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 또 사라져선 안 돼"...'익명 보호출산제' 여야 공감 속 신중론도

유승목 기자 2023. 6. 27. 06: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he300]
(서울=뉴스1) 이성철 기자 = 3일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옆 드럼통 주변에서 수건에 싸여 있는 남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아기는 탯줄과 태반이 붙어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은 아이가 발견됐던 드럼통 인근. 2020.11.03/뉴스1

최근 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출생신고 되지 않은 영아들의 유기·사망 사건을 계기로 재발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입법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정부·여당이 아동양육 보호체계 점검 필요성을 강조하며 법제화를 약속한 가운데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오는 30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관련 법안이 통과될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못한 법안을 여론을 의식해 서둘러 처리하는 데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는 오는 27일 제1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 등 보호출산제 관련 법안을 심사한다.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도 이르면 오는 28일 법안소위를 열어 정부와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인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집중 심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출생통보제는 아이가 태어나면 의료기관이 출생사실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의무 통보하고, 지자체장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출생자를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해 이른바 '유령 아기'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21대 국회에선 10건 가량 발의됐는데, 지난해 정부가 제출한 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보호출산제는 미혼모나 미성년자 임산부 등 사회적·경제적 위기에 처한 산모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출산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가 해당 아기를 보호하고 보육을 도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영아유기 등을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나온 법안이다.

두 법안 모두 최근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 22일 보건복지부 정기감사 과정에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출산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영·유아 2236명 중 23명을 표본조사했는데, 이 중 최소 3명이 숨지고 1명은 유기가 의심된다고 밝히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때문이다.

이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3일 "책임있는 공당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계획을 내놓고,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아기를 낳으면 국가 지원을 받아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등 여야가 한 목소리로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해법으로 국회에 계류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법안이 주목받게 됐다.

여야는 상임위 소위에서 이 법안들의 심의가 마무리되면 전체회의를 거쳐 30일 예정된 본회의에 상정, 최종 의결하겠단 계획이다. 이미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한 터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기자들과 만나 "(관련 법안을) 빨리 처리하도록 독려하겠다. 민주당도 반대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한 여당 법사위 관계자는 "(법안에) 세부적인 조율은 필요하다"면서도 "관련 법안을 처리하려면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28일 정도까진 소위에서 심사를 마쳐야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그러나 변수가 없지 않다. 정부·여당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함께 패키지로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출생통보제와 달리 보호출산제와 관련해선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출산 등으로 신원 노출을 꺼리는 산모가 행정·의료 사각지대에서 출산해 생길 수 있는 영아 유기·신생아 살해 등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엔 공감하지만 아동인권단체 등을 중심으로 보호출산제가 양육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터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시민단체인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하면서도 "부모의 정보를 숨기는 것이 아동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내기도 했다. 지난 4월 복지위 법안소위에서도 보호출산제와 관련해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베이비박스 문제 같은 것들이 익명 보호출산제만 갖
고 과연 해결될 것인가"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 법안들이 이달 내 처리되지 못할 경우 국회가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를 할 기회가 충분했는데도 정쟁에 몰두하느라 이를 실기했다는 지적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보호출산제의 경우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21대 국회 첫 해인 2020년 발의됐지만 여태까지 입법 진전이 없었던 상황이다. 이를 두고 김미애 의원은 지난 4월 법안소위에서 "제가 20년 12월에 발의했고 조오섭 민주당 의원이 21년 5월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면서 "(그러면) 대안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았다는 데 정말 통탄할 노릇"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유승목 기자 mok@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