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BS 수신료, 넷플릭스 시청료

기자 2023. 6. 27.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BS 수신료를 의무화하고, 전기요금 고지서에 통합 고지·징수하는 방식은 언뜻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신료가 KBS 운영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은 “나는 넷플릭스만 보는데 KBS에 수신료를 내야 하나”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공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일부 억제함으로써 지탱되고 발전해 왔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예나 마약을 거래해서는 안 되고, 노동자들을 위험한 작업에 내몰면 안 되는 것처럼 사회적 약속은 개인의 선택권을 제약하기도 한다.

송재도 전남대 경영대학 교수

한국의 주요 지역 방송 및 신문의 40~50%는 건설사가 대주주이고, 범(凡)건설자본으로 따지면 그 비율은 더 늘어난다고 한다. 이런 언론사들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시절엔 ‘영끌’을 부추기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자본이 장악한 언론사들은 자본의 이해를 반영해 정부 정책과 여론에 영향을 미친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조사대상 46개국 중 41위로, 시민 10명 중 7명은 대체로 뉴스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대만과 함께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저널리즘의 실패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들어 낸다. 과거에도 시장의 힘만으로는 공정하고 독립된 언론을 보호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각종 보호장치들을 마련해 왔다. 수신료 의무화와 통합 고지·징수 제도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며, 언론 환경의 변화는 이런 제도를 더 중요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여당은 “수신료는 전 국민에게 받으면서 특정 진영 편만 들고 있음”을 이유로 언론에 대한 보호장치를 제거하려 한다. 언론의 독립성을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고, 언론의 견제 대상이 되어야 할 살아 있는 정치권력은 특정 언론의 편파성을 재단할 주체가 될 수 없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한국인 200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KBS 신뢰도는 한국의 언론사들 중 MBC에 이어 2위로 평가됐다. “특정 진영 편만 들고 있음”이란 평가의 근거도 부족하다. 개인마다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다해 싸우겠다”라던 볼테르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통합 고지·징수를 폐지하는 방식 또한 이해할 수 없다. 현재 방송법은 TV를 보유한 가정에 수신료 징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방송법 개정 없이 시행령 개정만으로 수신료를 통합 고지·징수를 금지한다고 해서 그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행령 개정을 통한 통합 고지·징수 금지는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징수를 위한 추가적 비용을 유발하거나, 시민들을 체납자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상위법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없이 시도되는 지금의 조치는 법 또는 원칙과는 동떨어진 편법일 뿐이다.

현재 한국의 언론은 위기에 처해 있다. 대자본이나 정치권력의 영향으로부터 언론의 자율성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들을 더욱 강화해야 할 때이다.

송재도 전남대 경영대학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