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 킬러문항 22개 공개…“공교육 부합” “학원 다녀야 풀어”
[윤대통령 수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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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6일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에서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최근 3년간 수능과 2024학년도 6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모의평가에서 출제된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22개(국영수)를 공개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수능과 관련해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은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하고, 이튿날인 16일 ‘6월 모의평가에서 킬러문항 배제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면서 킬러문항에 수험생과 학부모, 입시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교육당국이 세운 킬러문항의 기준이 무엇이고 6월 모의평가 문항 중 어떤 문항이 킬러문항으로 지목되는지 등이 올해 수능 출제방향을 예측하기 위한 주요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킬러문항 22건 살펴보니
교육부가 정의한 킬러문항은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으로, 2021학년도 수능에서 1개, 2022학년도 수능 7개, 2023학년도 수능 7개,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7개 등 총 26개가 선정됐다. 영역별로는 국어 7개, 수학 9개, 영어 6개다. 오승걸 교육부 책임교육정책실장은 “현장교원과 평가전문가가 참여하는 수능킬러문항점검팀을 구성하고 지난 19일부터 25일까지 480문항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국어를 보면, 6월 모의평가에서 ‘몸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다룬 비문학 지문에 달린 14번 문항, 조지훈의 ‘맹세’와 오규원의 ‘봄’이라는 시에 달린 33번 문항이 뽑혔다. 14번 문항의 경우 “낯선 현대철학 분야의 전문 용어를 다수 사용해 지문 이해가 매우 어렵고 선택지로 제시된 문항도 추상적”이라고, 33번 문항은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높은 수준의 추론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2023학년도 수능에서는 ‘클라이버의 기초 대사량 연구’를 다룬 지문에 달린 15번 문항과 클라이버의 법칙을 이용해 농게 집게발 길이를 추정하는 17번 문제가 “과도한 추론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킬러 문항이 됐다.
수학의 경우, 6월 모의평가 공통과목의 21번과 22번과 선택과목 ‘미적분’의 30번이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다. 22번은 “다항함수의 도함수, 함수의 극대·극소, 함수의 그래프 등 세가지 이상의 수학적 개념을 결합한 것으로, 공교육 학습만으로 이런 풀이법을 생각해내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2022학년도 수능에선 ‘미적분’ 29번이 대학 때 배우는 ‘테일러 정리’ 개념을 활용해 풀 수 있다는 이유로 킬러문항이 됐다. 영어에선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에서 33번, 34번, 2023학년도 수능에선 34번과 37번, 2022학년도 수능에선 21번과 38번이 “문장 구성이 복잡하다” “공교육에서 다루는 수준보다 어려운 어휘”라는 이유 등으로 킬러 문항으로 선정됐다.
선정된 문항들의 정답률은 EBS 인터넷 강의 누리집인 EBSi 집계를 기준으로 국어 15∼36.8%, 수학 2.9∼14%, 영어 17∼29.1%다.
“학원 다녀야 풀 수 있다” “교육과정 안 벗어나” 의견 분분
교육부의 선정 근거를 요약하면 국어는 공교육 수준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지문과 전문용어를 사용한 경우, 수학은 수학적 개념을 과도하게 결합하는 경우, 영어는 복잡한 문장구조와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 킬러문항에 지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문항을 킬러문항으로 봐야할지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김용진 국어 교사(동국대부속영석고)는 <한겨레>에 킬러문항으로 지목된 6월 모의평가 14번 문항에 대해 “독서 교육과정에서는 다양한 소재와 목적의 글을 읽도록 하기 때문에 다루는 지문의 경계를 짓지 않는다”며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교육과정 밖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적으로 국어 고난도 문항은 사회나 과학 관련 비문학 지문에 계산이 필요한 내용을 집어넣은 것들이다. 이번 6월 모의평가에는 그런 방식으로 난이도를 높인 문항이 없어, 예년에 비해 난이도가 평이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교 영어 교사는 “어휘의 수준이나 지문의 성격이 교육과정을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들”이라며 “정답률 25∼30%의 문항을 킬러문항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의 고교 수학 교사는 “성취수준에 근거해 출제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나치게 복잡한 계산을 포함하는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는 평가 유의사항을 고려하면 벗어났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공교육 수업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맞다는 의견도 있다. 염동렬 수학 교사(충남고)는 “대학 수준을 선행한 친구는 기계적으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며 “(2022학년도 수능 미적분 29번 문항의 경우) 테일러 급수를 활용하면 쉽게 풀리는 문제라는 점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과정 밖에서 배운 것을 차용하면 이득을 보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올해 3월부터 장학사로 근무 중인 전직 국어 교사는 “국어는 기본적으로 수능 텍스트의 소재나 화제를 제한할 수는 없다”면서도 “(클라이버 기초대사량을 다룬) 2023학년도 수능 15번, 17번 문항은 지문의 난이도와 사고 능력 등을 고려하면 교육부가 밝힌 것처럼 적절치 않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선정 기준·변별력 확보 물음표
교육부의 킬러문항 공개 이후에도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은 한동안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육 과정 밖에서 출제된 문항’이라는 기준을 제시했지만, 교육과정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해석도 분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향후 킬러문항을 출제에서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변별력을 확보할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아 ‘쉬운 수능’이 이뤄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변별력과 적정 난이도를 확보할 방안은 무엇이냐는 질의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킬러문항을 배제히는 것은 원칙이자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평가에 있어서 변별력은 본질이다.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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