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간에서 살고 계시나요[2030세상/배윤슬]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2023. 6. 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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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는 하나의 공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수많은 공정 중 하나로, 내 손길을 거쳐 누군가 살아갈 공간이 만들어진다.
일을 할 때에는 이렇게 여러 의미를 가지고 공간을 바라보지만, 시간이 지나 과거에 작업했던 현장들을 떠올려보면 돈이나 작업 대상이 아니라 어떤 구조였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공간 자체에 대한 이미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주 넓지는 않더라도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구조의 집이 아닌 조금은 독특하고 내 취향과 개성이 담긴 공간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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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는 하나의 공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수많은 공정 중 하나로, 내 손길을 거쳐 누군가 살아갈 공간이 만들어진다.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 똑같은 구조의 집을 끝없이 반복해 도배하다 보면 각각의 집들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벽지를 붙여야 하는 빈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가 하면, 출퇴근을 반복해야 하는 일터일 뿐일 때도 있다. 때로는 완성이 곧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도 하지만, 도배가 완성된 집을 보면 비로소 누군가 살아갈 아늑한 집으로 느껴져 보람찰 때도 있다. 일을 할 때에는 이렇게 여러 의미를 가지고 공간을 바라보지만, 시간이 지나 과거에 작업했던 현장들을 떠올려보면 돈이나 작업 대상이 아니라 어떤 구조였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공간 자체에 대한 이미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작업 현장뿐만 아니라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사건 자체보다도 사건이 일어났던 공간이 더 선명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내 최초의 기억은 어렸을 때 살던 작고 아늑한 빌라에서의 어떤 날이다. 식구들과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었던 기억인데 당시의 대화 내용이나 소리, 냄새 등은 아주 희미하게 떠오르지만 공간에 대한 기억은 꽤 선명하다. 오래된 밤색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고 저쪽에는 식탁이 보인다. 장난감이 있던 작은방과 화장실, 식구들이 같이 모여 자던 안방의 위치도 정확하게 기억난다. 어린 시절 또 다른 집에서는 한 살 터울의 언니와 이층침대를 함께 썼는데, 아래층을 사용하던 나는 종종 위층으로 올라가 언니 옆에 누워 천장에 붙여 놓은 별 모양 야광스티커를 보며 놀곤 했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같이 잠들던 방, 둘이 눕기에는 좁았던 이층침대가 아직도 떠오른다.
공간이 좋은 기억과 연관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 어떤 공간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경험하게 되면 그 공간 자체가 꺼려지기도 한다. 이처럼 공간은 우리에게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만을 지니지 않으며 심리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떤 공간에서 어떤 기억을 만들고 어떤 감정을 쌓아가는지가 중요하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높아지면서,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인테리어에 들이는 비용도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속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독립하여 혼자 사는 청년들은 대부분 너무 작아서 방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겨우 몸을 누일 만한 거실 겸 침실과 최소한의 욕실, 주방으로 구성된 좁은 원룸이라는 선택지밖에 없다. 공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분위기를 바꾸어 기분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심리적인 휴식과 안식을 취하기보다는 오로지 물리적으로 몸을 누이는 기능밖에 하지 못하는 곳에서 긴 시간 살아가야 한다. 공간이 제한적이고 협소하면 그 안에서 만들어가는 기억과 감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 공간에서 살아가고 싶을까? 내가 꿈꾸는 공간은 꽤 소박하다. 아주 넓지는 않더라도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구조의 집이 아닌 조금은 독특하고 내 취향과 개성이 담긴 공간을 가지고 싶다. 나만의 작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을 가지는 일, 이런 꿈을 꾸는 것이 사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작업 현장뿐만 아니라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사건 자체보다도 사건이 일어났던 공간이 더 선명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내 최초의 기억은 어렸을 때 살던 작고 아늑한 빌라에서의 어떤 날이다. 식구들과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었던 기억인데 당시의 대화 내용이나 소리, 냄새 등은 아주 희미하게 떠오르지만 공간에 대한 기억은 꽤 선명하다. 오래된 밤색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고 저쪽에는 식탁이 보인다. 장난감이 있던 작은방과 화장실, 식구들이 같이 모여 자던 안방의 위치도 정확하게 기억난다. 어린 시절 또 다른 집에서는 한 살 터울의 언니와 이층침대를 함께 썼는데, 아래층을 사용하던 나는 종종 위층으로 올라가 언니 옆에 누워 천장에 붙여 놓은 별 모양 야광스티커를 보며 놀곤 했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같이 잠들던 방, 둘이 눕기에는 좁았던 이층침대가 아직도 떠오른다.
공간이 좋은 기억과 연관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 어떤 공간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경험하게 되면 그 공간 자체가 꺼려지기도 한다. 이처럼 공간은 우리에게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만을 지니지 않으며 심리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떤 공간에서 어떤 기억을 만들고 어떤 감정을 쌓아가는지가 중요하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높아지면서,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인테리어에 들이는 비용도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속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독립하여 혼자 사는 청년들은 대부분 너무 작아서 방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겨우 몸을 누일 만한 거실 겸 침실과 최소한의 욕실, 주방으로 구성된 좁은 원룸이라는 선택지밖에 없다. 공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분위기를 바꾸어 기분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심리적인 휴식과 안식을 취하기보다는 오로지 물리적으로 몸을 누이는 기능밖에 하지 못하는 곳에서 긴 시간 살아가야 한다. 공간이 제한적이고 협소하면 그 안에서 만들어가는 기억과 감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 공간에서 살아가고 싶을까? 내가 꿈꾸는 공간은 꽤 소박하다. 아주 넓지는 않더라도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구조의 집이 아닌 조금은 독특하고 내 취향과 개성이 담긴 공간을 가지고 싶다. 나만의 작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을 가지는 일, 이런 꿈을 꾸는 것이 사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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