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꼴찌 그랜드슬램'?...'1등주의' 삼성 스포츠제국의 위기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는 26일 현재 27승 41패로 10개 구단 가운데 최하위다. 5월 중순까지는 중위권을 유지하다 6월 이후 급추락을 거듭했다. 결국 지난 22일 대구에서 열린 키움히어로즈전 패배로 꼴찌까지 떨어졌다.
삼성라이온즈는 전날 인천에서 열린 SSG랜더스와 원정경기에서 5-2로 이겨 5연패에서 탈출했다. 여전히 9위 한화이글스(27승 37패 4무)에 2경기 차로 뒤지고 있다. 최근 10경기에서 2승 8패에 그쳤다. 삼성라이온즈는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에서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상황이라면 창단 첫 꼴찌가 현실이 될 수 있다.
프로축구 K리그1(1부리그) 수원삼성 블루윙스 사정은 더 심각하다. 수원삼성은 올 시즌 19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2승 3무 14패 승점 9로 12개 팀 가운데 가장 밑바닥이다. 바로 위 11위인 강원FC(승점 13)와 승점 차가 4점이나 벌어졌다. K리그1 최하위 팀은 2부리그인 K리그2로 자동 강등된다. K리그1에서 4차례나 우승한 명문구단 수원삼성이 2부리그로 떨어진다는 것은 몇년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열성팬들조차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지난 시즌에도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치른 끝에 가까스로 1부에 잔류했다. 올시즌 초반 7경기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자 감독 교체를 단행했지만 여전히 희망의 빛은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 스포츠의 위기는 프로야구, 프로축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봄에 2022~23시즌을 마친 남자 프로농구와 남자 프로배구에서도 나란히 꼴찌다. 프로농구 서울삼성 썬더스는 14승 40패로 두 시즌 연속 최하위 수모를 당했다. 9위 대구 한국가스공사(18승 36패)에도 4경기나 뒤진 압도적인 꼴찌였다. 김시래, 이정현 등 비싼 몸값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버티고 있었음에도 기대 이하 성적이 나왔다. 그나마 전 시즌( 9승 45패)보다 5승을 더 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남자 프로배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역시 11승 25패 승점 36으로 7개 구단 가운데 최하위에 그쳤다. ‘레전드’ 출신 고희진 감독과 결별하고 또다른 ‘레전드’ 김상우 감독을 영입했지만 전 시즌 순위 6위보다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사실 농구와 배구가 바닥을 긴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남자농구 명문팀으로 이름을 날렸던 삼성은 지금 지독한 암흑기를 겪고 있다. 최근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했고 최근 5년 사이 꼴찌를 3번이나 했다. V리그 출범 후 8번이나 우승을 이루면서 ‘최고 명문’으로 이름을 떨쳤던 삼성화재의 영광도 이제 과거 추억이 됐다. 삼성화재는 최근 세 시즌 동안 7위, 6위, 7위에 머물렀다.
이번 시즌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와 프로축구 수원삼성이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다면 ‘4대 프로스포츠’ 동시 꼴찌라는 전무후무 진기록을 세운다. 4대 프로스포츠팀을 모두 운영하는 기업이 없기도 하지만 그 후보가 삼성이라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그나마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이 지난 시즌 6개 팀 가운데 3위(16승 14패)에 오른 것이 작은 위안으로 여겨질 정도다.
삼성은 자타공인 한국 ‘넘버원’ 기업이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글로벌기업’이다. 삼성의 목표는 한국을 넘어 ‘세계 1등’이었다. 항상 최고를 추구하는 ‘1등 주의’는 프로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종목이건 간에 삼성은 최강팀의 대명사였다. ‘돈성(돈+삼성)’이라고 부러움 섞인 비아냥을 들었을 정도로 과감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 제국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건 2010년대 중반부터. 프로스포츠단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 등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뀐 시점이다. 2014년 4월 수원삼성을 시작으로 그해 8월 서울삼성과 용인삼성생명, 2015년 6월 삼성화재에 이어 2016년 1월에는 삼성라이온즈까지 제일기획 산하로 들어갔다. 당시 삼성은 테니스와 럭비팀을 해체했다.
제일기획이 팀을 맡고 나서 스포츠단 투자가 줄었다는 지적이다. 그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제일기획은 “구단 운영비는 그전과 큰 차이가 없다”며 “합리적인 운영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고 반박했다.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2023시즌 삼성라이온즈의 소속선수 전체 연봉(신인, 외국인선수 제외)은 83억3400만원으로 SSG랜더스(94억8200만원)에 이어 2위다. 지난해 역시 98억8200만원으로 전체 2위였다.
프로농구 서울 삼성도 마찬가지다. 주전 가드 이정현은 2022~23시즌 보수총액이 7억원으로 전체 선수 중 5위였다. 김시래도 보수총액 5억원을 받았다. 돈을 안쓰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반면 수원삼성은 지난 시즌 팀 연봉이 88억7500만원이었다. 군팀인 김천상무를 제외하고 11개 팀 중 8위에 머물렀다. 시도민구단인 강원FC(94억4800만원), 인천유나이티드(88억7900만원) 보다 적은 금액이다. 투자를 안한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중요한 것은 성적이다. 프로스포츠는 ‘돈=성적’이다. 팀중에는 돈을 덜 쓰고도 좋은 성적을 내는 팀도 많다. 한 프로스포츠 관계자는 “결과가 말해주는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삼성 프로팀이 동반 부진한 것은 구단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라며 “꼴찌 이미지가 굳어지면 삼성 브랜드 전체 이미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 “프로스포츠가 모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구단 스스로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는 삼성의 시각 자체는 긍정적이다”면서도 “하지만 결과로 보여주지 못하면 인정받을 수 없다. 내부적으로 문제점이 뭔지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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