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의 사교육 대책… 폭은 넓지만 깊이는 부족했다

김경준 2023. 6. 2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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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교육부터 대입까지 단계적 대책
킬러문항 배제 통한 '공정수능' 방점
대학서열 타파 등 근본적 해법은 없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정부가 9년 만에 사교육 경감 종합대책을 내놨다. 지난해 26조 원까지 치솟아 가계 부담을 가중하고 있는 사교육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수능 킬러문항 배제' '사교육 카르텔 근절' 등 공정한 입시체제 구축에 방점이 찍혔다. 유치원부터 대입까지 교육 전 단계의 사교육 유발 요인을 근절하는 대책을 제시한 점도 눈에 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6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했다.

수능은 올해부터 변별력을 유지하되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배제하는 방향으로 공정성을 높이기로 했다. 다만 학기 중 수능 출제 방향을 조정하는 데 따른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육부는 이날 3년간 수능과 6월 모의평가 문제 가운데 킬러문항 사례 22건을 제시했다.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복합 개념으로 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 등이 포함됐다.

소비자 물가지수 및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추이. 교육부 제공

'킬러문항' 감별 위해 현직 교사 위원회 신설

킬러문항 배제 원칙이 출제 과정에 잘 반영되도록 현장 교사 중심의 위원회 2개가 신설된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내에 '공정수능평가 자문위원회'를 두고 시험 전후로 출제 전략 수립과 평가·개선을 돕는다. 출제 단계에선 평가원과 독립된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가 출제위원들과 합숙하며 킬러문항을 걸러내는 역할을 맡는다. 2025학년도 수능부터는 현장교사 중심으로 출제진을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수능 사교육 카르텔 근절을 위해 수능 출제위원이 강의·집필·자문 등 영리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교육부, 공정거래위원회, 경찰청 등 유관기관이 대응협의회를 구성해 고액 사교육을 조장하는 과장광고 행위 등을 단속한다. 아울러 대입 수시평가에서 공교육을 벗어난 논구술 문제를 출제한 학교를 공개하고, 반복될 경우 정원 축소 등 제재를 가한다.고액 입시 컨설팅 수요를 공교육에서 충족하도록 대학교육협의회 대입상담교사단 등을 활용한 무료 상담을 확대한다.


초등 방과후 과정 내실화… 유아 사교육 대책도

중고등학생, 초등학생, 유아 대상의 단계별 사교육 대책도 마련됐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EBS를 통해 프리미엄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수준별 강좌를 늘려 자기주도학습을 지원한다. 또 방과후 보충 학습을 확대하고, 예비교원 등 멘토 1명당 학생 4명을 매칭하는 온라인 멘토링도 추진한다.

사교육비 증가율이 가장 높은 초등학생은 돌봄을 위한 예체능 사교육 수요가 크다고 보고, 체육·예술 분야 방과후 과정을 내실화한다. 수영장 등 체육·예술 시설을 점차 늘리고, 지역대학과 지역사회, 민간 예체능 단체가 참여하는 방과후 교육을 실시한다. 초등 의대입시반 등 신규 사교육 분야는 실태 점검을 거쳐 학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그간 방치 상태였던 유아 사교육 대책도 마련된다. 취학 대비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유·초 연계 이음학기를 운영하고 숲·생태·아토피 치유 등 다양한 테마형 유치원을 지정한다. 유아 사교육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고자 사교육비 조사를 실시하고 유아 영어학원 등의 편법 운영엔 교육청과 협력해 정상화를 유도할 계획이다.


"경쟁교육 대책은 미흡" 지적도

교육계에선 △수능 킬러문항 문제 해소 △사각지대에 놓였던 유아 사교육 대응 △초등 돌봄 수요의 공교육 편입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사교육 유발의 본질적 원인인 경쟁교육 체제 개선 해법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학벌주의, 대학서열화 등을 완화하는 구조적 접근 없이는 다른 해법들도 힘을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한국 사교육의 특징은 학교 공부 보충이 아니라 경쟁 승리를 위한 것"이라며 "수능이 학생 우열을 결정하는 제도로 쓰이고 있는 한, 킬러문항을 없애는 것으로 입시 사교육이 줄어들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총리는 수능 출제 방향 개편이 갑작스럽다는 여론을 의식한 듯 "미리 점검하고 준비해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일찍 표명하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일부 학원들의 불안·공포 마케팅에 현혹되지 말고 그동안 해왔던 대로 수능 준비에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구조적 해법이 미흡하다는 지적엔 "(유망한 지방대를 집중 지원하는) 글로컬대학 30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면 시간은 걸리더라도 학벌주의를 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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