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살해는 죄가 덜한가요?…아직도 6·25 시절에 머문 법
수원에서 출산한 영아를 살해한 뒤 자택 냉장고에 보관한 30대 여성이 영아 살해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영아 살해죄의 형량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형법 상 사형까지 가능한 일반 살해죄와 달리 영아 살해죄는 최고 징역 10년 형, 낮게는 집행유예에 그치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치사죄는 아무리 못해도 7년 이상의 징역 형을 받는다는 점에서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영아 살해죄 관련 법이 6·25 때 만들어진 만큼 시대에 맞게 시급히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실 등에 따르면 여야는 이르면 28일 오후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를 연다. 이날 회의에서는 일단 출생통보제(아이가 태어나면 의료기관 등이 지방자치단체에 출생 사실을 알리는 제도)를 집중 검토할 전망이다. 다만 이날을 시작으로 영아살해죄 형량 조정 등 이번 사건과 관련된 법안을 차례로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출생신고제가 도입되면 아이의 출생 사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영아 보호를 위해 영아살해죄 형량 강화 논의를 촉발하는)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법사위 소속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에) 필요한 부분들은 수정·보완하자는 취지이므로 논의를 한다면 (영아살해죄 형량 등까지) 관련 법안도 같이 논의하는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오는 27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서도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보호출산법)이 논의된다. 보호출산법은 산모가 익명으로 출산하면 지방자치단체가 보호하는 내용으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현행 형법 상 영아살인죄는 일반 살인죄보다 형량이 낮다. 일반 살인죄는 최소 5년 이상이지만 영아살인죄는 하한선 없이 10년 이하의 징역으로만 돼 있다. 집행유예에 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규정은 1953년 형법이 처음 만들어졌던 때 만들어진 이후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6·25 전쟁 당시 극도로 곤궁한 상태에서 원치 않은 출산이 빈번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했던 규정이지만 시대 변화에도 개정없이 그대로 남은 것이다.
영아유기 등 사건은 매년 꾸준히 발생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영아유기 사건 발생 건수는 △2010년 62건 △2011년 127건 △2012년 139건이다가 2018년에는 183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2019년 135건 △2020년 107건 △2021년 77건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국회에서도 14대 국회(1992년)를 시작으로 개정 논의는 계속 진행돼왔다. 14대 국회에서 영아살해죄의 적용 대상을 산모 이외에 산모의 남편 등까지 포함하는 '직계존속'에서 '생모'로 개정하고 영아유기죄를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시작으로, 18대 국회에서는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를 모두 삭제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홍정욱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됐다.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가 삭제되면 일반 살해죄와 같은 기준을 적용받으므로 형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
20대에는 현재 국민의힘 소속인 이태규 의원과 윤재옥 의원이 각각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태규 의원 안은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를 삭제하는 내용이며, 윤재옥 의원 안은 영아살해죄의 적용 대상을 '직계존속'에서 산모로 제한하고, 영아유기죄는 삭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21대에는 같은 당 조경태 의원과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각각 영아살해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백혜련 의원 안은 영아살해죄는 물론 영아유기죄도 삭제하는 내용이다.
백혜련 의원 안에 대해 국회 법사위 소속 수석 전문위원도 2021년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개정 필요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수석 전문위원은 "해당 조항이 신설된 1953년에 비해 현재 제도적 상황과 사회적 인식이 현저히 달라진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며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는 별도로 규정을 두지 않더라도 현행 법 상 법관이 판단해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수원 사건도 '참작할 만한 동기가 있다'고 인정되면 형량이 더 가벼워질 수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을 막고 영아 생명 보호를 위해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했다.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김지영 기자 kjyou@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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