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후쿠시마 오염수, 이제라도 밥값을 하려면
지난 5월 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알프스(ALPS) 처리수 속의 핵종에 대한 첫 번째 실험실 간 비교’라는 부제가 붙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처리 시설인 알프스를 통과한 물속에 어떤 핵종이 있는지에 대해 도쿄전력이나 IAEA의 자체 조사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여러 나라의 연구소들이 따로 분석해서 그 결과를 비교해보고, 그에 따라 일본의 오염수 처리 수준이나 발표를 믿어도 될지 검증한 보고서라는 뜻이다. 분석을 수행한 기관들은 도쿄전력 이외에도 IAEA,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미국, 한국 등의 대표적 연구기관들이고, 한국에서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참여했다. 이러한 교차 검증의 결과는 “투명하고 엄밀한 과학적 절차를 통해 도쿄전력이 뛰어난 분석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IAEA는 결론 내리고 있다.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의 2021년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당시 “IAEA 기준에 따른다면 굳이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면서 세 가지 단서를 달았다. 첫째, 일본 정부의 과학적 근거 제시와 정보 공유, 둘째, 한국 정부와 충분한 사전 협의, 셋째, IAEA 검증 과정에 한국 전문가 참여가 그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세 가지 단서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IAEA의 모든 보고서는 일본 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으며, 검증의 전 과정에 한국 연구진이 참여했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 정부와의 협의가 과연 충분한 것이냐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일본이 이미 광범위한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은 상태여서 이 문제를 자꾸 제기하는 것이 오히려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IAEA는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어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을 위해 나온 것이 이번 보고서인 셈인데, 음모론을 이어가려면 이제는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미국, 한국도 모두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느새 그 정도의 ‘글로벌 슈퍼 파워’가 됐다는 소문을 나는 아직 들은 적이 없다.
세계 최고의 과학 저널로 불리는 ‘네이처’의 뉴스 브리핑은 며칠 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안전한가? 과학의 대답”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결론은 “방사능은 거의 자연상태 수준으로 희석될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이것으로 충분할지 확신하지 못한다”이다. 과학이란 원래 합리적 의심의 체계이다. 아무리 확실해 보여도 혹시 아닐지도 모를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리지는 않는 것이 과학자의 자세이다. 그러니 “확신하지 못한다”는 말은 일반인들의 대화에서 사용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미세한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기사는 오염수 방류가 태평양에 미치는 영향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며, 그보다는 오히려 1000개가 넘는 스테인리스 탱크에 담긴 오염수를 지금처럼 계속 보관하다가 또 다른 지진이나 태풍에 의해 바다로 흘러나올 경우의 위험이 더 크다고 말한다. 무조건 방류를 막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인지조차 과학적으로는 분명치 않다는 뜻이 된다.
삼중수소는 후쿠시마 오염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을 냉각수로 사용하는 모든 원전이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에 따라 방류해오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태 이전의 일본 원전도, 현재 한국과 중국의 원전들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의 3배가 넘는 80여기의 중국 원전은 대부분 중국 동남부 해안, 즉 우리의 서해바다 건너편에 있다. 만에 하나 후쿠시마 같은 일이 중국 원전에 일어난다면 중국이 일본처럼 투명하게 IAEA와 주요국의 교차검증을 받아들일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한 한 국제사회의 여론과 과학적 연구의 결과는 이미 압도적으로 일본 쪽에 기운 것으로 보인다. IAEA는 ‘알프스 처리수’라 부르는 것을 느닷없이 ‘핵폐수’라 부르고 일본이 철저하게 준비하는 동안 정권을 잡고서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방류 직전에 이르러서야 외국 정부에 편지나 보낸다고 해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미 완패한 게임인 것이다. 차라리 철저하고 투명한 검증 결과에 중국을 포함해 어느 나라든 따라야 한다는 국제적 원전 거버넌스 확립을 주도하고, 동북아 지역에 그 규범이 확고히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미래의 안전을 도모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제라도 밥값을 할 생각이 있다면 말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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