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비는 줄여도 학원비 못 줄여…'킬러 문항' 사라져도 불변" 왜?
"좋은 학원 못보내는 부모가 죄인"…상대적 박탈감 더 커져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1. 막국수 팔아 월 수입 많아봐야 450만원인데 적을 때는 300만원 겨우 넘을 때도 있다. 현재 세 아들 학원비로만 월 180만원이 들어간다. 외식을 안 한 지도 오래됐다. 애들 미래가 달렸으니 학원을 관두게 할 수도 없고 그나마 줄일 수 있는게 외식비다. 5가족이 외식을 한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40대 임모씨·경기 화성시 거주)
#2. 중학생 자녀 2명이 합쳐서 학원 5군데를 다닌다. 고물가로 힘든 상황에서 줄일 수 있는것이 그나마 식비였는데 이마저도 이제 어렵다. 기본적으로 먹고살기는 해야 하지 않나. 우리가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제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원만 남기고 줄이기로 결정했다. 내가 좀더 잘 벌었으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애들한테 미안하다(40대 김모씨·경기 김포시 거주)
고등학교 2학년생, 중학교 3학년생, 초등학교 6학년생의 세 자녀를 키우는 임씨는 작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조금이라도 벌이가 괜찮아 보이는 자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안 좋다보니 월 수입이 불규칙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첫째는 이런 상황을 아는지 학원 안 다니고 본인이 혼자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부모된 입장에서 너무 미안할 뿐"이라며 "잘 사는 부모는 아이의 부족한 과목 하나에도 월 100만원짜리 학원 보낸다던데 난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자책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환영하면서도 당장 학원비를 줄이기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고등학생과는 달리 학원을 보내는 이유가 당장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고득점을 받기보다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학원이 돌봄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도 무시하기 어렵다.
교육부는 지난 26일 수능에서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없애고 '공공 입시상담' 등을 통해 학생들이 공교육 안에서 입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연 26조에 달하는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이번 정부 발표와 별개로 당장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아이들이 경쟁에서 밀릴 것에 대한 불안감을 쉽게 없애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임씨는 "수능과 별개로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지 않느냐"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번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부모 된 입장에서 정부 발표를 믿고 학원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특성상 사교육비 줄이기는 힘들어…악순환의 반복"
학원비 지출이 부담되면서도 선뜻 학원을 그만두지 못한다는 게 학부모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손모씨(40대)의 중학교 2년생 아들은 영어, 수학 단과반을 포함해 4곳의 학원을 다니고 있다. 학원비만 약 월 120만원이다.
손씨는 "원래 아내와 얘기했을 때 아이가 원하면 학원을 보내자고 약속했었다"며 "아들이 초등학생이 됐는데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더라. 마음 놓고 애들을 맡겨놓을 곳이 학원이다 보니 한개 두개 등록하게 됐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교육열이 높지도 않고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안됐다"며 "돈을 벌기 위해 맞벌이를 하면서도 학원비는 줄일 수 없는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40대 이모씨는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고 있어 아이가 학교 끝나면 돌봐줄 사람이 없어 하교 후 바로 학원 3군데를 보낸다"며 "비용이 들어도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는 한달에 120만원씩 들여 영어유치원을 보냈는데 그때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아이를 학원에서 데리고 있어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고소득 가정일수록 사교육비 지출↑…"자식 학원비 걱정하는 내가 죄인"
이같은 학원비 부담은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정은 소득분위에 상관없이 학원비를 식비보다 많이 지출하고 있었다. 다만 소득분위에 따라 지출하는 사교육비 차이는 식비 차이보다 컸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가구 중 만13∼18세 자녀가 사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가구를 제외한 월평균 학원비는 각각 114만3000원과 48만2000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식료품·비주류 음료 지출 비용은 각각 63만6000원과 48만1000원이다.
이에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가정에서는 더 좋은 학원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1학년 자녀를 둔 김씨는 "요즘 사교육을 안 받고 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냐"라며 "예전 부모들은 우리한테 좋은 것을 못 먹여서 미안하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제는 좋은 학원을 못 보내는 부모가 죄인"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어느 정도 공부를 하는데도 아낌없이 지원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당장 방학때 학원을 늘려주진 못할망정 줄여야 하는 상황이 괴롭다"고 덧붙였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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