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내 자식들은 16세까지 소셜미디어 못 하게 하겠다”
해외선 ‘적정 나이’ 입법 활발한데 한국선 문제 제기 찾아볼 수 없어
한 달 전 고등학교 친구가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내가 쓴 편지와 쪽지 한뭉치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내줬다. 그날 밤, 창피함에 이불을 걷어차느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친구가 매점에서 사주는 빵 하나에 기뻐했다가 섭섭했다가,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에 우울했다가 즐거웠다가. 변덕스럽기가 한여름 날씨 같았다. 게다가 지성은커녕 논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글을 읽고 있자니 글을 써서 생계 유지를 하고 있는 지금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날 이후 가장 꼴보기 싫은 사람으로 주저않고 ‘16세의 변희원’을 꼽는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게 다 10대여서 그랬다’는 결론에 다다른 후였다. 돌이켜보면 10대는 엑셀은 너무 많은데 브레이크는 하나도 없는 자동차 같았다. 멈출 때를 모르고 마구잡이로 달린다. 그나마 90년대 후반에는 소셜미디어가 없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마음이 생겨날 때마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대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면 어땠을까. 문득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계정 하나쯤은 갖고 사는 요즘 세상에서 10대는 대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몇 년 전부터 10대와 연관된 사건·사고에서 소셜미디어는 빠진 적이 없다. ‘N번방’은 10대들이 트위터에 자신의 신체 사진을 올리거나 성적 욕구를 표현하는, 일명 ‘일탈계’가 미끼가 됐다. 지난 4월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갤러리’에서 활동하던 10대는 자신이 옥상에서 투신하는 과정을 인스타그램으로 중계했다. 10대가 성착취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지만 아무도 이들이 왜 일탈을 한답시고 노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지, 우울 증세가 있는데 왜 부모나 교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소셜미디어에서 소통을 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에선 몇 살부터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갑론을박을 벌이고 정치권이 앞다퉈 ‘소셜미디어 연령제한’ 입법을 하는데 한국에서 소셜미디어는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가 돼도 아무 문제없이 잘나가고 있다. 어른들이 보기엔 하찮은 놀이 도구 같아서 건드리기 귀찮은 걸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수호해야 할 성역이라고 여기는 걸까.
요즘 미국에선 소셜미디어를 둘러싸고 ‘13세냐, 16세냐’ 그것이 문제다. 미국 공중보건위생국장을 지냈고 ‘국가주치의’로 불리는 비벡 머시 공중보건복무단(PHSCC) 중장은 지난달 “소셜미디어가 미성년자의 자기 파괴적 행동을 부추기고 중독을 초래한다”는 공중보건 권고문을 발표하면서 두 자녀가 16세가 될 때까지 소셜미디어를 못 쓰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선 13세부터 부모의 동의 없이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는데도 머시 중장이 ‘16세’라는 나이를 제시한 덴 이유가 있다.
충동 조절과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뇌의 전전두엽 피질은 25세 전후가 돼야 완전히 발달한다. 뇌에서 보상과 감정에 반응하는 중추는 그보다 훨씬 전인 사춘기에 활성화된다. 이런 불일치 때문에 10대들은 고민 없이 위험한 짓을 벌이고 어른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에 극단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16세 쯤에 전전두엽 피질 발달이 이 격차를 따라잡기 시작하기 때문에 “16세 정도면 괜찮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10대를 지나고 나면 10대의 시간이 너무 짧다는 걸 누구나 안다. 내게도 어른으로 살아온 20여 년보다 (꼴보기 싫어도) 10대로 살았던 10년이 더 소중하다. 10대한테 남은 시간이 없다. 어른들이 서둘러야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