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오염수 방류,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

기자 2023. 6. 27.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가을 진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에서 전복을 양식하는 어민들을 만났다. 한 어민이 지속 가능한 어업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생태전문가에게 물었다. “그래 봐야, 일본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해버리면 도시 사람들은 수산물 안 사 먹을 거고, 그러면 다 망하는 건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죠?” 이 질문에 대한 전문가의 답변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때문에 수산물을 못 먹을 정도면, 우리 바다에서 나오는 거 다 못 먹는다고 봐야 합니다.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어민의 얼굴빛은 밝아지지 않았고, 전문가는 과도한 우려라면서 계속 답답해했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짧은 대화였지만, 여기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시민들과 어업인들, 전문가들이 느끼는 ‘불안’이 잘 요약돼 있다. 2021년 4월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을 내린 이후 나라 안팎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제1 원전의 오염수 해양 방류 설비는 지난 12일 시운전에 들어갔다. 그 이후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됐고, 수산물과 소금 등 먹거리에 대한 우려도 급격하게 커졌다. 건어물과 천일염을 사재기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면서 품절·품귀 현상마저 일고 있다.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시민들의 불안이 과장돼 있다”는 것이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오염수를 처리하면 자연적으로 피폭되는 방사선량과 비교해도 미미한 수준이기에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ALPS로 제거할 수 없는 삼중수소를 포함한다고 해도 기준치의 4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안전성을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가 오염수 방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인 2011년 4월 이미 일본 정부는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섞인 오염수를 보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농도인 오염수를 바다로 대량 방출했다. 당시 방출한 방사성 물질은 이번 방류 양보다 훨씬 많으며, 세슘이 가장 많이 포함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인근 해역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없고, 이번 방류의 영향은 그보다도 작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인근 국가를 포함해 일본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일본의 어민 단체인 어업협동조합연합회에서도 오염수 방류를 지속적으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시민단체들 역시 방류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연일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더 높다.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5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의 85.4%가 방류를 반대하고 있다. 지난 4월 소비자시민모임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2.4%가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출이 시작되면 수산물 소비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최대의 수산물 생산지인 전남 지역 어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높아 시위를 벌이면서 보상 요구를 준비 중이다.

과학자들과 시민들의 의견은 서로 모순되는 듯하다.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오염수 방류 자체의 불안감을 중심으로,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류수와 삼중수소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월성 1호기의 오염수 누수 문제와 삼중수소를 포함한 오염수의 바다 방류 문제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왜 그리 약한 것일까. 월성 원전 인근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온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이주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투쟁에 대해서도 연대의 움직임은 크지 않다.

후쿠시마 지역에 대해서도 오염수 방류를 반대만 할 뿐 오염수를 서둘러 방류하고 재난의 종결을 선언하는 방법 말고 지역이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에 앞서 후쿠시마 주민들은 원전 사고 후 방사능의 위험과 그에 대한 불안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또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바다를 생업의 장(場)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일본과 한국의 어민들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실제로 원전 오염수 방류만 놓고 본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1993년 런던의정서는 저준위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모든 방사성 폐기물의 해양 투기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안전하다고 해서 배출을 해도 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가동되고 있는 수많은 원전이 있고, 바다로 흘러드는 오염수도 후쿠시마 방류수만 있는 게 아니다. 원전을 불안해하지만 우리의 삶은 원전이 만들어내는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도 단지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그 이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