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시즌? 상승세 기쿠치, 이번에는 2년 전과 다를까[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숫자는 달라졌다. 과연 기쿠치는 올해야말로 다른 시즌을 보내는 것일까.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6월 26일(이하 한국시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홈경기에서 12-1 완승을 거뒀다. 타선이 폭발했고 마운드도 견고했다. 선발투수는 7이닝 1실점 시즌 최고투로 승리를 따냈다. 바로 기쿠치 유세이였다.
기쿠치는 이날 7이닝을 2피안타(1피홈런) 2사사구 8탈삼진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6회초 토니 켐프에게 솔로포를 허용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했다. 기쿠치는 토론토 입단 2시즌만에 처음으로 7이닝을 투구했고 시즌 7승에 성공했다. 시즌 7승은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이었다.
이날 호투로 기쿠치는 시즌 평균자책점을 3.75까지 끌어내렸다. 지난 5월 8일 시즌 7번째 등판을 마치고 기록했던 평균자책점 3.35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16경기 84이닝, 7승 2패, 평균자책점 3.75. 선발 로테이션의 뒤를 책임지는 투수로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성적이다.
사실 기쿠치는 '못 믿을 투수'의 대명사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어난 커리어를 쌓은 뒤 2019시즌에 앞서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당시 시애틀이 기쿠치와 맺은 계약은 아주 특이한 형태였다.
총액 최대 7년 1억900만 달러 규모지만 선수의 의지로 유지할 수 있는 보장 계약 규모는 4년 5,600만 달러였다. 첫 3년 동안 4,300만 달러 계약이 유지되며 3년차 시즌 종료 직후 구단이 4년 6,600만 달러 옵션 실행 여부를 결정하고 구단이 실행을 거부할 경우 선수가 1년 1,300만 달러 옵션을 실행할 수 있는 특이한 형태였다. 이전에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메이저리그로 넘어온 다르빗슈 유, 다나카 마사히로, 마에다 겐타 등에 비해 일본 무대 커리어가 다소 아쉬운 기쿠치를 두고 시애틀 구단이 마련한 나름의 '안전 장치'였다.
결과적으로 시애틀은 현명했다. 기쿠치가 시애틀에서 첫 3년 동안 기록한 성적은 70경기 365.2이닝, 15승 24패, 평균자책점 4.97. 3년 동안 한 번도 규정이닝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3년차 시즌에서야 처음으로 5점대 미만의 평균자책점(4.41) 달성에 성공했다. 물론 첫 3시즌 동안 4,300만 달러를 지급한 것이 과연 '합리적인 소비'였느냐는 의문이지만 시애틀은 보장보다 옵션이 큰 계약 덕분에 기쿠치와 빠르게 결별할 수 있었다.
시애틀에서 자신이 전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기쿠치는 선수 옵션으로 구차하게 구단에 남느니 새 도전을 선택하기로 결정했고 2021시즌 종료 후 옵션 실행을 거부하고 FA 시장에 나왔다. 시애틀과 3년만에 결별한 기쿠치는 토론토와 3년 3,6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지난해 기쿠치는 32경기(20GS) 100.2이닝, 6승 7패, 평균자책점 5.19를 기록해 '예상대로' 부진했다. 2021시즌 보인 잠시의 반등세는 온데간데 없었다. 8월 중순부터는 로테이션에서도 밀려나 불펜으로 이동했다. 기쿠치는 올시즌 류현진(부상)과 로스 스트리플링(이적)이 이탈한 공백을 채우기 위해 다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리고 다소 기복이 있었지만 크게 부족하지 않은 모습으로 전반기를 치르고 있다. 올시즌 개막 로테이션에 이름을 올린 5명의 투수 중 가장 조금 패한 투수가 바로 기쿠치다.
현재까지는 팀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다. 하지만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 기쿠치는 2년 전에도 비슷한 행보를 보인 적이 있다.
기쿠치의 커리어 하이 시즌은 시애틀에서의 마지막 해였던 2021년이다. 기쿠치는 2021시즌 29경기에 선발등판해 157이닝을 투구하며 7승 9패, 평균자책점 4.41, 163탈삼진을 기록했다. 이닝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올시즌 전까지 커리어 하이였다. 빅리그 데뷔 첫 4시즌 중 유일하게 5점대 미만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시즌이었고 다승, 탈삼진도 모두 개인 최다였다.
2021시즌 기쿠치는 놀라운 전반기를 보냈다. 4월을 5경기 1승 1패, 평균자책점 4.40으로 마쳤지만 5월 5경기에서 2승 2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했다. 그리고 6월에는 4경기 2승, 평균자책점 1.90을 기록했다. 7월 첫 등판을 마친 시점의 성적은 15경기 93.1이닝, 6승 3패, 평균자책점 3.18, 93탈삼진이었다. 승패 기록을 제외하면 올시즌보다 오히려 페이스가 좋았다.
데뷔 첫 2시즌 동안 4번 밖에 기록하지 못한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2021시즌에는 전반기에만 5번을 기록했다. '대반전'이라 부를만한 변화였고 시애틀도 기쿠치가 시즌 끝까지 활약을 이어갈 경우 4년짜리 옵션 실행 여부를 두고 큰 고민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쿠치는 이후 14번의 등판에서 63.2이닝, 1승 6패, 평균자책점 6.22를 기록했고 시애틀의 고민을 덜어줬다. 올시즌에도 2021년의 반복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세이버 매트릭스 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쿠치의 기대 지표는 실제 지표와는 차이가 크다. 기대 평균자책점은 실제 평균자책점보다 약 1점이 높고 기대 피안타율, 기대 가중출루율 등 지표도 리그 평균 이하다. 기쿠치는 여전히 리그 평균보다 훨씬 강하고 빠른 타구를 허용하는 투수다. 볼넷 허용이 줄었지만 탈삼진 역시 줄었다. 그리고 땅볼 유도가 크게 감소하며 피홈런이 늘었다. 기쿠치는 26일까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허용한 투수(20피홈런). 현재 페이스라면 161.2이닝 동안 36개 홈런을 얻어맞은 데뷔 시즌의 개인 최다 피홈런 기록을 충분히 갈아치울 수 있다.
올시즌 성적은 기쿠치에게도 중요하다. 올해가 끝나면 기쿠치는 토론토와 계약이 1년 남는다. 계약 마지막 해의 선수들은 부진할 경우 언제든 팀 전력에서 제외될 수 있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류현진이 돌아오고 부진 끝에 마이너리그로 향했던 영건 알렉 마노아도 기량을 재정비하고 있다. 기쿠치가 다시 부진할 경우 그를 대체할 후보는 얼마든지 있다.
큰 기대 속에 일본을 떠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지만 한 번도 명성에 걸맞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5년 동안 기록한 성적은 118경기 550.1이닝, 28승 33패, 평균자책점 4.82. '일본프로야구 에이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는 기존의 통념에 반하는 실패 사례로 평가받는 기쿠치가 과연 지금의 상승세를 시즌 끝까지 이어가며 완벽한 반전을 이뤄낼지 주목된다.(자료사진=기쿠치 유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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