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이름 대신 가격으로 불린 아이들
이름보다 가격이 먼저 정해진 아이가 있다. 지난 22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만난 A씨의 자녀였다. 그는 ‘입양 보내고 싶어요’라는 채팅방을 열어 자신의 아이를 입양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닷새 뒤인 27일 딸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출산과 산후 조리에 필요한 금액을 제시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그 아이의 몸값은 350만원이었다. A씨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미혼모였고, 아이의 아빠는 임신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는 “출산 기록이 남지 않는 곳에서 낳을 것이며, 입양 보내려는 아이는 둘째 아이다”라고 했다.
영아 매매 시장에서 소위 ‘높은 값이 매겨지는 아이’는 기록이 없는 아이였다.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를 부르는 말이었다. 한 입양 가족 단체 관계자는 “기관을 통하지 않은 개인 입양이 불법인 줄 모르는 사람에게 ‘키워주겠다’며 다가오는 브로커들이 많다”며 “이들은 병원 밖에서 태어나거나,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를 원한다”고 했다.
감사원은 올해 3월 복지부 정기감사를 통해 태어난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가 안 된 2236명을 찾아냈다. 병원에서 출산 기록은 있지만 부모가 주민센터에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들이다. 이 과정에서 자녀를 살해하고 냉장고에 넣은 30대 여성도 구속됐다. 2236명 중 경찰에 수사 의뢰된 아이는 15건에 불과하다. 심지어 병원 밖에서 낳아 태어난 기록조차 없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감사원의 조사 대상조차 되지 못한 ‘유령 아이’다.
출생 신고에서 누락된 아이가 생기는 이유는 부모가 직접 출생 신고를 해야 하는 제도 때문이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의 해외에서는 출산과 동시에 병원에서 출생 신고를 한다. 하지만 한국은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병원에서 발급한 출생증명서를 들고 부모가 주민센터에 가서 신고해야만 한다. 만약 병원 밖에서 출산한 경우에는 더 복잡하다. 분만에 직접 관여한 사람이 서면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서울 관내 10여 곳의 주민센터에 문의한 결과 “병원 밖에서 출산한 경우는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병원 진료 기록 우선 들고 와보라” 등 부정확한 답이 돌아왔다.
한국은 1991년 11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다. 협약 제7조에는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함”이라고 명시해 두고 있다. 2020년 스웨덴은 아예 이 협약을 자국의 법으로까지 제정했다. 반면 한국은 협약이 적용된 지 32년이 흘렀지만 아동들의 출생 신고는 여전히 부모에 맡기고 있다.
이번 감사원 조사에 따라 벌써 3명의 아이가 숨지고 1명이 유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와 정치권은 뒤늦게 제도의 정비를 서두르겠다고 한다. 한국은 작년 합계출산율 ‘0.78명’을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태어난 아이조차 ‘국민’으로 챙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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