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지볼트와 수국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요즘, 제주·신안·울산·공주 등 각지에서 수국 축제가 한창이다. 무더운 여름에 풍성하고 화려한 꽃잎을 자랑하며 활짝 웃는 수국을 보면 청량감이 느껴진다. 수국 종류는 우리나라 산골짝에 자생하는 산수국(사진), 일본 원산인 나무수국과 수국 등이 있다. 수국 축제에는 대부분 일본 원산의 수국이 대표선수다. 토양의 산도(pH)에 따라 꽃 색깔을 바꿔 입맛에 맞는 꽃을 피우니 일본인들이 좋아한다.
일본 나가사키시는 아예 시화(市花)가 수국이다. 여기에는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전해진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유럽과 교류가 있던 일본은 나가사키 해안에 작은 인공섬 데지마를 만들고, 외국인 전용 거주지로 사용했다. 이 섬에는 독일 출신 지볼트라는 군의관이 살았는데 식물학자이기도 하여 일본의 수많은 식물을 연구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일본에 표류한 조선인과의 면담과 일본 자료를 참고해 <조선견문기>를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 소나무와 잣나무에 학명을 붙인 사람도 지볼트다. 그는 18세기 일본 근대화 시작의 근간이 된 난학(蘭學), 즉 네덜란드(和蘭)의 학문 전파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학문 연구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왕진을 갔던 일본인 환자의 딸, 구스모토 오타기와 사랑에 빠져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그는 <일본식물지>(1834)에 그녀 이름을 따 수국 학명을 히드랑게아 마크로필라 ‘오탁사’(Hydrangea macrophylla ‘Otaksa’)라고 명명했다. 일본인이 사랑하는 수국에 아내 이름을 기록해 오랫동안 기리고 싶었던 것이다.
수국은 암술 수술이 없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번식을 위해서는 사람의 손이 가야 한다. 수국 품종이 다양하고 세상에 널리 퍼진 걸 보면, 그만큼 많은 이들이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수국과는 달리 둘 사이에는 구스모토 이네라는 딸이 태어났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듯, 이네는 일본 최초의 여성 의사였다.
평생토록 변치 않을 것 같던 그들의 사랑. 식물의 학명에 이름을 새기며, “이 여인을 결코 유럽 여인과 바꾸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지볼트는 독일로 돌아간 뒤 새로운 사랑을 찾아 정착했다. 수국의 꽃말 중에는 ‘진심’과 ‘변덕’도 있으니, 이래저래 지볼트를 위한 꽃이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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