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일곱 번째[출판 숏평]

기자 2023. 6. 2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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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토카레프(브래디 미카코 지음 /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양손에 토카레프


냉혹하고 무미건조한 세상은 구성원들의 빛을 가리고 색을 빼앗아가며 몸집을 거대하게 불리고 있다. ‘인류의 발전’과 ‘더 나은 세상’은 회색빛 세계의 그림자 아래에서 무거운 짐에 고개가 짓눌린 채 땅만 보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홀로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분명 새로운 세계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 외에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양손에 토카레프’는 영국의 소녀 미아가 100여 년 전 일본의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가 쓴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대도 배경도 다른 두 소녀의 공감과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100년이 지난 후에도, 일본과 영국이라는 전혀 다른 공간임에도 그들을 괴롭히던 문제의 근원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세계가 새로운 어떤 곳이 아닌 결국 ‘지금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그 위에 푸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 (김현구 / 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김현구



■개를 낳았다(이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원작 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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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메라니안을 분양받은 어느 히키코모리 프리랜서의 육아(?) 에세이. 반려견 첫 입양에 좌충우돌하는 애견인과 귀여운 강아지의 교감을 다룬 힐링 일상 웹툰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방심한 등에 칼을 꽂아 넣는다. 동네 애견인 커뮤니티, 유기견 구조와 입양, 애견보호소, 펫샵 분양, 줄에 묶인 시골 개, 다견 가정, 출산 후 파양, 펫플루언서, 오프리쉬와 개 공포증 등 대한민국에 살며 겪거나 보고 듣게 될 모든 ‘개 이야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책장을 덮어도 끝나지 않는다. 해 질 무렵만 되면 거리와 공원이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로 붐비고, 사람보다 유명한 강아지 SNS 스타가 수도 없이 많지만 매년 2만 마리도 넘는 유기견들이 안락사당하는, 이상하고 슬픈 세상이 우리 곁에 있다. (박소진 / 문화평론가, 웹소설 작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지음 / 어크로스)

도둑맞은 집중력



집중, 집중, 집중! 온 사회에 집중하라는 메세지가 사이렌처럼 매섭게 울려 퍼진다. 사이렌은 개인의 게으름을 탓하며 자책의 늪으로 우리의 등을 떠민다. 요한 하리는 사이렌에 반기를 든다. 우리는 집중력을 도둑맞은 것이라고.

이 책은 집중력을 훔쳐간 범인의 몽타주다. 그는 세상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증거와 가설로 정교하게 범인의 몽타주를 짜 맞춘다. 이윽고 완성된 몽타주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사회. 집중력을 훔치면서도, 더욱 집중하라고 채찍질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 자책으로 마비된 정신이 번쩍 깨어난다.

몽타주를 완성한 그는 독자에게 펜을 건넨다. 이 수사의 향방은 누구도 아닌 우리에게 달렸다고. 집중력을 되찾기 위한 진정한 투쟁은 이제 시작이다. (황예린 / 출판칼럼니스트,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황예린



■파도가 닿는 미래(서윤빈 지음 / 허블)

파도가 닿는 미래


끝없는 적응과 변화를 촉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일부 인간들은 과학적 문명에 무력함을 느끼거나 불쾌함에 사로잡힌다. 내가 설 자리는 점점 사라져만 가는데, 낯선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패러다임 전환의 반대편에 서 있는 고집쟁이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서윤빈은 그런 지친 이들의 장벽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유머러스하며 힙한 SF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와 함께라면 우리는 감히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미래에서 마침내 ‘연결’될 것이다. (김정빈 / 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김정빈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EBS 라디오부 김성은·정윤범 기획 / 롱테일북스)

EBS 라디오 X 카카오 브런치 ‘나도 작가다’ 당선 작품집


생계와 금전적 대가를 위해 스포츠나 취미활동을 직업으로 만든 사람을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이라고 한다. 그 반대편에는 ‘아마추어(amateur)’가 있다. 프로라는 이름의 우상을 향한 신앙심이 워낙 깊어지다 보니 요즘은 아마추어를‘멍청이’와 비슷한 의미로 멍청하게 사용하곤 한다. 본래 아마추어리즘이란 ‘이겼다고 자랑하지 않고, 패했다고 불평하지 않으며, 자기 절제와 용맹심을 바탕으로 멋있게 임하는 태도’를 뜻한다. 즉 아마추어는 프로에 미치지 못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프로보다 훨씬 고귀한 존재다.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은 문장의 세계에서 ‘고귀한 아마추어리즘’의 구현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진정성으로 완성된 아름답고 감동적인 책이다. (김성신 / 출판평론가)

김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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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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