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내상 입은 ‘차르’ 푸틴…우크라에 약일까 독일까
푸틴, 건재 과시 위해 ‘핵 카드’ 사용 등 폭주 나설 수도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우크라이나에 기회가 될까, 위기가 될까. 반란은 24시간 만에 끝났지만, 철옹성 같았던 크렘린에 균열이 드러나면서 이번 반란이 전쟁에 미칠 영향에 국제사회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동맹국들은 러시아의 내부 혼란이 우크라이나가 전쟁의 승기를 잡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미 정치적 내상을 입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의 통제력을 입증하기 위해 전쟁을 더 극단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가 코너에 몰릴수록 핵무기를 손에 쥐고 흔드는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CNN과 인터뷰하면서 반란을 가까스로 수습한 푸틴 대통령이 이제 러시아 내부 상황부터 신경써야 하는 신세가 됐다면서 “우크라이나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이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자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고,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도 “우리에게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우크라이나가 최근 개시한 대반격에서 아직 결정적인 승리를 얻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혼란과 분열상, 군의 사기 저하가 우크라이나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부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을 막았던 바그너 그룹이 전장에서 철수한 것 역시 우크라이나군에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바그너 그룹은 교도소에서 징집한 죄수 용병들을 내세워 ‘인해전술’에 가까운 작전을 펼쳐왔고, 지난달 동부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를 점령하는 등 전과를 세운 바 있다. 바흐무트에서 바그너 그룹 철수 후 체첸 민병대가 대체 병력으로 투입되자 우크라이나군이 일부 반격에서 성공한 것은 그만큼 바그너 병력이 위협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기대와 달리 이번 반란이 오히려 ‘푸틴의 폭주’를 부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측근의 반란으로 집권 이후 ‘최대 굴욕’을 경험한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이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한동안 전선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의 혼란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 치명적으로 만들 것”이라며 “바그너 그룹의 반란 후 푸틴의 통제력 강화 노력의 수위가 한층 높아질 것이며, 이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더 혼란스러운 러시아와 씨름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CNN도 “내상을 입은 푸틴은 더 ‘위험한 푸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러시아가 보유한 핵무기 때문이다. CNN은 “러시아의 혼란이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전장의 손실로 이어진다면, 푸틴의 입지는 더욱 위협받을 것”이라며 “이는 러시아의 지도자가 핵무기를 휘두르며 전쟁의 파국적 확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일에 기반을 둔 국제 싱크탱크 마셜펀드의 이안 레서 부사장은 “앞으로 러시아 정권의 안정성 문제가 전면에 부상할 것이며, 특히 핵무기 안전과 관련한 통제의 예측 가능성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WSJ에 말했다.
실제 바그너 그룹이 반란을 일으킨 지난 주말 사이 미국 등 서방 동맹국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도 러시아의 핵시설 통제 상황이었다. 러시아는 약 4500기의 핵무기를 전국에 산개된 비축시설에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군 세력이 이 중 몇 곳만 장악해도 우크라이나를 넘어 국제사회에 엄청난 위협이 초래되는 것이다. 핵 안보 전문가인 매튜 번 하버드대 교수는 “프리고진이 핵시설 몇 군데만 차지했어도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지난 세기 동안 핵무장을 한 국가에서 발생한 전쟁과 혁명은 과연 핵무기를 미래에도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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