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그룹의 모스크바 진격 포기는 수뇌부 가족 해치겠다는 러 위협 때문”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보도
수장 프리고진 행방은 묘연
아프리카 등 ‘바그너 공백’
미국이 틈새 파고들 가능성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 코앞까지 진격했다 돌연 철수한 이유가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사진) 등 수뇌부의 가족을 해치겠다는 러시아 정보기관의 위협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프리고진 퇴장 후 바그너 그룹의 운명에 대해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바그너 그룹이 활동해 온 아프리카 등 분쟁 지역에서 미국이 ‘틈새 외교’를 펼칠 기회가 대두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25일(현지시간) 자국 안보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 진격을 포기한 것은 러시아 정보기관이 바그너 수뇌부의 가족을 해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런 분석이 프리고진의 갑작스러운 회군 ‘미스터리’에 어느 정도 단서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크렘린은 프리고진이 회군하자 그에 대한 형사입건을 취소키로 결정했고, 그가 벨라루스로 떠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리고진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다만 러시아 방송 RTVI는 “프리고진이 측근을 통해 안부를 전해왔다”면서 그가 휴대전화 수신 상태가 양호해지면 모든 질문에 답할 것이라 말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내에서는 프리고진이 빠진 바그너 그룹의 해체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바그너 그룹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프리고진이 빠진 후의 결속력과 전투력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바그너 그룹은 지난 수년간 러시아 외교의 ‘창끝’으로서 아프리카, 중동, 남미에 걸쳐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았다.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도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퇴했고, 리비아에서는 동부 지역 군벌 수장 칼리파 하프타르 편에서 내전을 벌이고 있다. 시리아와 리비아에선 그 대가로 석유 및 가스 산업 관련 계약으로 이득을 챙겨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도왔다. 말리, 수단,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다이아몬드와 금의 채굴권에 개입해 러시아에 보탰다.
이렇듯 영향력을 행사해온 바그너 그룹이 철수한다면, 미국이 그 틈새를 파고들 수 있다고 미 폴리티코는 분석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에서는 미국이 안보 협력을 제공하거나 파트너 관계를 맺는 대신 정권으로부터 민주화 약속을 받아내는 등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중국이 아프리카 진출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미국 입장에서 이는 놓쳐선 안 되는 기회”라고 전했다.
미국으로선 반드시 바그너 그룹의 공백을 채우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체제 불안정을 그대로 방치하긴 힘든 노릇이다. 바그너 그룹의 자리를 IS나 알카에다 연계 조직이 차지해버리면 해당 지역은 더욱 위태로워진다.
또한 바그너 그룹이 단순 용병이 아닌 안보와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직으로까지 발전했다는 점 또한 고민거리다. 바그너 그룹은 현지 정권에 군사 훈련, 정보 작전을 제공하고 경우에 따라선 정권 수호 역할까지 맡았다. 바그너 그룹은 마다가스카르와 말리에서 선거 개입 및 전쟁범죄 은폐 혐의에도 연루돼 있다.
미국·프랑스 등 서구권 국가가 개입하지 않을 경우 타국이 바그너 그룹과 유사한 조직을 활용해 현지 정권에 외교적으로 침투할 수도 있다. 사하라 이남 국가들이 이러한 가능성에 특히 취약하다고 폴리티코는 짚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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