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인권 운동가 행세”라는 말

강병한 기자 2023. 6.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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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와 ‘인권’을 강조한다. 취임사에서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거의 모든 국내외 발언에서 두 단어는 빠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지난 2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공동회견을 하면서 “양국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다고 했다.

강병한 정치부 차장

그러나 윤 대통령의 언급을 들을 때마다 공허함이 가시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G7 정상회의 참석 기간 동안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자유, 인권, 법치에 맞춰졌다. 한국 언론은 주로 대중국 디리스킹(위험 완화)에 초점을 두고 보도했지만 실제 G7 공동성명의 또 다른 핵심은 자유와 인권을 향한 가치연대 선언이었다.

공동성명에는 성평등과 다양성 증진에 대한 지지와 노력이 비중 있게 포함됐다. G7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정치, 경제, 교육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LGBTQIA+(성소수자)의 충분하고, 평등하며,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모든 영역에서 노력한다”고 선언했다. 또 “우리는 모든 인간이 성 정체성이나 표현,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폭력과 차별에서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을 배가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일본은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일본판 차별금지법(성적 지향 및 성 동일성에 관한 국민의 이해 증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자민당이 G7 정상회의 개막 전날 법안을 제출했을 때만 해도 ‘시늉’이란 의심도 있었지만 정상회의가 끝난 후 입법이 완료됐다. 일본은 G7 중 차별금지법이 없는 유일한 나라였다. 자유와 인권은 성소수자에게도 가장 필요한 권리이자 가치다. 법안을 두고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일본 사회가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자유와 인권에서 한발 나아간 것은 분명하다.

윤 대통령은 G7 공동성명과 일본의 변화를 접하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인권은 뒷걸음친다는 우려가 있다. 일부 여권 인사의 혐오 표현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국가인권위원회 내부에서조차 혐오 발언 논란으로 시끄럽다. 윤 대통령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는 소식은 없다.

윤 대통령은 이미 대선 후보 시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문제가 많이 생긴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참석 직후인 지난달 23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연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 사이에서 모순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은 올해 4·19 기념사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세계 곳곳에서 많이 봐왔다”며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라는 말이 꽤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강병한 정치부 차장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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