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85] 분홍 드레스 입은 아기 예수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3. 6.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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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 디본도네, 권좌의 성모, 1300-05년경, 목판에 템페라와 황금, 325x204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요즘도 유아용품 시장은 여아용 분홍과 남아용 파랑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러나 피렌체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조토 디본도네(Giotto di Bondone·1267~1337)의 ‘권좌의 성모’를 보면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아기치곤 표정이 과하게 근엄하지만 올록볼록하게 접힌 통통한 팔목만큼은 귀엽기 그지없는 예수가 하늘하늘한 분홍색 드레스를 입었다. 여유롭게 아기를 안은 성모 마리아는 파란색 겉옷 차림이다.

조토의 ‘권좌의 성모’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전환함을 보여준다. 배경에 금박을 입혀 시공을 초월한 신의 세계를 표현한 건 중세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파랑이 성모의 신성함을 드러내고 빨강과 분홍이 예수의 희생을 나타내는 색채의 상징 또한 중세 이후 변하지 않은 오랜 관습이다. 그러나 크기가 작을 뿐 완전한 성인으로 그려졌던 이전 아기 예수에서 벗어나 이처럼 머리가 크고 통통한 실제 아기 체형으로 예수를 그린 건 조토가 처음이다.

조토는 성모의 의복에도 미묘한 명암 차이를 둬 권좌에 단단히 앉아 있는 인체의 육중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앞줄에 선 천사의 후광이 뒷줄의 얼굴을 가렸으니 이들은 지금 허공에 떠있는 게 아니라 바닥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게 틀림없다. 일제히 성모자를 향한 이들의 시선을 따라 그림 밖 우리 눈길도 자연스레 중앙으로 모인다. 조토의 혁신이란 이처럼 현실적 인물 묘사, 실감나는 공간감 및 집중적 구도를 통해 강한 교감을 이끌어 낸 것이다.

지금처럼 색상과 성별을 구분한 건 20세기 중반 이후 마케팅의 산물이다. 그러니 혹시 아들이 분홍 옷을 입거나 빨간 신발을 신는다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예수의 분홍 드레스를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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