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엿 줄 게 있습니다
내 이름은 다정이다. ‘많을 多(다)’ 자에 ‘뜻 情(정)’ 자를 쓴다. “제 이름 뜻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아버지가 “네 이름은 ‘마늘 다’ 자에 ‘뜻 정’ 자를 쓴다”고 하셨다. 속으로 의아했다. 왜 이름에 마늘을 쓴 거지? 어린 시절 나의 큰 의문이었다. 초등학교에 가서 한자를 배우고 나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마늘’이 아니고 ‘많을’이구나.
알아야 들린다. 어른이 되어서도 잘못 알고 있는 단어가 있다. 나는 20대까지 에어컨 ‘실외기’가 에어컨 ‘시래기’인 줄 알았다. 남편이 그런 것도 몰랐다니 부끄럽지 않으냐고 할 정도였다. 시래깃국은 먹어봤지만, 어린 시절 집에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진짜 몰랐다. 건투를 빈다는 어떤가? 매번 권투인가 건투인가 헷갈려 사전을 찾아본다. 건투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씩씩하게 잘 싸운다’는 뜻의 명사다.
라디오에서 MZ 세대가 여자 친구 남자 친구 정 떨어지게 하는 철자법 순위를 매겼다. ‘귀신이 고칼로리(귀신이 곡할 노릇)’와 ‘엿 줄 게 있습니다(여쭐 게 있습니다)’가 꼽혔다. 요즘 세대가 한자를 모르는 탓도 있지만, 장례식에서 고인을 기리며 며칠 동안 곡을 하던 풍습이 없어진 탓도 있다. 곡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역으로 ‘고칼로리’는 몸에 관심이 많아져서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단어다. 최근 한 방송국에서는 태풍 피해 후 후속 조치가 없다는 보도를 내보내며 자막에 ‘육안상’을 ‘유관상’이라고 적는 실수를 했다. 경험해야 알고, 써봐야 안다. 이런 맞춤법 오류는 요즘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전에 “다정아, 너 참 괜찮은 애 같아. 나와 사구어보지 않겠니?”라는 고백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메일을 읽고선 절대 그와 ‘사구어’보고 싶지 않았다.
젊은이들도 괴롭다. 책보다 영상을 보고 자란 세대가 겪는 고통이랄까. 책을 읽을 시간과 기회가 없어진 세대를 무작정 비난만 할 수도 없다. 우리 애들만 봐도 시간이 나면 무조건 영상을 본다. 잘못 쓴 그들도 언젠가는 부끄러워하면서 경험을 통해 배울 것이다.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말이다. 헷갈릴 땐 찾아보는 게 최고다. 너도나도 많이 궁금해하고 찾아보고 바른 단어들을 쓰도록 노력해보자. 혹시 아는가, 괜찮은 사람과 사귀어볼지도? 건투를 빈다.
정다정 메타 인스타그램 홍보 총괄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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