 트라우마처럼 떠오른다. 남편에게 훈육은 내가 할 테니 당신은 하지 말라고 했더니 남편은 부모가 같이 훈육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해를 못한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큰소리내면 안 된다는 걸 전제로 갖고계신듯 하다. 훈육하는 아빠들 중에서도 아이와 관계가 좋은 사람들 많다. 본인의 상처는 따로 분리하고 훈육은 다른 차원에서 고민하라."
- 아이 키우면서 너무 화가날 때가 있다.
"분노나 화는 절대 금물. 아이메세지 대화법을 활용하라."
- 셋째 출산 앞둔 다둥이맘이다. 6살 첫째는 감성적이고 4살 둘째는 쿨한 성격. 이 두 아이가 싸울 때 중립을 지키기가 어렵다.
"두 아이를 비교하지 말고 이들이 각각 갖고 있는 매력과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칭찬하라."
- 두 살 여아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 사교성 어떻게 키울지 고민이다. 내가 너무 내성적인 성격이라 어릴 때 힘들었다.
"내성적인 성격 고치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라. 그러다 보면 아이에게 힘이 생긴다. 친구들과 잘 놀고 온 날엔 긍정적으로 칭찬할 것."
-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한 후 친정아버지와 연락을 끊은 채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외할아버지에 대해 물을 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결혼이란 건 어차피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과정이다. 연락을 안하는 것에 죄책감 갖지 말고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는 걸로 효도하면 된다. 아이에게는 외할아버지의 좋은 점을 말해주면 된다. 만나지 않았더라도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 초2 남아 엄마. 아이가 크면서 주도성이 커지는데 생활습관과 숙제에서 많이 부딪힌다. 아이는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하는데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
"잔소리로는 행동수정이 어렵다. 아이가 가진 긍정적 부분을 강화해서 칭찬하는 게 변화에 유용. '주도성'이란 말을 하셨는데 이걸 숙제나 생활습관에 적용해보시길. 숙제 빨리 하고 그다음에 너 하고싶은거 해라는 말은 숙제는 내가 하고싶은 걸 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괴로운 일이 된다."
- 4살 딸아이가 너무 이쁘다. 무한정 다가가서 깨물고 싶고 사랑을 주고 싶은데 아이가 거부하기도 한다.
"아이가 뭔가에 몰입한 순간엔 애정표현 지양할 것. 사랑은 언제나 맞춰가는 것이다. 아이가 사랑을 원할 때 부모가 그 사랑을 주면 아이는 그 사랑을 흠뻑 빨아들인다. 원하지 않은 순간에 사랑을 주는 건 강요이고 결국 욕구좌절."
- 돌 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복직해야 한다. 애착형성에 문제될까 고민.
"엄마가 부재한 흔적은 반드시 남는다. 그건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다만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와 애착형성이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퇴근해선 모든 걸 아이에게 집중하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잠드는 시간 잘 활용하면 된다."
- 17개월 아기 너무 호기심 많아서 가만히 앉아있는 법을 모른다. 나와 반대성향이라 그런지 이해가 잘 안 간다.
"17개월은 가만히 앉아있을 시기가 아니다. 여기저기 호기심많게 다닌다는건 잘 크고 있다는 증거. 아기는 아기다워야 한다."
- 가족상담분야 최고 권위자로서 행복한 자녀를 키우는 가정의 공통점이 무엇이라 보시는지?
"부모 자체가 만족하고 행복하고, 그들의 삶이 조화롭고 편안한 사람들이 행복한 자녀를 키워낸다. 반대로 인위적으로 아이를 만들려는 부모들은 자녀를 불행하게 한다. 부모가 아이 인생의 설계자로 너무 힘이 들어가면 아이가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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