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회 절실한 신인 작가들의 창작물 착취하는 도구가 될 것”

김은성 기자 2023. 6. 2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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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시나리오 작가의 ‘경고’
엉성한 대본 초안 AI로 생성해
작가에게 저임금 각색 맡기고
무단으로 학습시켜 성능 향상
소수의 메인 작가만 살아남아
빈익빈 부익부 더 심화할 우려

“제작사는 비용을 줄이고, 인공지능(AI)은 성능을 높이기 위해 기회가 절실한 신입 작가들을 상대로 시범 테스트를 하려고 할 겁니다.”

이승현 시나리오 작가(46·사진)는 지난 19일 서울 가양동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AI 활용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이미 자리를 잡은 소수의 메인 작가들만 살아남아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며 이같이 우려했다.

이 작가는 최근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을 대표해 서울 넷플릭스 한국지사 앞에서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을 지지하는 집회를 하며 창작자들과 연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파업을 시작한 WGA는 미국 할리우드와 방송 작가들이 가입한 단체다. 파업 이후 TV 토크쇼 등이 결방되고, 시리즈 영화 <아바타> <스타워즈> 등의 개봉이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이들의 공동행동은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제작사들의 AI 사용 규제를 요구한 ‘인간의 첫 파업’이다. 한국의 웹툰 업계도 작가와 독자들이 인터넷상에서 ‘AI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어 미국의 움직임이 더 주목된다.

이 작가는 “정당한 보상 없이 저작권을 훔쳐 누군가의 고혈을 바탕으로 AI가 발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대본 초안 등이 누군가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긁어와 짜깁기한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작가는 드라마 <추한 사랑>(KBS), 영화 <더폰: 중국 리메이크>의 각본 등을 쓴 16년차 작가다. 작가 시절 2021년 한국형 GPT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고, 데뷔 전에는 정보기술(IT) 기업에서 3년여간 기획·마케팅을 할 만큼 기술에 관심이 많다.

그는 “논문과 기사처럼 사실을 기반으로 정형화된 규칙이 있는 글을 요약하거나 짧은 카피 등을 만들 때는 챗GPT가 도움이 된다”며 “하지만 시나리오와 대본, 이를 위한 초고나 기획안 등을 만들려면 반드시 사람의 손을 수십번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생성형 AI의 구조상 창의적인 전략을 담아야 하는 ‘초고’는 만들어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제작사들은 이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WGA에 따르면 제작사들은 AI를 활용해 엉성한 대본 초안을 만든 뒤 작가에게 저임금으로 각색을 맡기고, 작가들의 작품을 무단으로 AI에 학습시키고 있다.

실제로 유명 제작사인 마블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신작 드라마의 오프닝 크레디트를 AI로 제작했다고 밝혀 업계와 누리꾼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 넷플릭스 본사는 시나리오를 위한 AI 개발을 완료하고 AI가 쓴 초고를 작가가 손질하는 작업 방식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WGA는 AI는 도구이며 창작자가 될 수 없고, AI가 생성한 결과물은 어문 저작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 등의 가이드라인 마련을 제작사들에 요구했으나, 대화에 진척이 없다. 이 작가는 “제작사들에는 AI가 짜깁기한 말도 안 되는 초안이 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챗GPT 등을 써본 결과) 초안을 각색하는 작가로서는 모두 다시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어 “AI가 만든 초안을 신입 작가에게 각색을 맡기고 작가는 매우 적은 돈으로 사실상 각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쓰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의 학습 과정이 사람이 책으로 공부하는 것과 같다는 주장에 대해 “반도체로 구동되는 AI를 저작권을 가질 수 있는 인간 혹은 법인으로 볼 수 있는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질 높은 데이터가 있어야 AI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며 “AI 제작으로 (얄팍한) 양산형 작품이 나오면 작가는 물론 일반 대중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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