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아파요’ 한마디에 담긴 깊은 사연

2023. 6. 27.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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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갔을 때 배앓이가 심해 보건실에 간 적이 있다.

그럴 때 서툴고 어눌한 목소리로 풀어내는 우리 고통에 귀 기울이고 그 진실에 도달하려 애쓰는 이웃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다.

좋은 의사가 병을 말하고 치료할 때 환자의 삶도 함께 살피는 이유다.

때때로 외국인 노동자들은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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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언어 속 인생 역정·고통 담겨있어
외국인 건보 논란… 타자의 아픔 공감해야
외국에 갔을 때 배앓이가 심해 보건실에 간 적이 있다. 막상 의사 앞에 앉으니, ‘배가 살살 아파요’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나 답답했다. 입술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몸이 아프면 얼마나 서러운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일 테다.

언어를 섬세히 쓸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고 생활 환경 다른 곳에서 우리는 아픈 몸의 언어를 충분히, 자세히 전할 수 없다. 그럴 때 서툴고 어눌한 목소리로 풀어내는 우리 고통에 귀 기울이고 그 진실에 도달하려 애쓰는 이웃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다.

‘연결된 고통’(아몬드 펴냄)에서 의료인류학자 이기병은 서울 가리봉동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하면서 세 해 동안 만났던 외국인 노동자들 이야기를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다. 타고난 문화가 다르고, 쓰는 언어가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면, 아픔을 표현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져서 숙련된 의사조차도 그 안에 담긴 고통을 자꾸 놓치곤 한다.

‘어디가 아프냐’라고 물으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주 ‘머리 아프다’에서 출발해 어깨가 결리고, 가슴이 뻐근하며, 숨쉬기 바쁘고, 소화가 안 된다 등 다양한 증세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경우가 유독 많다. 꾀병이 아니다. 이주 노동과 고용 불안에 따른 트라우마, 한국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억압 등에서 연유한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몸과 마음,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는 이어져 있고, 따라서 고통도 마찬가지다.

이럴 땐 혈액이나 소변을 검사하고 엑스레이나 초음파를 찍는 등 의료적 노력을 다해도 질병을 알아내기 힘들다. 환자가 겪는 고통과 통증은 단지 생리학적 현상만은 아닌 까닭이다. 어떤 고통은 그 환자가 처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생겨난다. 좋은 의사가 병을 말하고 치료할 때 환자의 삶도 함께 살피는 이유다.

인간은 병들지 않아도 충분히 아플 수 있다. 질병(disease)과 질환(illness)은 다르다. 질병이 의료적 분류 체계로 코드화된 고통이라면, 질환은 환자의 삶에서 이야기 형태로 구현되는 아픔이다. 질환보다 질병은 무척 비좁다. 힘겹게 내뱉는 “아파요” 한마디엔 한 사람이 밟아온 기나긴 인생 역정과 고통의 이력이 감추어져 있다. 듣는 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우리는 짤막하고 어눌한 언어로 흘러나오는 이들의 고통을 놓치게 된다.

때때로 외국인 노동자들은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질병이 해고를 가져올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고용 불안이란 삶의 상황을 함께 고치지 않으면, 온전한 질병 치료는 불가능하다. 그 결과는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지위가 높든 낮든 인간은 언젠가 병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는 결국 우리 전체가 행복한 사회이기도 하다.

어떤 이가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곧 이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일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건강보험을 둘러싼 논란이 크다.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를 돌보는 마음이 곧 우리 자신의 생명을 위한 실천이라는 점만은 명심하자.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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